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지자체 중 전국 첫 시도
헌법 개정 전 권익보호 나서
노동계 "환영·변화 확산 기대"

창원시 조례에서 '근로'라는 용어가 사라지고 '노동'이 그 자리에 들어간다. 창원시의회는 지난 26일 제86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근로 관련 용어 변경을 위한 창원시 감정노동자의 권리보호 등에 관한 조례 등 일괄개정조례안'을 가결했다.

'근로'를 '노동'으로 바꾼 건 전국 기초지자체 가운데 창원시가 처음이다. 앞서 올 3월 서울시, 6월 광주시와 부산시도 근로를 노동으로 변경한 바 있다. 헌법 개정 이전에 지자체에서부터 이 같은 용어 변경이 잇따르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한데, '노동자' 개념을 확장하는 첫걸음을 뗐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노동자 개념 확장 첫걸음 = 조례안은 최영희(정의당·비례대표) 의원을 대표로 의원 17명이 공동 발의했다. "'근로'라는 용어를 노동력을 제공받는 사용자와 대등한 관계를 의미하는 '노동'이라는 용어로 일괄 정비해 용어 사용에 통일성을 기하고, 자치법규 접근성을 개선하는 동시에 노동존중 문화 확산과 노동자 권익 제고에 기여하려는 것"이 제안 이유였다.

'근로'가 쓰인 시 조례는 모두 31건이다. 이에 따라 '근로자' '근로인'은 '노동자'로, '근로소득'은 '노동소득'으로, '근로복지'는 '노동복지'로, '근로환경개선'은 '노동환경개선'으로 바뀐다. 다만 상위 법이나 시행령 용어와 다를 경우 별도 설명을 달아줬다. 예를 들면 '자활노동(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시행령 제20조에 따른 자활근로를 말한다)'이라는 형식이다.

근로(勤勞)와 노동(勞動)은 현대사를 거치며 사회적 의미가 더해졌다. 1963년 박정희 정권은 '노동절' 명칭을 '근로자의 날'로 바꿨고, '노동'에는 불온한 이미지가 입혀졌다.

최영희 의원은 "'노동'이라는 말의 확대는 건별 수입을 얻는 계약노동자, 퀵서비스·택배노동자, 대리운전 기사, 학습지 교사, 공유자동차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등 특수고용노동자 처우 개선 문제와 노동자성 인정을 푸는 첫 단계로도 볼 수 있다"면서 "일례로 창원시 정보화교육장 강사들의 교육비를 올려주자고 주장하고 있는데, 초과근무수당이나 최저임금 등으로 결국엔 그들을 노동자로 인정해야 고용의 질도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도 이날 논평을 내고 "'노동'과 '노동자'가 생산과 역사발전·사회발전 주체"라며 "이번 일이 전국 광역지자체와 기초지자체로 퍼져 나가길 기대한다"고 했다.

◇아래부터 개혁 = 지난해 3월에 나왔던 대통령 개헌안은 사용자 관점에서 쓰여온 '근로'를 '노동'으로 바꾸는 내용이다. 당시 개헌특위는 "근로 의무는 공동체 유지를 위한 도덕적 의무로 봐야 하고 헌법적 의무로 규정하는 것은 강제근로 금지의 원칙에 반할 소지가 있다"면서 "모든 국민이 일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지 국민의 의무로 강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헌법 제32조 2항 '모든 국민은 근로의 의무를 진다. 국가는 근로의 의무의 내용과 조건을 민주주의원칙에 따라 법률로 정한다'를 '모든 국민은 일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고용의 안정과 증진을 위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로 개정하자는 안이었다.

창원시의원들은 이번 용어 변경에 대해 마산에서 시작돼 2001년 조례 제정 결실을 보고 전국으로 확산한 세입자보호운동, 1992년 청주시 조례 제정 이후 법제화로 이어진 정보공개제도 등을 예로 들며 또다시 지역에서 중앙정부와 정치권을 바꿔나갈 계기가 마련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편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의회에서 의결된 조례안은 의장이 5일 이내 지자체장에게 이송하고, 단체장은 이를 받고 나서 20일 이내 공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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