송강호·박해일·전미선 등
연기파 배우들 열연에도
한글창제 과정 지나친 픽션
연출력 한계로 균형감 잃어

애민정신. 성군 세종대왕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다.

애민정신의 정점은 한글 창제이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한글은 1443년 세종대왕께서 단독 창제하시고 해설집을 집현전 학자와 공동연구 ·제작했다. 당시 사대부들의 격한 반대에도 "문자와 말이 서로 달라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백성을 불쌍히 여겨 모든 사람이 쉽게 익히고 편히 사용하게 하고자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것이 우리가 아는 한글 창제 과정이다.

하지만 훈민정음의 창제와 관련해 여러 학설이 존재하고 최근 개봉한 <나랏말싸미>(감독 조철현)는 그러한 여러 창제설 가운데 하나에서 시작했다.

영화는 "다양한 훈민정음 창제설 중 하나일 뿐이며 이를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라는 자막을 띄우며 시작한다.

세종(송강호)은 문자와 지식을 권력으로 독점하는 체계를 깨고 모든 백성이 읽고 쓰는 나라, 그리하여 망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고자 새로운 문자를 개발하려고 한다.

▲ 송강호, 박해일 주연의 영화 <나랏말싸미> 한 장면. /스틸컷
▲ 송강호, 박해일 주연의 영화 <나랏말싸미> 한 장면. /스틸컷

하지만 유자의 나라, 유학을 바탕으로 세워진 조선의 대신들은 세종의 이런 생각이 이치를 거스르는 것으로 판단한다. 혼자 골머리를 앓던 세종이 우연한 계기로 신미 스님(박해일)을 만나 한글을 완성했다는 이야기다.

영화는 정종 시절 약속을 지키라며 팔만대장경을 내놓으라는 일본 승려들이 세종 앞에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일본 승려들이 시위하는 모습을 본 신하들은 어차피 조선은 유교의 나라이고, 팔만대장경쯤이야 줘 버리면 그만 아니냐고 주장한다.

하지만 세종은 "왜인들에겐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신물이 될 수도 있다"라며 단호하게 반대한다.

문제 해결을 위해 급파된 신미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조선은 문명국이라고 할 수 없다"라고 '떼쓰는' 일본 승려들에게 "100년이 걸려도 직접 만들지 않으면 한낱 나무 조각에 불과하다. 스스로 만들어라"라며 "밥은 빌어먹을 수 있어도 진리는 빌어먹을 수 없다"라고 크게 꾸짖는다.

신미가 소리문자를 비롯해 각종 언어에 능통하다는 것을 듣게 된 세종은 "너 나 좀 도와라"라며 협업을 요청한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나의 창조물이 탄생될 때는 역사 속 한 단어, 한 줄, 혹은 인물 하나에서 시작될 때가 잦다. 여기에 살을 붙이고 상상력을 보태 사극이 완성된다.

▲ 영화는 훈민정음 창제 주요 역할을 세종보다 스님인 신미에게 넘겨버렸다. /스틸컷
▲ 영화는 훈민정음 창제 주요 역할을 세종보다 스님인 신미에게 넘겨버렸다. /스틸컷

<황산벌>(2003), <평양성>(2010), <사도>(2014) 등의 기획·제작·각본에 참여했던 조철현 감독은 첫 장편 데뷔작인 <나랏말싸미>를 내놓으며 "훈민정음 해례본 속에서 팔만대장경과 신미 스님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훈민정음 창제의 과정을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재창작했다"라고 매체를 통해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학설의 진위를 떠나 신미의 대단함을 강조하려고 객기를 넘어 무례한 영화가 되고 말았다.

세종은 글자를 만들고 싶은데 유학자들 때문에 머뭇거리고, "무조건 쉽고 간단하게 하라"라고 요구하다 신미에게 혼이 나거나 설득당한다.

"세상에서 가장 쉽고 아름다운 문자"를 되뇌며 고뇌하는 이도 신미이고, 천장의 서까래를 바라보다 작대기(모음) 하나를 긋는 것도 신미이다. 훈민정음 창제의 중요 지점에 있어야 할 세종의 역할을 많은 부분 신미와 스님들에게 넘겨버렸다.

소갈(당뇨)을 앓고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임금, 두 형을 제치고 얻게 된 왕의 자리, 아내 소헌왕후의 집안을 몰락시켰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왕. 임금이기에 앞서 인간적인 세종의 모습을 강조하다 역사와의 균형마저 잃어버린 느낌이다.

특히 이제는 이름 하나로 영화 선택의 기준이 될 수도 있는 배우 송강호가 세종을 맡았다는 것은 더욱 우려스럽다.

군주로서의 외로움과 고뇌 등을 표현하는 송강호의 연기는 나무랄 데 없지만 그의 연기에만 몰입하여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랏말싸미>는 개봉 전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세종의 뒤에서 필생의 과업인 한글 창제에 길을 터주고 한글을 널리 퍼뜨리는 데 애쓴 소헌왕후를 연기한 전미선이 지난달 29일 세상을 떠났다. 영화 속 그녀의 연기는 단단하고 울림이 커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영화사 측은 홍보 활동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그녀에 대한 애도를 표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한 출판사가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내며 개봉 전날까지도 상영이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극적으로 개봉 하루 전날 법원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고, 결국 영화는 예정대로 대중에게 공개됐다.

그런데 영화는 가장 큰 난관에 부딪힌 듯하다. 잔가지들은 변주할 수 있어도 역사적 큰 물줄기는 거스를 수 없다.

영화의 엄청난 영향력은 여러 번 검증된 바 있다. 영화가 수용할 수 있는 창작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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