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일본어판 기사 제국주의 옹호 인식 읽혀 역사관에 심각한 우려

국내 몇몇 언론사는 한국 소식이 궁금한 일본인들을 위해 일본어판 사이트를 별도로 운영한다. 국제화 시대에 걸맞은 온라인 영역 확장 전략이다. 실제로 많은 일본인들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국내 언론의 일본어판 사이트를 애용한다.

하지만 며칠 사이 문제가 생겼다. 지난 15일 MBC 시사프로그램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는 한국 언론의 일본어판 보도들이 되레 일본 내 혐한(嫌韓) 분위기를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당한 논란이 뒤따랐다. '광복'을 '스스로 힘으로 쟁취하지 못한 것'으로, 현 정권을 '매국 반일(反日) 정권' 등으로 규정하는 자극적인 내용들이 사례로 제시돼 공중파를 탔다.

논란은 다음날(16일)에도 계속됐다. 특히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방송 화면의 일부를 캡처해 "혐한(嫌韓) 일본인의 조회를 유인하고 일본 내 혐한 감정의 고조를 부추기는 이런 매국적 제목을 뽑은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재했다.

이어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도 17일 오전 브리핑을 통해 관련 언론사의 이름을 직접 거론(조선·중앙)하면서 일본어판 보도를 규탄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논란이 커지자 이날 <조선일보>는 자사 일본어판에서 지적됐던 일부 기사를 삭제했다.

대중들의 관심은 '일부 언론'의 일본어판 사이트가 얼마만큼 '혐한 정서를 부추기는' 기사를 싣고 있는지에 쏠렸다. 어떤 기사와 사설이 일본어판에 실리게 되는지, 그 내용은 무엇인지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그래서 좀 살펴봤다.

▲ 광주 광덕고 학생들이 17일 오후 교내 태극기 상설 전시관에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 선언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광주 광덕고 학생들이 17일 오후 교내 태극기 상설 전시관에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 선언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제보복의 원인이 한국 법원과 정부 탓?

<조선일보>의 일본어판 사이트를 둘러본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소 충격적인 내용의 사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설의 제목은 '일본의 경제보복, 한국 정부는 기업을 최전선에 세워서는 안 된다'(2019년 7월 11일). 한국어 제목은 '기업을 최전선에 내세우면 안 된다'. 제목은 일부 다르지만, 크게 문제삼을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진정 심각한 문제는 제목이 아닌 '내용'에 있다. 아래는 <조선일보> 일본어판에 게재된 해당 사설의 일부다.

"애초에 지금의 문제를 불러일으킨 것은 한국 법원과 정부이다. 법원은 '한일청구권협정'에 반하는 형태로 일본 기업에 대한 개인 청구권을 인정하고 일본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지금의 정부는 이러한 외교적 갈등을 해결하기 이전에, 전 정권과 당시 재판관을 '사법농단'으로 수사하고 관계자를 감옥에 보냈다."

이 사태의 원인이 한국 법원과 정부에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한일청구권협정' 적용 대상에 일본 기업에 대한 강제동원피해자의 위자료 청구권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 즉 사법부가 '문제'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애초부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배상을 청구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인가? <조선일보>는 그게 옳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인가?

또 대법원의 판결이 '한일청구권협정에 반하는 형태'라고 짚었다. 바꿔 말하면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배상문제는 한일청구권협정에 의거해 해결돼야 했었다는 뜻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주장들은 모두 '일본 정부가 한국에 강요하는 억지'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이 내용은 <조선일보> 한국어판에도 게재돼 있다. 그러나 어구가 이처럼 강렬하지는 않다. '애초에(そもそも)', '협정에 반하는 형태로 (反した形で)', '거센 반발(激しい反撥)'과 같은 어구들이 일본어판으로 넘어오며 추가됐다.

사설을 통해 일본 우익 언론이 선호할 만한 반(反)한국적 표현을 명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7월 4일 치 <조선일보>의 '전략적 침묵 한다는 청와대, 무능 무책임일 뿐'이라는 사설이다. 일본어판에서는 '청와대의 전략적 침묵은 무능과 무책임의 다른 말에 불과하다'라는 제목으로 게재됐다.

문제가 되는 인용구는 '정부발(發) 폭탄(政府が原因の爆彈)'이라는 용어인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을 둘러싼 외교 갈등의 원인이 한국 정부에 있다는 주장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 표현은 극우 언론인 <산케이신문>에 곧바로 인용된다. <산케이신문>은 한국의 <조선일보>가 일본 수출규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처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면서 '정부발(發) 폭탄'이라는 용어도 그대로 인용했다.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징용으로 국외 및 국내로 끌려가 착취와 노동의 피해를 강요당한 사람들을 일컬어 '강제징용 피해자' 혹은 '강제징용 노동자'로 지칭한다. 반면 일본에서는 피해와 착취에 대한 어감을 줄이기 위해 '징용공(徵用工)'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처럼 어떠한 용어를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역사적 사실을 적시한다. 이는 상당히 중요한 대목이다.

따라서 '징용공'이라는 용어는 일본의 시각이 강하게 투여된 왜곡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조선일보> 일본어판에서 이 '징용공' 용어가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일보>는 5월 29일 치 일본어판에 '전 대법원장의 최초 공판 시작, 징용공 소송 개입 등 = 한국 법원'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이러한 보도 행태에 눈물 흘리는 이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이다. <조선일보>의 논리를 따르자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판결은 한국 사법부와 정부가 초래한 경제 보복의 원인이며 폭탄인 것이다.

7월 9일 <조선일보>는 '수학여행이라는 말도 친일 취급하는 시대착오'('修學旅行'という言葉すら親日扱いする時代錯誤, 한국어판 제목 : '수학여행'에도 친일 딱지, 시대착오 행진 끝이 없다)는 제목의 사설도 실었다. 경기도교육청이 학교생활 속 일제 잔재 발굴 조사를 진행하며 '수학여행' '파이팅' 같은 일상 용어를 청산 대상으로 지정했다는 사실에 근거해 작성됐다.

일본어판 해석 : "수학여행은 일본통치시대, 조선의 학생들에게 일본을 견학시키던 행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수학여행이라는 말까지 '친일'이라고 단정한 것이다."

일본어 원문 : "修學旅行は日本統治時代, 朝鮮の生徒に日本を見學させた行事から始まったとして, 修學旅行という言葉まで「親日」と決め付けたのだ."

◇'일본통치시대'라는 표현

이 사설은 지나친 반일(反日) 정서를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지적할 것은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라는 표현이 아닌 '일본통치시대(日本統治時代)'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가볍게 보아 넘기기 어려운 부분이다. '일제강점기'라는 용어에는 일본 제국에 의한 국권 피탈로 식민지 지배를 겪어온 우리 민족의 역사적 관점이 내재돼 있다.

그러나 '일본통치시대'라는 용어는 완전히 다르다. 우선 일제가 아닌 일본으로 표현했다는 것에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조선일보>의 인식을 유추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어판에는 일제강점기라고 표현돼 있고, 일본어판에는 일본통치시대라고 표기돼 있다는 점이다.

또 '통치시대'라는 표현에서 일본의 국권 피탈이 합법적이었다고 해석하는 경향이 읽힌다. 이 같은 인식에 따르면 한(韓) 민족은 강제력과 불법을 동반한 '강점'의 시대를 살아온 것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국가에 의한 합법적 '통치'를 받아온 게 된다. 청와대 등이 비판하는 '매국적 역사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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