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경기 열리면 관중석 만원
외야 술판에 경기장 난입 일쑤
감독·선수도 부담감 느낄 정도

마산은 1982년 9월 야구장 준공으로 롯데자이언츠 제2 연고지 역할을 했다. 지역 야구팬들은 이후 과한 열정을 표출하며 '마산 아재'로 대변되기도 했다.

마산야구장 관중석은 1990년대 중반까지 의자 없는 시멘트 바닥이었다. 전체 규모는 1만 5000석이었다. 하지만 좌석이 정해져 있지 않아, 그 이상의 관중이 들어차기 일쑤였다. 일부 관중은 포수 뒤편 본부석 천장에 올라가 경기를 보기도 했다. 그 당시 그리 이상할 게 없는 풍경이기도 했다.

때로는 외야 관중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도 했다. 삼겹살 등 고기를 굽는 관중이었다. 경기장 내 소주 반입도 당연시되는 분위기였다. 판매원들은 바구니에 담은 먹거리를 관중석 곳곳에 돌아다니며 팔았다. '소주~ 맥주~ 오징어~'라고 외치면서다. 하지만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관중 대부분은 바깥에서 먹거리를 미리 사서 들어왔다. 그 가운데 병 소주도 포함돼 있었다.

마산야구장 관중들은 롯데가 잘 풀리지 않으면 경기장 안으로 화풀이를 했다. 소주병 투척이 대표적이었다. 당시 외야수들은 종종 헬멧을 쓰고 수비를 볼 수밖에 없었다.

'최루탄 사건'은 축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987년 6월 10일 마산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한국-이집트전. 경기장 바깥 6월 항쟁 시위로 최루탄 연기가 축구장 안으로 들어오면서 경기가 중단됐던 사건이다.

그런데 야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이때 상황은 더 예기치 않게 흘러갔다.

1988년 5월 25일, 롯데가 마산에서 빙그레와 맞붙었다. 롯데는 초반부터 빙그레 투수 한희민 호투에 꽁꽁 묶였다. 롯데가 6회 이후까지 1-5로 끌려갔다. 관중석에서는 술 취한 관중들이 서로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 시간 마산운동장 동문 쪽에서 시국 시위가 벌어지면서 또다시 최루탄이 발사됐다. 그런데 야구장 관중 일부가 더 극렬히 난동을 부렸다. 경찰이 관중들을 향해 최루탄을 쏜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일부 관중은 야구장 바깥 시위대에 합류해 경찰 승합차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이날 경기는 1시간가량 중단됐다가, 관중 100여 명만 남은 상태에서 겨우 마무리했다. 이날 롯데는 2-5로 패했다.

1980년대 롯데에서 전성기를 보낸 한문연(58) 현 NC 코치는 이런 기억을 전했다. '최루탄 사건' 때 상황으로 보인다.

"마산 경기는 부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롯데가 지면 선수들이 집에 못 가니까요.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관중들이 경기 도중 계속 병을 던지니, 심판이 몰수게임이라고 하며 조명등까지 끄게 했습니다. 그런데 양 팀 선수들은 더그아웃에 몰래 숨어있었어요. 관중들이 거의 다 빠져나갔을 때 경기를 재개했던 거죠. 어쨌든 롯데는 그런 압박감 때문에 마산에서 잘 이기지 못했죠."

▲ 1990년 6월 7일 롯데-LG전이 열린 마산야구장. 표를 구하지 못한 팬들이 3루쪽 조명탑을 타고 경기장으로 난입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 1990년 6월 7일 롯데-LG전이 열린 마산야구장. 표를 구하지 못한 팬들이 3루쪽 조명탑을 타고 경기장으로 난입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1990년대 들어서도 한동안 이런 분위기는 계속됐다. 1990년 6월 7일, 롯데-LG전이 마산에서 열렸다. 이날도 매표소는 일찌감치 매진을 알렸다. 그러자 표를 구하지 못한 팬들은 조명탑을 기어 올라 야구장 안으로 진입했다. 일부는 외야 출입문으로 몰려가 '영차영차'를 외치며 힘으로 밀어붙였고, 결국엔 자물쇠를 부러뜨려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야구장 통제 요원, 경찰 의경들이 있었지만, 막을 도리가 없는 분위기였다. 이 때문에 1만 5000석 야구장은 그 2배에 가까운 인원으로 발 디딜 틈 없었다.

일부 관중은 경기 도중 그라운드에 난입해 흐름을 끊었다. 패색이 짙던 9회에는 술 취한 관중이 아예 경기장에 드러누웠다. 경찰이 관중을 끌어내자 또 다른 관중 10여 명이 들어와 볼썽사나운 장면을 연출했다. 일부는 경기 후 "경품 추첨을 왜 하지 않느냐"며 운영 사무실로 몰려가기도 했다.

▲ 1995년 8월 24일 롯데-빙그레 경기를 보기 위해 마산야구장을 가득 채운 팬들 모습.  /경남도민일보 DB
▲ 1995년 8월 24일 롯데-빙그레 경기를 보기 위해 마산야구장을 가득 채운 팬들 모습. /경남도민일보 DB
▲ 1995년 8월 24일 롯데-빙그레전이 열린 마산야구장 바깥 풍경. 주차장 사이에 늘어서 있는 좌판들이 눈에 들어온다.  /경남도민일보 DB
▲ 1995년 8월 24일 롯데-빙그레전이 열린 마산야구장 바깥 풍경. 주차장 사이에 늘어서 있는 좌판들이 눈에 들어온다. /경남도민일보 DB

1990년대 중반에는 일명 '김용희 감독 청문회'가 있었다. 롯데가 시즌 성적 부진에다 마산에서도 패하자, 성난 관중들이 경기 후 롯데 버스를 가로막으며 "김용희 감독 나와라"고 외쳤다. 김 감독은 결국 버스에서 내려야만 했다. 이태일 전 NC다이노스 대표이사는 당시 기자 시절 목격한 분위기를 이렇게 전한 바 있다.

"김용희 감독이 '앞으로 좋은 성적을 내겠다'고 말했고, 마산 팬들은 그제야 버스 길을 터줬는데요,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길이 열리더군요."

이러한 지역 야구팬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진 건 1998년 마산야구장 새 단장 이후부터다. 마산야구장은 기존 1만 5000석이던 관중석을 2만 1000석으로 증축했다. 시멘트 좌석은 의자로 바뀌었다. 10억 원을 들인 컬러전광판도 들어섰다. 무엇보다 야구장 주변 '술 좌판'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마산시 체육사>는 이와 관련해 '얌전해진 마산 관중'이라는 표현으로 다음과 같이 전했다.

'1998년 마산야구장이 새 단장 됨으로써 경기장 모습이 확연히 달라졌다. 운동장 주위에 노점상이 정리되어 일찌감치 술판을 벌여놓고 시비를 벌이던 사람들도 사라졌다. 1998년 5월 5일 롯데가 쌍방울에 역전패당했을 때 마산 관중들은 이전처럼 흥분하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7일 야간 경기 때에도 롯데가 일방적으로 밀리자 물병 몇 개가 날아왔지만, 그 숫자가 줄어 그다지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마산운동장 인근에서 수십 년간 슈퍼를 하는 주인장은 지난 2014년 <경남도민일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전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야구 열리는 날은 어마어마했죠. 나하고 3~4명이 가게에 달라붙는데도 손이 부족해요. 하루에 오징어를 200마리 넘게 구웠지 싶어요. 돈이 어디로 들어오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여기 가게에서 다 보이는데, 사람들이 롯데 패한 날에는 상대 팀 버스를 곱게 내보내질 않았죠. 아이고, 말도 아니었어요, 허허허…." 

<참고 문헌> △<마산시 체육사>, 조호연 책임 집필, 마산시, 2004 △경남야구협회 소장 자료 △KBO 누리집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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