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혈색이 돌아왔다> 임성구 지음.
▲ <혈색이 돌아왔다> 임성구 지음.

얼핏 책장을 넘겨볼 때는 자유시인가 싶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율격이 엄연한 시조시다. 임성구 시조시인의 새 시집 <혈색이 돌아왔다>(시인동네, 2019년 5월). 2015년부터 4년간 쓴 시를 모았다. 그의 첫 시집이 16년 만에 나온 것에 비하면야 짧지만, 첫 시집을 낸 경험을 토대로 문장을 숙성시킨 흔적이 묻어 있다. 시인 스스로도 만족하는 시집이라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시인은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직장 생활을 하는 시인이라 답답하지 않을까 싶은데, 시집에는 그런 일상 속에서 문득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며 건져낸 언어들이 가득하다.

이는 특별한 경험이나 높은 곳에 있는 어떤 정신이 아니라 기분이 좋은 일, 기분이 나쁜 일, 슬픈 일, 허망한 일, 저항하고 싶은 일 같은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 고뇌들이다. 그렇기에 시가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느낌이다.

"자정 지나 한 시와 두 시 사이 느닷없이/ 캔 맥주 하나 들고 옥상에서 하늘 본다/ 어둠의 자물통에 잠긴 골목들은 음산하다 (중략) 절망은 새로운 씨앗, 절망은 새로운 등불/ 별만큼 많은 숫자로 되뇌며 기도하는 밤/ 마을 예쁜 꿈속에 있다/ 나는 저들의, 꿈을 산다" ('별을 보다' 중에서)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렸던 게 잘못이었어/ 가끔 뒤돌아보는 연습쯤은 해둘 걸 그랬어/ 이렇게 냉혈로 변할 줄/ 아는 이가 없었을까" ('반구제기' 중에서)

"잠만 자는 무용지물의 나를 들여다본다/ 한때 고된 노동도 절절한 꿈이었던 길 (중략) 억울하다 억울하다 한평생 투덜대며/ 상처 준 당신에게 반성문 쓰는 시간/ 녹이 슨, 눈물 보인다/ 저토록 환한 꽃 앞에" ('고장 난 시계' 전문)

무엇보다 이번 시집에서 그의 짧은 시들이 마음에 든다. 오래 묵힌 감정이 순간에 솟아오른 듯, 오롯한 시인의 형형한 눈빛이 여과 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서녘의 가을이 아주 깊숙이 들어왔다// 영식이 집 감나무에 매달린 저 웃음 한 통// 지금은, 가슴 저미도록// 푸른 별로 반짝인다" ('11월' 전문)

"단풍 든 네 가을의 오른쪽은 무척 환하다// 벌레 먹은 나의 왼쪽은 어둠이 매우 깊다// 무작정 흔들고 가는// 이 스산한 편두통" ('불균형의 가을' 전문)

가만히 이들 시의 호흡을 쫓다 보면 부드럽고 조곤조곤한 임성구 시인의 말투가 그대로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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