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들은 이야기와
작가의 경험담 연재 만화
성장과정서 서로 이해하고
고난 극복하는 모습 그려

아빠, 엄마와 나, 그리고 남동생이 속해 있는 단체 채팅방이 있다. 채팅방에는 주로 또 다른 가족 구성원이라 할 수 있는 두 마리의 고양이 사진이 올라오거나 일상적이고도 사소한 대화들이 오고 간다.

오늘 아침 가족 채팅방에 남동생이 보낸 한 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얼굴 사진을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미래의 나이 든 모습으로 바꾸어주는 어플로 찍은 셀카였다. 사진 속 나이 든 동생의 모습은 믿기 힘들 만큼 아빠를 닮아 있었다. 아니, 그냥 아빠의 셀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였다.

자녀가 부모를 닮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단순히 외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행동과 생각,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부분에 이르기까지 부모와 자녀는 마치 한 지체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나는 처음부터 온전히 나인 줄로만 알았지만 가끔 내 모습 속에서 부모의 흔적을 발견할 때마다 이 관계가 얼마나 내 삶 전반에 각인되어 있는지를 새삼 깨닫곤 한다.

서로가 서로를 선택하지 못한 채 우연히 만났지만 영원히 벗어날 수도, 독립적일 수도 없는 이 관계에 대해 생각하면 자주 아득해지고 언제까지나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면으로는 영원히 오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때로는 슬픔으로 다가오는데, 엄마와 아빠가 만나 나를 낳고 키웠을 나이와 내 현재 나이가 비슷해지면서 그런 생각이 더 잦아졌다.

호칭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불렸을 그들의 젊은 날은 어땠을까. 막연히 궁금해하다가 이내 서글픈 마음이 들어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마음속 어딘가로 흩어버리게 된다.

◇일간 이슬아

'나'에 대해 고민하면서 부모를 떠올리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부모는 나의 과거이자 때로는 미래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부모는, 특히나 내게 엄마와의 관계는 나를 알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문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여전히 나는 그 문 앞에서 서성이고 머뭇거리지만 나보다 젊은 한 작가는 용감하게도 그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와 담담히 자신과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의 이슬아 작가는 자신의 엄마 복희에 관한 얘기를 그림 에세이로 펴냄으로 엄마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를 내놓았다.

지난해 책방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책을 고르라면 이슬아 작가의 책 두 권을 빼고는 얘기할 수 없다. 이슬아 작가는 본인을 연재 노동자라 지칭하며 독자와 직접 만나는 플랫폼을 제작, 하루에 한 편씩 자신이 쓴 글을 메일로 독자에게 직접 전송하는 셀프 연재 프로젝트인 '일간 이슬아'를 시작했다. '일간 이슬아'는 한 달 치 구독료 1만 원을 내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메일로 그의 수필을 보내주는 시스템으로 글 한 편당 500원의 고료를 받는 셈이다. 프로젝트 '일간 이슬아'는 그해 독립출판물 <일간 이슬아>로 묶여 나왔고 같은 해에 문학동네에서는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라는 그림 에세이를 출간했는데 두 권 모두 재고를 두기 무섭게 팔렸던 기억이 난다.

내 경우에는 <일간 이슬아>가 나오기 전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로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 글만 쓰는 작가인 줄 알았는데 그림 에세이라는 형식으로 작가를 먼저 만나게 된 것이다.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는 2015년 9월부터 2017년 6월까지 작은 웹사이트에 연재된 만화를 모아 만든 단행본이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이 책은 '어떤 모녀가 함께 자라도록 도운 풍경을 묘사한 책이며 한 아이가 태어나 성인이 되기까지의 역사 혹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서 독립하는 과정'에 대해 그리고 있다.

◇엄마와 나의 이야기

이 책은 작가의 기억을 바탕으로 쓰고 그렸으나, 기억이란 언제나 왜곡과 오해를 동반하기 때문에 완전히 논픽션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책 전반에서 엄마인 '복희'에게서 들은 이야기, 작가의 경험들은 고스란히 녹아 독자의 마음에 스민다.

'복희'라는 이름을 가진 60년대생 엄마와 90년대생 딸인 '슬아'가 성인이 되기까지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절반은 엄마인 '복희'의 이야기이며 절반은 '슬아'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국문과에 가고 싶었고 재능이 있었지만 시절이 그러했기에 합격증을 받고도 대학 등록을 포기해야 했던 복희는 부품 공장 경리로 취직하게 된다. 그때 만난 웅이와 결혼해 두 자녀를 낳고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 복희는 여러 직업을 전전해야 했다. 삶의 과정 속에서 슬아와 찬이라는 남매를 낳고 가끔은 눈물 흘리고 분투하기도 하며 동시에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기도 한다.

슬아 역시 엄마 복희가 일군 작은 세계 속에서 사랑받고 사랑하며 자라난다. 슬아는 사춘기에 접어들며 가끔은 엄마를 원망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지만 몸과 마음이 성장하면서 복희의 존재를 다각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매 순간 자신의 몸에 새겨진 엄마의 그림자를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가 자연스럽게 왜 슬아가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되는지를 깨닫게 한다.

엄마인 복희는 슬아에게 무엇 하나 강요하거나 바라는 것이 없다. 있는 그대로의 슬아를 바라보고 응원해 줄 뿐이다. 자신의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돈을 벌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슬아는 엄마 복희가 그랬던 것처럼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돈이 없는 것보다 불행한 것은 시간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시간 대비 고수익이 가능한 누드모델을 아르바이트로 선택한다.

슬아가 누드모델 일을 한다는 것을 복희에게 말하자 복희는 그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묻고, 슬아에게 필요한 것 가운데 본인이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해줌으로 무언의 응원을 보낸다.

'나를 씩씩하게 만든 이야기니까 누군가에게도 힘이 된다면 좋겠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복희의 응원은 슬아를 씩씩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읽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이 받은 응원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엄마가 소피 마르소 사진을 자주 바라보던 때가 못 견디게 그리워졌다. 그때 엄마는 최대한 자신을 꿈꿀 힘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엄마가 될 수 있었던 어떤 자신, 그 무수한 가능성들이 다 아까워서 서글펐다."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중에서)

◇엄마라는 여인

슬아는 젊은 날의 복희처럼 여러 가지 일을 하고 가끔은 혼자 울기도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려는 주체적인 사람이 된 것 같다. 동시에 자신과 닮은 한 여인, 엄마라는 이름 말고 '복희'라는 이름으로 살았을 순간들이 떠올라 가슴 아파하고 안타까워한다.

이 글을 쓰는 내내 나 역시 나의 '복희'씨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삶은 내가 한 선택의 총합인 동시에 선택하지 않은 일들의 총합이기도 하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나로 인해 하지 않았을 엄마의 선택의 총합 위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들이 늘어났다는 생각에, 그리고 그것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는 부모님의 태도에 때론 슬프기도 하지만 그래서 나는 내 삶을 더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작가는 이 책이 단순히 모녀 관계에 대한 내용이 아닌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의 우정에 관한 내용이라고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남'인 부모에게 받은 숱한 응원을 작가는 자신의 인생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나감으로써 갚아나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는 누군가의 복희이자 슬아였을 우리 모두에게 '고난에 지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주는 책이 아닐 수 없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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