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서 대학 나와 고향에 취업
거제 열쇳말로 모임·행사 기획
조선소 노동자 소통의 장 마련
청년 마을학교·문화공동체도
해녀 체험 프로그램 장관 표창

부산에서 대학교를 다녔던 윤지원(28) 씨는 4학년 때 막연히 문화기획자를 꿈꿨다. 거제에서 나고 자란 윤 씨는 서울이나 부산에서 취업하는 친구들과 달리 고향에서 일하고 싶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가족이 있는 거제도가 좋았다. 그는 문화기획자에게 필요한 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트를 배웠고 거제지역의 한 문화기획사에 취업을 했다. 문화예술교육, 지역 축제를 기획했다. 재밌었다. 머릿속 다양한 아이디어가 실현되고 참여자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어려운 회사 상황 탓에 그는 일을 그만뒀지만 문화기획자로서의 삶은 계속됐다. 윤 씨는 2017년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지역문화 전문인력 양성사업을 수료했고 이듬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거제 해녀 문화를 보존하고 청년 해녀를 육성하자는 취지로 기획한 '해녀할망과 개날이'라는 문화관광 프로그램이었다.

▲ 윤지원 문화기획자가 거제 옥포동 한 카페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김민지 기자
▲ 윤지원 문화기획자가 거제 옥포동 한 카페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김민지 기자

◇지역에 눈뜨다

윤 씨는 사실 지역이라는 키워드에 둔감했다. 그는 지역문화 전문인력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문화기획자로 활동하면서 지역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청년이 얼마나 있는지, 어떤 직업군이 많은지, 어떤 문화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지 그는 거제도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지역과 청년'에 주목했다.

"경남에서 거제가 창원에 이어 두 번째로 청년 비율이 높아요. 대부분 조선소 노동자거나 대학생이죠. 하지만 그들이 함께 모여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나 장소가 없다보니 동호회 활동이나 유흥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작년 이맘때쯤 청년포럼을 만들었습니다."

'변태들의 피크닉'이었다. 거제지역 조선소에 다니는 청년들을 모집해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자리였다. 변태는 곤충이 애벌레에서 성충으로 변하는 과정으로 윤 씨는 참가자들이 애벌레에서 번데기, 성충으로 탈바꿈하는 자리가 되길 바랐다. 1부는 다양한 지역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고 있는 청년의 이야기, 2부는 참가자들이 거제도를 표현한 칵테일을 직접 만들어 서로 소통하는 시간이었다.

▲ 지난해 7월 진행한 '변태들의 피크닉' 모습. /윤지원
▲ 지난해 7월 진행한 '변태들의 피크닉' 모습. /윤지원

이후에도 청년들의 교류는 계속됐다. 그가 일하고 있는 거제박물관 한 강의실을 빌려 '개날이 마을학교'를 진행했다. 개날(戌日)은 해녀들에게 행운 가져오는 날로 개날에 해녀들이 도구를 손질하면 해산물을 많이 잡을 수 있다고 여겼다. 윤 씨는 거제라는 지역성과 함께 개날이를 발음대로 표기하면 개나리가 되듯 청년들을 봄의 꽃으로 비유해 이름을 지었다. 청년들은 2주에 한 번씩 모여 스터디를 했고 멘토를 초청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거제지역 청년문화공동체 로코코 기획단을 만들어 작년 12월 로컬 매거진 <옥포에고>(Okpo Ego)를 창간했다. 잡지 발간회도 열었다.

"로코코는 미술양식 중 하나잖아요. 화려하고 장식적인 이 양식이 유행했을 당시 시민들의 삶은 되레 힘들었잖아요. 지금 청년의 삶처럼요. 로코코 기획단은 지역과 문화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이 모여 서로의 관심사를 기반으로 작은 모임들을 하고 있어요. 혼자서 뭔가를 하려면 힘들잖아요. 올해는 거제지역 꽃차 소믈리에 어르신과 청년이 힘을 합쳐 수익사업을 구상 중입니다."

▲ 지난해 9월 거제 옥포동 팔랑포에서 진행된 '해녀할망과 개날이' 모습. /윤지원
▲ 지난해 9월 거제 옥포동 팔랑포에서 진행된 '해녀할망과 개날이' 모습. /윤지원

◇지역을 알리다

윤 씨는 지난해 3월부터 거제박물관 학예사로 일하고 있다. "본업과 함께 문화기획자 일을 하는 걸 박물관에서 싫어하지 않느냐"라고 물으니 윤 씨는 고개를 젓는다. 그는 "관장님이 오픈 마인드세요. 박물관에 지장만 주지 않으면 괜찮다고 하세요. 젊은 때 할 수 있으면 많이 하는 게 좋다며 행사할 때 구경도 오시고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무언가를 기획할 때 지역과 함께 생각한다. 문화기획사에서 일할 때 기획한 '플리 플라이(flea fly)'도 그 중 하나다.

조선소 노동자인 남편을 따라 거제로 온 아내는 경력단절인 경우가 많다.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경력이 끊기다보니 마땅히 일할 곳이 없다.

윤 씨는 거제지역 경력단절 여성이 자립할 수 있도록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참가자들은 향초와 향수를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그들이 만든 물건을 팔 수 있는 판로를 개척했다.

▲ 지난해 9월 거제 옥포동 팔랑포에서 진행된 '해녀할망과 개날이' 모습. /윤지원
▲ 지난해 9월 거제 옥포동 팔랑포에서 진행된 '해녀할망과 개날이' 모습. /윤지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을 받은 '해녀할망과 개날이'도 마찬가지다.

그는 '왜 아무도 거제도 해녀를 모를까'라는 생각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거제도에 200명 정도 해녀가 있지만 사람들이 해녀 하면 제주도에만 있는 줄 알아요. 근데 제주도와 달리 거제도는 선주들에게만 어업권이 있어 해녀들이 선주들의 배를 타야만 물질을 할 수 있어요. 노쇠한 해녀들은 사고가 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선주들이 배에 잘 태워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은퇴를 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죠. 그래서 참가자들이 거제 쌍둥이 해녀에게 해녀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듣고 팔랑포에서 직접 해녀와 함께 물질을 하는 체험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16명 모집에 30명이 지원했고 외국인도 있었다. 그는 인당 4만 원 체험비를 모아 해녀문화기금을 조성했고 해녀기념품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모아 아트클래스를 열기도 했다.

윤 씨는 지역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하며 앞으로 전문기획자가 되는 게 목표다.

"문화기획자는 우리가 모르는 지역의 가치를 살피고, 지역의 의미를 찾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평소에 하고 싶거나 하지 못한 일들을 여러 사람이 함께 힘을 합쳐 거제도에서 한다면 더 재밌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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