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보전자소재 시장 70∼90% 점유
강국 만든 힘은 100년간 매달린 '인내'

일본의 전자소재 수출 규제로 한국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에 비상이 걸렸다. 일본 정부는 7월 4일부터 디스플레이 등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웨이퍼에 칠하는 감광액인 리지스트, 반도체 세정에 사용하는 고순도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에 대해 수출규제 조치를 개시했다. 일본은 이들 3개 품목 이외에도 첨단소재의 수출규제 확대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많은 핵심소재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배터리·휴대폰·자동차·기계 등 주력산업 전반에 걸쳐 생산 차질을 우려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소재·부품·장비 등 이른바 자본재를 수입하여 국내에서 가공 및 조립하여 세트를 수출하는 방식으로 산업을 빠르게 키워 왔다. 이러한 자본재의 수입을 줄이기 위해 우리 정부도 수십 년 전부터 소재와 부품 국산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일본에서 수입하는 소재는 2010년 142억 달러 적자에서 2018년 67억 달러 적자로 크게 줄었고, 소재산업 전체를 놓고 보면 연간 300억 달러에 근접하는 무역흑자를 낼 정도로 성장했다. 다만, 이번에 문제가 된 반도체·디스플레이 등에 사용되는 정보전자소재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중국·대만 등 전 세계 국가들이 일본산 소재를 사용하고 있다. 일본은 정보전자소재 세계시장의 70~90%를 점유할 정도로 절대 강자라 할 수 있다. 일본은 어떻게 해서 전자재료 분야의 압도적 위치에 올랐을까? 우리가 가지지 못한 뭔가를 일본은 가지고 있는 것일까?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일본의 신문기자 이즈미야 와타루는 <전자재료왕국 일본의 역습>이라는 책에서 일본이 전자소재의 절대 강자가 된 이유를 풀어 놓고 있다.

와타루는 "소재산업은 인내의 산업"이라고 표현했다. 소재 개발에서 상품화까지 10∼15년 걸리는 일이 다반사라고 한다. 일본기업들은 하나의 재료를 개발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우직하게 연구를 거듭한다고 한다. 일본의 소재업체는 놀라울 정도로 인내력이 강하고, 이 인내하는 일본 문화가 오늘의 성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일본의 정보전자소재 기업은 100년 이상의 긴 세월을 거치면서 지옥도 천국도 경험했고, 그 인내의 시간을 통해 오늘의 소재강국을 이루었다고 한다. 머리가 아찔한 정도로 수년에 걸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실험과 세세한 데이터를 철저하게 검사하고 기록한다고 한다. 섬세한 감성, 품질에 대한 철저한 집착, 오로지 한 가지에만 매진하는 느림의 철학이 커다란 무기로 작용했다고 한다. 와타루는 당장 연구 성과가 나오기를 바라는 대만과 한국이 이 분야에 진입할 수 없는 커다란 원인 중의 하나라고 비꼬기도 했다. 또 와타루는 삼성전자·LG·인텔과 같은 세계 최고의 기업들과 짝을 이룬 것이 승리의 요인이라고 했다. 일본 내의 업체에만 의존했다면 사업 규모를 확대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글로벌 수요기업과 일본 소재기업은 하청관계가 아니라, 기술개발과 생산을 공동으로 투자하는 파트너로서 공동의 이익을 창출하는 관계를 형성해 큰 성과를 이루었다고 한다.

이번 일본 정부의 첨단소재 무기화를 바라보면서, 경제학에서 진리처럼 언급되고 있는 글로벌소싱, 국제분업, 파트너십 등을 더는 맹신할 수 없게 되었다. 정치적·외교적 이슈에 의해 이들 경제 활동방식이 언제든지 붕괴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와 기업은 소재·부품의 국산화를 위해 더 가열차게 노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국산화 과정에서 당장의 결과를 바라는 단기적 해법으로는 일본으로부터 '소재독립'을 이룰 수 없다. 소재의 특성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지금의 반도체 소재 사태는 기술 부족이 아니라, 100년을 기다리겠다는 인내, 섬세, 끈기 부족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 느리지만 끝까지 해보겠다는 흔들리지 않는 행동이 있어야 절대강자를 이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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