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을 파악하는 야구감독처럼
딸들이 놀 땐 앉아서 지켜본다
아이들끼리도 근사한 경험하고
그런 하루들이 기억으로 쌓인다

요즘 주말에는 나무 그늘이 많은 오래된 공원에 가는 편이다. 놀이터는 평일 저녁마다 자주 가기 때문에 배제하고, 아웃렛과 놀이동산은 아무래도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므로 이따금 간다. 생수 몇 병과 캠핑 의자를 트렁크에 넣고 한적한 공원으로 간다면 주말 오후가 부담이 덜하다.

갈 때마다 놀이 패턴은 달라지는데, 어떤 날은 돌을 쌓아 탑을 만들고 어떤 날은 물을 부어서 진흙 놀이를 한다. 미끄럼틀이나 그네는 없지만, 잘 논다. 화장실을 가거나 모기 기피제를 뿌려주거나 틈틈이 수분을 보충시켜주는 것을 빼면, 나는 그저 바라보면 된다.

지난주에는 두 딸이 개미에 푹 빠져서 시간을 보냈다. 곧 장마라서 그런지 개미들이 유독 분주하게 움직이는 주말이었다. 서우는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개미들을 쫓거나, 드나드는 구멍을 찾느라 신났다. 처음에는 단순히 바라보기만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먹을 만한 것을 집 입구로 옮겨주거나, 개미들이 이름 모를 애벌레를 공격하면 그것을 못 하게 방해를 한다거나 하면서 놀았다. 온이도 옆에서 삐악삐악 소리를 내면서 언니를 도왔다. 개미들 입장에서는 난처할 노릇이지만, 나는 살생을 하지 않는다면 개입을 하지는 않는 편이다. 개미 덕에, 여유가 생겼다. 아내도 세로토닌이 만들어지는지 의자에 앉아 연신 발을 파닥거린다.

▲ 진흙놀이를 하고 있는 작은아이.  /정인한 시민기자
▲ 진흙놀이를 하고 있는 작은아이. /정인한 시민기자

◇풍경 속에 들어온 느낌

나도 슬그머니 책을 꺼내서 읽는다. 수업 시간에 몰래 먹는 과자가 꿀맛이듯, 짬짬이 읽는 글은 울림을 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다소 산만한 나는 진득하게 책을 끼고 앉아 있지도 못한다. 그것이 도리어 장점이다. 그 틈으로 나만의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좀이 쑤신다 싶으면 하늘을 본다. 이 나무, 저 나무의 뒷면을 구경한다. 그러다가 잔잔한 바람이 불면 시원해서 고맙고, 잎의 앞이 보이면서 공간 전체가 신선해진다. 그러면 여기가 동네 공원이 아니라, 다른 풍경 속으로 들어온 느낌도 든다. 그렇게 잠시 평화로운 오후를 보냈다.

그런데,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질서를 갖춘 클래식보다, 변주가 있는 재즈에 가깝다. 작은딸 온이가 개미들이 먹던 삭은 자두를 먹다가 나에게 딱 걸렸다. 민망한지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그렇다고 한 번 입을 댄 자두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나는 둘째의 끈적한 손을 잡고 화장실로 갔다. 순간 화가 나서 잔소리를 했지만, 차가운 물에 손을 씻겨주면서 별것 아닌 일이 되었다. 온이가 씻은 손을 입에 넣으면서 맛있다고 계속 말하는 모습이 몹시 귀여웠기 때문이다. 그날도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이야기할 때까지 나무 아래에서 시간을 보내다 집으로 돌아왔다.

▲ 카페 부근 공원 숲에서 돌탑쌓기놀이를 하는 아이들. /정인한 시민기자
▲ 카페 부근 공원 숲에서 돌탑쌓기놀이를 하는 아이들. /정인한 시민기자

◇몸보다 마음을 더 쓰는 아빠

이렇게 하루를 보낸 나를 성실한 아빠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아내는 나를 아빠로서 평가할 때, 몸보다 마음을 더 쓰는 아빠라고 이야기를 한다. 오묘한 표현인데, 정확한 표현이다. 나는 일단 체력이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다. 체력의 많은 지분을 카페에서 사용하는 편이라, 집에 오면 피곤한 날이 많다. 장사가 잘된 날은 몸이 피곤하고, 장사가 안된 날은 마음이 피곤해서 몸에 힘이 안 들어간다. 결론적으로 A급 아빠는 아니라는 말이다. 육아의 공간으로서 밖을 고집하는 이유도 나의 체력과 놀이 레퍼토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만 피곤해도 붙어있으려 노력하고 동시에 딸을 바라보기는 한다. 물론 이런 나의 시선도 진득한 것은 못 된다. 마음이 다른 곳으로 툭툭 튄다. 그래도 맥주 한잔의 유혹을 잘 참고, 지긋하게 바라보는 편이다. 나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궁둥이를 붙일 곳이 있으면 앉아서 아이들을 보는 스타일이다. 밖에서 보기에는 몸을 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야구 감독처럼 이렇게 저렇게 전반적인 상황 파악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빈틈은 있지만.

고된 날은 서우와 온이가 책이라고 상상하면 마음이 한결 수월하다. 완독하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꾸역꾸역 읽다 보면 찾을 수 있는 한 줄의 신선함을 기다리듯 아이들을 본다. 그러면, 대개 작은 지점에 닿는다. 의무와 의미가 종종 만난다. 하루는 나의 기억 속에 얼기설기 쌓이고, 딸들은 나름대로 근사한 일들을 경험해내고 만다. 반드시 기분이 좋아져서 덜 다투고 돌아오는 길에 흥겨운 노래를 흥얼거린다.

▲ 킥보드를 타는 큰아이. /정인한 시민기자
▲ 킥보드를 타는 큰아이. /정인한 시민기자

◇제법 괜찮은 삶

그러고 보면 바리스타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손님이 오든 오지 않든 거리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매장을 전체적으로 보고 있다가 손님이 나가면 자리를 말끔히 치워야 하고, 커피를 내릴 때는 에스프레소의 물줄기를 끝까지 바라봐야 한다. 어쩌면 지루하지만, 마음속은 어떤 일보다 제법 복잡스러운 직업이다. 그런 일을 무사히 해내고 나면, 손님들은 나름대로 기쁜 기억이 생기고 다시 우리 공간을 찾는다.

그나저나, 요즘은 두 딸에게 향하는 잔소리가 많이 늘어버렸다. 어떤 어린 행동을 하면 지나치게 재단하는 경우가 많다. 어린이니까, 어린 게 당연한데도. 역시나 서투른 아빠다. 두 딸이 울거나 나를 완전히 싫어하게 되었다고 선언하면, 뒤늦게 사과한다. 몸에 달라붙는 습기가 아이의 이유 없는 칭얼거림은 아닐 텐데, 그렇게 오해하는 것 같다. 그 정도에 함몰되어서 후회하는 어른이라면 곤란하다.

분주한 일상의 틈에서 작은 바람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 내 마음이 삭더라도, 아이의 마음은 상하지 않았으면. 어찌하였든, 한 공간에 바라는 것과 보아야만 하는 것이 함께 있다면 제법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 같기도 하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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