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주택·잘 가꿔진 화분
시간이 느린 듯한 풍경 만나
동네 어르신들 연륜도 느껴져
선생 살았던 낡은 집이 기념관
작업물 가득 쌓여 보존책 절실

이번 느낌여행은 도착지를 먼저 정했습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신월동에 있는 괴암 김주석 기념관. 마산중앙고 입구에서 도로 건너편으로 바로 보이는 조그만 건물이죠. 김주석(1927∼1993) 선생의 그림들을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지역에서 독창적인 작업을 많이 해온 지역 서양화가 중 한 분입니다. 하지만, 화가보다는 미술교사로, 독립운동가로 더 조명을 받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일제강점기 번화가

어디서 출발할까 고민하다가 마산제일여고 아래 동네에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마산제일여고에서 마산중앙고로 이어지는 도로(고운로) 아래 경사지에 있는 주택가를 지나는 여정이죠. 마산합포구 문화동과 반월중앙동에 걸친, 마산에서도 꽤 오래된 주거지역입니다.

마산제일여고 아래 문화동 쪽은 골목이 제법 가지런합니다. 내부를 전혀 볼 수 없는 높은 담장과 숲처럼 빼곡한 정원수, 다시 말해 여지없이 부잣집으로 보이는 곳도 있네요.

문화동은 1889년 마산항이 개항하면서 일본인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동네입니다. 나름 구획을 정해서 발전한 곳이기도 하죠. 이 일대는 이른바 신마산으로 불리는데, 일제강점기에는 행정은 물론 상업적으로도 마산의 핵심지역이었습니다.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지금도 곳곳에 일제식 주택이 남아 있습니다. 개중에는 아직도 어엿한 가정집으로 쓰이는 곳도 있고요.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문화동 쪽으로 주택가 깊숙하게 들어앉은 카페도 몇 보이네요. 근처 금강노인복지회관 어르신들이 운영하는 카페도 있고요. 최근에 마니아층을 제법 확보한 멋들어진 핸드드립 카페도 있습니다.

▲ 마산제일여고와 마산중앙고 사이 도로 아래 경사지 주택가. 마산에서도 오래된 동네다. /이서후 기자
▲ 마산제일여고와 마산중앙고 사이 도로 아래 경사지 주택가. 마산에서도 오래된 동네다. /이서후 기자

◇복잡한 골목을 지나

반월중앙동 지역으로 넘어가면 집들이 한층 빼곡해집니다. 경사지에 밀집한 모양이 꼭 부산 감천문화마을 같습니다. 물론 그만큼 색깔이 화려하진 않지만요. 반월중앙동 지역은 근현대를 지나며 마산의 핵심으로 발전한 곳입니다. 지금은 마산합포구청이 된 시청사 주변으로 법원지원, 검찰지청, 세무서, 경찰서, 소방서 등이 다 근처에 있었으니까요.

구석구석 뻗은 복잡한 골목이 오랜 세월을 증명합니다. 예컨대 우연히 지어진 첫 번째 집을 잇따라 차곡차곡 집이 생기면서 주택가를 만든 것이죠. 요즘 유행하는 도시 재생 개념으로 보면 원도심이 보통 이런 식이겠죠.

원도심 주택가에는 주로 어르신들이 살고 계십니다. 집집마다 풍성하게 가꿔진 화분이 많습니다. 이런 것이야말로 어르신들의 오랜 연륜이 묻어나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이런 주택가 골목을 걸으면 왠지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습니다. 어르신들의 걸음이 다들 느린 것도 있고요, 드문드문 앉아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계신 그 풍경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 주택가를 걷다가 휴대전화로 지도를 살펴보니 지금 자리에서 마산중앙고 방향으로 올라가면 바로 김주석 기념관이 있는 것으로 나오네요. 큰길로 가면 쉽게 가겠지만, 굳이 복잡한 주택가로 들어서 봅니다. 가는 길이 쉽지 않습니다. 좁은 골목을 지나 문득 갈림길을 만나면 눈치껏 방향을 잡아가야 합니다. 간판도 없는 구멍가게에서 혼자 막걸리를 기울이시던 어르신 도움을 받아 다행히 길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 마산중앙고 입구 건너편으로 바로 보이는 괴암 김주석 기념관. /이서후 기자
▲ 마산중앙고 입구 건너편으로 바로 보이는 괴암 김주석 기념관. /이서후 기자

◇살림집을 고친 기념관

골목 아래쪽에서 바라본 김주석 기념관은 뜻밖에 낡은 주택입니다. 김주석 선생이 1993년 돌아가실 때까지 사셨던 집이라고 합니다. 유족이 수천만원을 보태 기념관으로 꾸몄습니다. 주택은 반월중앙동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습니다. 길 건너 마산중앙고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있었다고 하네요. 마산중앙고 연혁을 보니 1974년에 본관을 지었다고 돼 있네요. 적어도 1974년보다는 오래됐다는 말이네요.

김주석 기념관은 이 주택 2층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고운로에서 바로 들어오는 문이 있습니다. 기념관 자체 모양새는 옥탑방 같은데, 원래 선생의 작업실이었다고 합니다. 도로 사이에 집이 한 채 더 있었는데, 도로 확장공사를 하면서 헐리고 절반 정도가 남은 것을 선생이 사들여 도로에서 출입하는 문을 냈다고 합니다.

괴암 김주석 기념관에는 선생의 그림들이 가득합니다. 이 그림들은 경남도립미술관에서 단독으로 선생을 조명하면서 전시가 되기도 했고, 얼마 전에는 프랑스에서도 전시가 된 것입니다. 그림들이 많은 데 비해 공간은 참 좁아 보입니다.

현재 선생의 제자이기도 한 (사)김주석기념사업회 강미선 사무국장이 홀로 기념관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도 매일은 아니고, 수요일 하루만 문을 엽니다. 기념사업회 이사회에서 십시일반 하는 재정 상황으로는 이 정도 유지하는 것도 다행이라 하겠습니다. 강 사무국장도 따로 인건비를 받는 게 아니라 기념관 문이 계속 닫혀 있게 할 수는 없기에 일주일에 하루나마 이렇게 나와 있는 겁니다.

▲ 괴암 김주석 기념관 수장고. 미완성인 듯한 선생의 자화상 작품. /이서후 기자
▲ 괴암 김주석 기념관 수장고. 미완성인 듯한 선생의 자화상 작품. /이서후 기자

◇불안한 지역 문화 자산

1층은 살림집이었는데, 기념관 유지비라도 벌고자 지금은 세를 놓고 있습니다. 1층 방 한 칸은 따로 선생의 그림과 자료를 보관하는 수장고로 씁니다. 보존 상태가 불안해 보입니다. 공기정화기도, 제습기도 없이 액자도 없이 캔버스 그대로 그림들이 첩첩 쌓여 있습니다. 특히 파일로 차곡차곡 정리해 둔 드로잉이나 스케치 작업들은 미술학도들에게 그대로 훌륭한 교본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여건으로는 이 정도가 최선이라고 하네요.

자료를 찾아보니 2017년 3월 창원시의회 제65회 임시회 1차 본회의에서 당시 정쌍학 의원이 기념관 공간 확장 필요성을 이야기한 적이 있네요. 하지만, 2년이 더 지난 지금도 별다른 진전이 없어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기념관보다는 미술관 개념으로 접근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 화가로서 선생의 정체성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을 테니까요.

기념관에서 40센티나 될까 한 좁은 계단을 올라 옥상으로 올라가면 마산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선생은 자주 이곳에 앉아 풍경을 그렸습니다. 이렇게 오롯이 지역에서 피워낸 그의 그림이야말로 로컬리즘(지역 중심주의)이란 시대 흐름에 어울리는 훌륭한 문화 자산이 아닐까, 선생이 생전에 바라본 마산 풍경 앞에서 가만히 생각해 봤습니다.

▲ 괴암 김주석 기념관 수장고. 선생의 회화 작품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이서후 기자
▲ 괴암 김주석 기념관 수장고. 선생의 회화 작품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이서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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