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삶은 예전과 달랐다
일상 생활로 번진 트라우마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았다

2017년 5월 1일 거제 삼성중공업 해양플랫폼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골리앗 크레인, 지브크레인 충돌 사고로 노동자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쳤다.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이 기획한 <나, 조선소 노동자>(코난북스, 2019년 4월)는 이 사고에서 가까스로 살아난 노동자 아홉 명의 일 년 뒤 이야기를 담은 구술집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사고 당시 그 끔찍한 상황을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려는 목적이 아니다. 이들 조선소 하청 노동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노동 현실을 정확하게 보자는 거다. '배 만들던 사람들의 인생, 노동, 상처에 관한 이야기'란 부제가 달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사고는 노동절 휴일 잔업·특근을 하던 하청 노동자들만 희생되어 '위험의 외주화'란 구조적인 문제를 드러낸 점, 사고 트라우마 역시 치료가 절실한 산재 승인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린 점 등 이 사고가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가 적지 않았다.

먼저 하청 시스템은 우리나라 노동 구조에서 유달리 발전한 방식이다. 상황에 맞게 노동자 수를 쉽게 늘리거나 줄일 수 있고, 정규직이 꺼리는 위험한 일을 맡길 수 있으며, 인건비도 적게 든다는 장점 때문이다.

"우리끼리 나쁘게 이야기하면 조선소는 진짜 인생 막장들이 왔다는 식으로 얘기해요. 할 줄 아는 거 없고 배운 것도 없는 사람들이 태반이거든요. 오늘 술 먹고 다음 날 안 나오고, 말도 없이 째고 그래요. 일이 그마이 힘든 거지요." (86쪽)

"배를 만든다는 게 기술이 엄청 필요한 일이잖아요. 숙련도가 중요한데 개나 소나 아무 조건 없이 다 받아요. (중략) 하청회사 입장에서는 초보자가 많아야 돈을 많이 남기니까 그런 사람들을 왕창 받는 거죠. (중략) 그 안에 일을 잘 아는 사람과 안전교육도 제대로 못 받은 사람이 다 엉켜 있어요." (36쪽)

조선업이 호황일 때 조선소 하청 노동은 몸이 엄청 고되긴 해도 돈벌이는 좀 됐다. 그러니 별다른 기술 없이 삶의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 이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하여 이들에게 조선소는 희망의 씨앗이기도 했다.

"솔직히 내가 망해갖고 여기 내려왔거든. 남편은 2001년에 먼저 내려오고 나는 서울에서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는데 결국은 다 망해 먹고 내려왔지. (중략) 마흔여섯에 조선소에 처음 들어갔어. 애들은 다 키웠으니 내 손이 따로 필요하진 않을 때라 일어서려고 진짜 5,6년은 앞뒤 안 보고, 야간도 마다하지 않고 용접 일을 했어." (59쪽)

아마 사고 현장을 직접 보지 못한 이들은 곧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을 테다. 하지만, 사고 현장에서 다치거나 바로 옆에서 동료, 친구, 가족의 죽음을 지켜본 이들은 달랐다. 사고 이후 몸이 아니라 마음마저 무너져 버렸다. 이들이 정신적으로 입은 상처는 일상생활을 마구 흔들어 놓을 정도로 심각했다. 예컨대 몇몇 이들이 경험한 통제 불가능한 분노는 보통 극도의 불안에서 온다. 그게 사고 트라우마다.

▲ 노동자 31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거제시 장평동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사고 다음날 현장.  /경남도민일보 DB
▲ 노동자 31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거제시 장평동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사고 다음날 현장. /경남도민일보 DB

"작은 거에도 많이 민감해지더라고요. 부부싸움도 자주 일어났어요. 너무 싸우니까 경찰 출동한 것도 몇 번 될 거예요. 그리고 애들한테도 소리 지르고. 심지어는 아이들한테 해코지할까 봐 스스로 불안한 거예요. 왜 이러냐는 생각이 들죠. (중략) 동생이 저를 말리면서 그래요. 이건 아니다. 심각하게 말하는 건데 병원에 진짜 가봐라, 정신과." (248-249쪽)

"죽는 것에 대한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갑자기는 아니고 차츰차츰 온 것 같아요. 내가 '죽어야겠다'가 아니라 '아, 이러다 죽게 되는 건가', '오늘 자다가 못 일어나면 어떡하지' 이런 막연한 공포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리고 사고 후 계속 느끼고 있는 증상이 여자 하이톤 목소리, 소리 지르는 거, 애기들 큰 목소리 너무 듣기 싫고, 엘리베이터 타는 것도 힘들어요." (218쪽)

이 사고 이후 트라우마 치료의 중요성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고 트라우마가 산재 승인을 받기는 몹시 어렵다. 노동자들이 쉽게 증명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로 산재를 승인 받은 건 제가 처음이었어요. 그나마 저는 가족 중에 관련 정보를 아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일찍 이렇게 할 수 있었죠. 1년이 지나서야 트라우마로 산재 승인을 받으신 분들이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하청업체, 삼성, 국가, 어디서도 조언 한마디 해주는 사람이 없었잖아요. 그게 너무나 부당하다고 생각해요." (162-163쪽)

생각해보면 원칙을 지켰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나라 하청 구조 안에서 원칙을 지켜야 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밝히는 일은 쉽지 않다.

"안전사고라는 게 그래요. 안전관리자, 작업 지시자, 그 사람들만 (작업자들을) 확실히 쪼면 절대 다칠 일이 없어요. 대신 일 진도가 늦어지고 수익은 줄겠죠. (중략) 또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되니깐 매년도 아니고 일주일이 멀다 하고 안전사고가 계속 터지잖아요." (98쪽)

사고 후 2년이 지난 지금, 몇몇 현장 노동자들이 유죄 선고를 받았을 뿐 사고의 근본적 원인이 무엇이고, 근본적인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직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코난북스, 288쪽, 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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