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 약자가 권리 주장하면 반골 취급
'누르지 않으면 당한다'는 집단 트라우마

"호주에 가서 살아 보니까 처음에 어땠나요?"

이렇게 질문하자 그 젊은이는 의외의 답을 했다. 직업이 시간제 청소부인 이 한국 젊은이는 "한국 사람들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어요"라고 답을 한 것이다. 엉뚱한 대답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는 뭘 했기에 말이다.

다음 질문은 당연히 이유를 묻게 된다. 뭐가 그렇더냐고. 대답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3~4일만 일하고 놀러 다니는 사람들. 회사 눈치 전혀 안 보고 정시 퇴근하는 사람들'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지만 늘 머언~ 나라 얘기로 치부했던 얘기다. 질문자는 또 물었다. 호주에서는 왜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고. 한국은 왜 이러고 산다고 보느냐고. 명답이 나왔다. 가장 큰 이유가 교육 때문이란다. 한국은 학교에서 노동법이나 노동자의 권리를 전혀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법도 모르고 권리도 모른다고. 사장에게 마냥 고마워만 한다고.

그렇다. 우리나라처럼 약자가 권리를 주장하면 법이고 나발이고 불순분자나 빨갱이, 반골기질 있는 놈으로 취급 받는 나라에서는 그로 인한 부작용이 또 있다. 약자에 대한 배려나 보호가 없는 것이다. 사회의 약자가 권리를 주장하면서 생기는 일상의 불편은 견디지를 못한다. 자신이 약자일 때를 잊는다. 약자를 보호하기는커녕 되레 욕한다.

나도 몇 년 전 호주에서 크게 놀란 게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 안의 건널목이었다. 내 위치와 저쪽에서 오는 자동차 위치를 보면 자동차가 나보다 먼저 건널목을 가로질러 갈 수 있는 속도였다. 그래서 나는 섰다. 근데 동시에 그 자동차도 섰다. 건널목에서 거의 3~4m나 전이었다. 대부분의 자동차들이 그랬다. 교통약자인 보행자에 대한 교통강자인 자동차운전자의 몸에 밴 운전습관으로 보였다.

나는 차 없이 자전거를 타는데 자전거는 법적으로 차도로 갈 수 있다. 갓길로 들어가는 게 불법이다. 그런데 자동차들이 무조건 빵빵거리고 고속으로 스쳐가며 어떤 경우는 욕을 하는 사람도 있다. 자전거가 미세먼지 안 만드는 공익(?)적 이동수단이라는 것에는 언감생심이다. 교통강자 자동차가 너무 무섭다는 생각을 자전거 타면서 실감한다. 인도가 따로 없는 농촌 도로에서 자전거를 오른쪽 가장자리로 가까이 붙여 흰색 차선에 거의 닿게 가고 있는데도 그렇다.

도로 위의 약자뿐 아니다. '음식약자'인 채식 하는 사람에게도 폭력적인 상황은 마찬가지다. 고기 안 들어간 음식이 아예 없다. 김치찌개는 김치보다 돼지고기가 많다. 된장찌개도 멸치 육수다.

언젠가 친한 친구들 단톡방에 글을 하나 썼다가 회장에게서 핀잔을 들었다. 만날 때마다 으레 고기를 굽고 소주부터 들이켜니까 모임 참석이 망설여진다는 글이었다. 회장이 내게 전화해서 하는 말이 "그런 말 하면 다른 동기들이 부담되지 않느냐. 그런 말 하지 마라"고 하는 거였다. 자기도 고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이며. 고기 먹는 사람 부담되지 않게 채식 얘기 하지 말라니. 음식 약자에 대한 일종의 폭력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에게 알게 모르게 '내면화된' 강자의식이 있다는 것이다. 험난한 현대사를 살아오면서 당했던 기억이 집단의 트라우마가 되어 버린 것이다. 누르지 않으면 당한다는 의식. 그게 내면화된 강자의식으로 나타나지 않나 싶다. 안 보이는 대통령 욕은 마구 하면서 바로 윗자리에 있는 상사 앞에서는 찍소리 못하는. 옳고 그르냐보다는 위냐 아래냐를 따져서 판단하는.

요즘 일본 무역제재 앞에서도 그렇다. 옳고 그름보다 뭐가 득이냐를 가지고 열을 올리는 정치인들 보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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