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5만 명 피해 구제 노력...국내 첫 세입자보호조례 성과
한 씨, 도움받아 채권추심 해결...고마움에 11년째 상담원 봉사
'YMCA 시민중계실은 억울한 일이나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도 힘이 없거나 방법을 몰라서 부당한 처우를 감수해야 하는 시민의 문제를 관계기관에 중재나 직접 처리해줌으로써 개인의 권익이 무시되는 사례를 방지하고 모든 사람의 인격이 존중되는 밝고 건강한 사회를 건설하고자 한다.'(YMCA 시민중계실 목적문)
30년 전인 1989년 7월 21일 마산YMCA 시민중계실이 문을 열었다. 사무실·전화 등 제반 여건이 완벽히 갖춰지지 않고, 실무자 채용과 인건비 문제 등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안승엽·김영덕 마산YMCA 이사가 주축이 돼 꾸린 시민중계실위원회가 앞장섰다. 두 사람이 초창기 시민중계실 살림을 책임졌다.
시민중계실을 이끈 또 다른 축이 있다. 그해 5월 18일부터 6월 22일까지 10개 강좌로 짠 교육을 이수한 자원봉사상담원. 옥복연 상담실장을 비롯해 6명이 보수를 받지 않고 시간과 재능을 쏟아 부었다.
세입자 보호운동으로 출발한 마산YMCA 시민중계실은 개소 첫해 상담 122건을 처리했다. 이후 30년간 마산YMCA 시민중계실은 소비자 5만 명의 피해 사례를 듣고 함께 풀어왔다. 매월 평균 120건, 매년 평균 1700건에 이르는 소비자 피해를 접수해 해결했다.
지난 30년간 시민 4만 7000여 명 이야기를 듣고 함께 해결하는 데 앞장서온 자원상담원만 150명이다. 2009년부터 11년째 자원상담원 활동을 해온 한갑선(70) 씨도 그중 한 명이다. 한 씨가 마산YMCA와 인연을 맺은 건 2008년이었다. 정수기 렌털 서비스를 이용하던 중 2003년 업체가 부도났었는데, 2008년 신용정보회사로부터 9개월 렌털료 80만 원이 미납됐다며 지불요청서를 받은 것이다.
렌털료를 매달 자동 이체했던 한 씨는 지불요청서를 무시했는데 9번째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지급명령서를 받았다. 억울한 심정에 한 씨는 마산YMCA 시민중계실 문을 두드렸고, 도움을 받아 채권추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 씨는 "살면서 이렇게 고마운 일을 하는 곳이 있는 줄 몰랐다"고 회상했다.
시민중계실 간사로부터 상담 봉사를 제안 받은 한 씨는 그해 소비자법률대학 교육과정을 밟았다. 한 씨는 "처녀 때 공부를 많이 하고 싶어도 못했었는데 봉사를 하면서 공부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고 했다. 소비자법률대학을 수료한 한 씨는 그렇게 시민중계실 활동을 시작했다.
첫 상담할 때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한 씨는 "중고차를 샀는데 성능기록부에는 양호한 것으로 나왔어도 차량에 문제가 발생한 경우였다"며 "시청 공무원과 자동차 딜러 등에게 문의해 중고차량도 특정 기간 내 무상으로 수리받을 수 있다고 안내해줬다"고 말했다. 한 씨는 "첫 상담을 문제없이 해내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졌다"고 말했다.
마산YMCA 시민중계실이 거둔 성과는 상담 외에도 이루 말할 수 없다. 1980년대에 주택임대차보호법 제정에 참여하고 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 홍보활동에 주력했다. 특히 1990년대 말 세입자 보호운동을 시작해 2001년에는 전국 최초로 마산시(현 창원시)가 '세입자보호 조례'를 제정하는 성과를 냈다.
삼성생명 암보험 집단 피해구제, 도시가스 요금 환불운동, 대형 약국 모니터, 마라톤대회 참가비 환불규정과 세입자 보호조례 제정, JM글로벌 렌털 피해 구제 등 대표적인 소비자운동을 일궜다.
한 씨도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헤나 염모제 피해자들을 돕고자 앞장서 치료비를 실손보험 청구할 수 있도록 사례를 만들었다. 지난해 5월 '소비자단체와 함께하는 열린포럼'에 참석해 '머리염색제 등 화장품 안전관리 방안'에 대한 지정토론도 했다. 정부는 염색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연구용역을 거쳐 피해 사례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한 씨는 "피해자로 시민중계실을 찾았다가 우연히 시작한 봉사활동이 내 삶을 바꿔놓았다"며 "요즘 같은 100세 시대에 다른 사람에게 모범이 돼 나이가 들어도 이렇게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젊게 산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앞으로도 계속해서 자원상담원 활동을 하며 젊게 살겠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