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련된 기술 필요한 용접·곡직 작업
땀값이 턱없으니 청년들은 외면하고

하지를 지나며 하늘 꼭대기까지 오른 태양은 이카로스가 날갯짓도 하기 전에 녹여버릴 듯 달구어졌다. 춘하추동이 아니라 두 계절밖에 없다는 조선소의 여름나기가 깔딱고개를 넘어간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대형 환풍기가 태풍급 바람을 쉴 새 없이 불어넣지만, 땡볕에 절절 끓는 철판에 둘러싸인 유조선 탱커 속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익어서 들어오는 뜨거운 바람조차도 용접하는데 결함이 생길까 봐 직접 쐬지 못하고 3000도 자외선 불덩어리를 오롯이 끌어안은 조선소의 꽃이라는 용접공의 등짝엔 하루종일 소금꽃이 피고지고 또 피고지고 열두 번을 피고진다.

조선소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전문 직종들이 있다. 용접을 하면 높은 열로 인해 철판에 변형이 생겨 울게 된다. 이것을 다림질한 듯이 본래대로 미끈하게 펴는 일을 곡직(曲直)이라 한다. 이 곡직 작업을 하는 곡직사의 작업 도구는 불대와 물대다. 종이나 천조각도 아닌 두꺼운 철판을 불과 물로 떡 주무르듯 한다. 용접으로 변형된 곳을 반듯하게 펴기도 하지만 기계로 대충 가공한 곡면부를 정밀하게 가공하기도 한다. 40년 가까이 곡직사로 근무하다 퇴직한 늙은 곡직사가 불 들어간 깊이를 알만해지니 손 놓게 되었다고 탄식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숙련된 기량이 필요한 직종인데 이들에게 여름과 겨울은 정말 혹독하다.

땡볕에 나앉은 철판은 그냥으로도 달걀프라이가 되는데 거기다 불을 먹이는 여름, 그들의 얼굴은 늘 가을 홍시 빛깔로 익어 있다. 철판에 손이 쩍쩍 달라붙는 겨울에는 물대 쥔 젖은 손이 시려 죽을 판이다. 조선소 열일 중에 힘들고 열악하고 위험하지 않은 일이 하나라도 있을까마는 이들의 여름은 더더욱 힘들게 지나간다.

보이지 않는 곳을 거울에 비춰보며 용접하거나 불과 물 들어간 깊이를 정확히 가늠하는 최고 숙련 노동자들이 혹독한 여름나기보다 걱정하는 것이 있다. 공장에는 정년이 내일모레거나 이미 넘겨 낮은 임금으로 연장 계약을 한 늙은 노동자들이 대부분이다. 젊은이들이라야 우즈베키스탄이나 베트남, 태국, 미얀마 등 동남아 외국인 노동자들이고 정작 우리 젊은이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TV에서 방영하는 극한 직업에서도 젊은이들은 보이지 않고 늙은 장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은다. "요즘 애들 누가 이런 일 하려고 하나."

언론에서는 청년 실업률이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고 떠들어댄다.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난리라는데 이곳에선 사람을 구하지 못해 난리다. 왜 이런 낭패가 생겼을까.

내년 최저임금이 노동계와 경영계 사이 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가 8590원으로 정해졌다. 어떤 경제학자라는 분은 최저임금이 지나치게 높다며 4000~5000원 정도가 적당하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 분의 자녀에게 그 돈 받고 등짝에 소금꽃이 만발하고 얼굴이 익고 손이 얼어 터져가며 일하겠는지 물어보고 싶다.

극한의 노동 강도에 비해 그 대가가 턱없이 적으니 누가 달려들겠나. 거기다 공돌이 공순이로 비하하는 기술직 천시 풍조까지 거드니 사람은 있지만 사람 구하기가 힘든 것이다. 유럽 노동자들처럼 극한 직업이나 전문 기술직이 더 높은 임금과 대우를 받는다면 청년 실업률이 한층 낮아지지 않을까. 청년들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겠다. 적성에 맞지도 않으면서 편하고 쉬운 일자리를 찾아 스트레스에 시달리느니 좀 고달프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에서 높은 성취도를 느끼는 것이 뿌듯하지 않겠나.

할머니는 거지가 동냥을 오면 쌀이나 보리쌀이 아닌 찧어서 먹으라고 도정하지 않은 벼나 보리를 주셨다. "그 짓도 하기 싫거든 굶어 죽어라."

일자리는 널려 있다. 좀 더 힘든 만큼 땀값을 톡톡히 하고 가슴 뿌듯할 만한 일들이…. 베적삼 흠뻑 젖어 콩밭 매는 아낙이 지나간 자리 마알간 이랑에 부는 바람이 얼마나 시원하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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