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이념 강한 한국 현대 정치권력
일본 이길 수 있는 외교법 배우기를

우리는 지금 많이 어려운 때를 맞고 있다. 쓰러진 자가 남의 도움 없이 일어서려면 쓰러져 있는 그 자리를 잡고 일어서야 한다. 어렵더라도 피묻은 그 자리를 두 손으로 짚고, 이를 악물면서 일어서야만 한다. 일본이 거기다.

한국이 일본을 앞에 두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경우가 그렇다. 일본 고대역사 몇 페이지를 들춰보면 야마토시대의 일본에서 말을 타고 달리면서 길고 무거운 창이나 칼을 휘두르면서 적을 무찌르는 전투를 감행하여 일본인들에게 말타고 칼쓰는 법을 가르친 것은 고구려 사람들이다. BC27년 신라의 왕자 천일창(天日槍)이 일본을 방문하면서 그릇 만드는 장인을 데려와서 천황이 쓸 그릇 만드는 법을 전해주었고, 백제의 행기(行基) 보살이 일본인들에게 도자기 빚는 법을 전해주었는데, 지금의 도기장(陶器匠)이 그것이라고 일본 역사서는 전한다.

그리고 신라가 당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백제를 칠 때 일본으로 긴급 피난을 했던 이들의 지도자 중에서 일본 천황으로 등극한 사람이 나왔고, 후백제가 신라에 저항할 때는 일본으로 피신했던 이들의 후예들이 조직하여 후백제 군대를 돕고 신라 정벌에 나섰던 군대 명칭도 일본 역사에는 적혀 전한다.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이다.

임진전쟁에서 승전국이 된 일본이 패전국 조선에 강화회담을 요구하고, 조선 정부 대표 파견을 요구했을 때, 조선의 지배계급 유생들은 서로 일본에 파견되지 않으려고 온갖 핑계를 마련하다가 끝내는 그들이 앞장서서 폄훼하고 능멸했던 불교 승려 사명당에게 조선 강화회담 대표로 가게 했던 일을, 지금 일본 정치인들은 잘 알고 있다. 서애 유성룡이 피눈물로 쓴 <징비록>을 읽고 또 읽어 외웠다고 한다. 지금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를 대하는 방법이 그때를 많이 닮아 있어 보인다. 다만 불교 승려 대신에 경제를 이끄는 기업인들이라는 것만 다르다. 그들은 <징비록>에서 조선의 지배계층이 얼마나 관념적이며 유교 이상주의자들인지를 간파했다. 그 이후 한국 정치는 늘 관념적, 이상적인 언설에 능한 자들이 권력을 장악했다. 정치 현실은 관념과 이념으로는 좌우되기 어렵다. 그런데도 현실의 지배 정치 권력은 그쪽이 더 강하다. 일본은 그것을 알고, 우리는 그것을 모르는 것이 다르다.

사명당 스님이 살생유택이라는 한국 불교의 오래되고 탁월한 논법으로 일본군을 격퇴시키는 공적을 쌓자 유생들은 천민이 설친다며 못마땅해 했다. 선조 임금이 사명당에게 정삼품 벼슬을 내려 공을 치하하려 했을 때, 유생들은 사명당을 비난하며, 자신들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짓이라며 항의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잘못은 인정치 않으면서 일본 권력자와 담판짓는 일은 극력 회피했다.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정치란 오래 권력을 누리는 것이 목적이므로, 죽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려운 때다. 일본을 용서하지 말고, 뼛속에 새겨 기억하면서, 일본과 화친해야 한다. 웃어도 향기가 없고, 울어도 눈물이 없는 외교를 배워야 한다. 그래야 일본을 이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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