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산업구조 키워온 한·일
경쟁 속 우리 과제는 '북한 열기'

일본발 무역규제로 시작된 한일 갈등이 뜨겁다. 정치·경제 분야를 넘어 언론계까지 불똥이 튀고 있다. 한동안은 이 이슈가 가라앉지 않을 듯싶다. 아니 역사적으로 길게 살펴보면 터져야 할 것이 이제 터진 것이다.

냉전 이후 한국과 일본은 비슷한 조건에 놓여 있었다. 전쟁으로 초토화된 '좁은' 국토, 자원은 부족하고 외부로 뻗어나갈 수 없는 '섬 나라'였다. 값싼 노동력과 기술을 토대로 해외 원자재를 수입·가공한 후 수출하는 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두 나라는 시점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크게 볼 때 같은 방식으로 비슷한 산업을 키워왔다.

두 나라를 관장하는 '큰 형님' 미국은 "배부르면 공산주의 안 한다"는 확고한 원칙 속에 공산권 남하를 막기 위해 두 나라 경제를 키웠다. 일본은 한국전쟁을 발판으로 미국의 후원 속에 1980년대까지 무려 30년 동안 전 세계를 누비며 눈부신 성장을 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1960년대 이후 미국의 기대대로 무역에 의존한 산업체제를 훌륭히 성장시켰다. 그러다보니 경제뿐 아니라 사회도 비슷하다. 좁은 땅에 인구가 많으니 부동산 문제가 생겼고 급속한 고령화와 지역소멸까지 서로를 닮아가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두 나라가 완전히 공평하지는 않았다. 한국은 북한과 직접 맞대고 전쟁 상태에 놓여 있었다. 청년들이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야 했고, 국가 예산의 상당 부분을 국방비로 쏟아야 했다. 한국이 공산권과 맞서면서 피땀을 흘릴 때, 일본은 그러한 '안보비용'을 고려하지 않고 온전히 경제발전에 몰두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초반 한국정부가 이를 근거로 일본에 '안보비용'을 요구하자, 일본은 1980년대 중반 엔화 차관으로 18억 5000만 달러, 수출입은행 융자로 21억 5000만 달러(7년 거치 금리 6%)를 경제협력 자금으로 '빌려'줬다. 두 나라를 키워온 미국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가슴 뭉클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 나라의 산업구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무역, 특히 수출에 의존한 체제였다. 문제는 2015년 이후 세계 무역량이 더 이상 늘지 않고 있다.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자유무역체제도 보호주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게다가 '아베노믹스' 이후 일본은 내수를 버리고 인위적으로 엔화 가치까지 조정해가며 무역에 올인했다.

한정된 파이에 비슷한 산업구조를 가진 두 나라는 서로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라면 두 나라 간의 갈등을 미국이 나서서 무마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큰 형님은 자기 살림에 더 신경쓰기 시작했다. 한정된 파이를 놓고 큰 형님의 눈치를 보지 않고 치열한 경쟁, 갈등을 할 때가 된 것이다. G20에서는 '자유무역'을 외치다가 돌아서서 무역규제를 하는 이중적인 일본의 행태는 이 같은 배경이 깔려 있다. 한일 간 경제전쟁은 어차피 당면할 일이었고, 이제 당면한 것이다.

일본과 경제전쟁을 벌여서 우리가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50년 넘게 쌓아온 산업구조를 엎을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일본이 가지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북한과 대륙이다. 북한이 잘 열리면 새로운 노동력, 새로운 시장, 비교적 풍부한 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 과거엔 북한을 열어 대륙으로 뻗어나간다는 말이 감상적인 말에 가까웠으나 이젠 생존과 직결돼 있다. 북한을 여는 것 또한 우리가 당면할 일이었고, 이제 당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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