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가수 '이내' 책방 공연
에세이집 소개· 관객 대화
 

▲ 아마도 책방 로고.
                                  ▲ 아마도 책방 로고.

지난 20일 오후. 태풍 다나스가 소멸하면서 남긴 억수 같은 비를 뚫고 남해 삼동면 지족마을 구거리에 있는 아마도책방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인디 뮤지션이자 에세이집 <모든 시도는 따뜻할 수밖에>(이후진프레스, 2018년)를 쓴 이내의 북콘서트가 열린 날이다. 스스로 동네가수라 부르는 이내는 전국 구석구석에 있는 작은 공간을 찾아 다니면서 6년째 공연을 하고 있다. 에세이집은 그런 공연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원래 책을 쓰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우연히 여성주의저널 <일다>에 연재할 기회가 생겼어요. 2년 반에서 3년 정도 글이 쌓이니 책 한 권 분량이 됐어요. 책을 팔려고 다니다보니 전국에 아마도책방처럼 전혀 뭔가가 없을 것 같은 곳에 숨어 있는, 각각의 색깔을 지닌 책방들을 발견하게 됐어요. 이런 공간들이 저의 새로운 무대라 여기고 하고 있어요. 이름 하나 알려지지 않은 동네가수이지만, 이렇게 계속 노래를 할 기회가 생긴다는 게 신기하다고 생각해요."

이번 북토크 제목은 '서로 아끼는 지구'다. 사람들 앞에 앉은 이내 옆 스크린에 나무를 찍은 영상이 소리 없이 이어지고 있다.

▲ 인디가수 이내 북토크 장면./이서후 기자
▲ 인디가수 이내 북토크 장면./이서후 기자

◇노래와 함께 피운 이야기 꽃

"5월에 '서로 아끼는 지구 show'라고 게릴라 프로그램을 했었어요. 그걸 준비하면서 전국의 아는 분들한테서 나무 영상을 모았어요. '쇼미더나무'라고 이름 붙였는데, 그 영상을 연결해서 틀어놓고, 누구나 와서 그 앞에서 전시하고 발표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시간을 만들었죠. 제가 기획하고 진행하고 노래하고 하다 보니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못하겠다 싶었는데 아마도책방에서 이번에 저를 부르면서 '서로 아끼는 지구'를 제목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대로 가져왔어요."

이내가 쓴 책에는 자신의 노래를 두고 '비가 오는 날 4~5명이 모였을 때 딱 어울리는 노래'라고 하는 대목에 나온다. 왜냐면 실제로 그냥 노래만 하는 게 아니라 관객에게 말을 붙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누는 이야기들이 그날 공연의 풍성한 거름이 된다.

이내는 늦깎이 인디 가수다. 서른 살에 유튜브를 보면서 기타를 배웠다. 코드 몇 개만으로 처음 만들어 본 노래가 '일단은 어쨌든 조만간에'라는 곡이다. 지금도 매번 공연을 할 때 이 노래를 부르는데, '일단은 어쨌든 조만간에'란 후렴구 뒤에 관객이 자신의 이야기를 붙이는 방식으로 활용한다.

"이런 날도 있네요/ 누구도 만나지 않고/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하루/ 이런 날도 있네요/ 외롭고 쓸쓸하고 조용하고/ 무엇보다 심심하고/ 일단 어쨌든 조만간에/ 좀 나가봐야겠어요/ 일단은 어쨌든 조만간에/ 말이나 걸어봐야겠어요." ('일단은 어쨌든 조만간에' 중에서)

이날도 그랬다. 이내는 관객들에게 후렴구에 붙여 자신이 좋아하는 나무가 무엇인지, 왜 그런지 이야기하도록 했다.

"저는 은백양 나무를 좋아해요. 뒷면이 흰색이어서 바람이 불면 반짝반짝하는 그런 나무예요."

"저는 감나무요. 그냥 색깔도 예쁘고 먹을 게 자라니까요."

"자귀나무요. 바람에 날리는 모습이 되게 예쁘더라고요."

"저는 자두나무요. 와이프가 좋아하는 과일이기 때문에."

이런 대답들을 들으며 이내는 더없이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난 듯 자신이 요즘 읽는 책 이야기를 했다. <흙의 학교>(목수책방, 2015년)다. 일본에서 무농약 사과를 재배하는 농부들의 이야기가 담긴 것으로 흙 이야기를 중심으로 우리가 자연을 보는 관점을 달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얼마 전 읽은 내용이 오늘 이야기와 잘 어울릴 것 같다며, 이내는 책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적을 만들지 않는 농업'이라는 부분이다.

▲ 남해 삼동면 지족마을 구거리에 있는 아마도책방. /경남도민일보 DB
▲ 남해 삼동면 지족마을 구거리에 있는 아마도책방. /경남도민일보 DB
▲ 아마도책방 내부 모습. /경남도민일보 DB
▲ 아마도책방 내부 모습. /경남도민일보 DB

◇우리와 연결되어 있는 자연

"제가 잘못한 일은 어떤 벌레가 사과 이파리를 먹는 것을 보고 그 벌레를 철석같이 믿어 버린 것입니다. 그것은 진실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생태계란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그물망처럼 복잡하게 연결된 시스템입니다. 생명 전체의 움직임입니다. 그 전체가 연결되어 있어서 그중 하나의 생명을 구성하고 있는 정도를 아는 것으로는 전체 그림을 알 수 없습니다. 저는 그 생태계의 일부인 생물을 인간의 편의대로 선과 악으로 구분해버리는 것 자체가 잘못의 시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해충이라든가 익충이라든가 단어에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자연에는 선도 악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의 시간을 필사적으로 살아갈 뿐입니다."

이내는 이 문장에서 뭔가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그가 보기에 우리 역시 우리의 시간을 필사적으로 살고 있으면서 매번 잘했다, 못했다 반성하고 후회하기에 정신이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연결된 존재이므로 서로 조금 더 크게 바라봐주고 기다려주고 끌어주고 했으면 좋겠다고 이내는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이내가 관객에게 던진 두 번째 질문은 '우리는 자연의 일부일까, 자신이 자연의 일부라고 느끼는 순간이 있는가'였다.

먼저 이내의 대답은 '어리고 여린 갓 태어난 것들을 아끼는 마음, 예뻐하는 마음이 느껴질 때'였다. 관객들의 대답 역시 거창하거나 무게 잡지 않고 친근한 내용이었다.

"키우는 꽃에 물 줄 때 목 마르니, 하고 꽃에 말을 붙일 때가 있어요. 대화가 되나 싶다가도 생명으로서 같은 처지여서 자연스럽게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제가 거의 평생을 동물과 함께 살았거든요. 가게에 있는 백구가 저를 반겨줄 때, 책방에 도도한 고양이가 아주 가끔 저한테 손 내밀어 줄 때 아주 기쁘고 고마운데 그럴 때면 나도 얘들과 같은 동물의 한 개체일 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이렇게 이야기가 한바탕 끝나면 이내의 노래가 또 이어진다. 누군가 목욕탕 같은 따뜻함이라 표현했던 그 목소리에 마음을 푹 담그면 아늑하고 노곤하다. 태풍이 소멸하면서 남긴 빗소리는 여전하고 이내 노래와 관객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분위기를 타고 섞여 아마도책방을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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