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4%가 폭행·협박 없이 당해
"개정·비동의간음죄 신설해야"

강간죄 성립 요건을 고쳐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현행법상 강간죄는 '폭행·협박'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피해자의 '동의' 여부로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형법은 강간죄와 유사강간죄에 대해 '폭행 또는 협박으로'라는 단서를 달아놓았다. 강간죄가 인정되려면 피해자는 가해자로부터 폭행이나 협박을 당해 저항하기 어려웠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폭행이나 협박을 명확히 입증하지 못하면 강간죄로 처벌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문제점은 계속 제기됐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법상 폭행·협박이 명시돼 있어, 요건에 맞지 않으면 강간으로 인정되는 사례가 거의 없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2월 폭행·협박이 선행되지 않은 성폭행 사건을 강간으로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법조계에서 화제가 될 정도였다. 2017년 마사지업소에서 고객을 강간·유사강간한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56)은 재판 과정에서 "강간죄에서 요구되는 폭행이나 협박이 일절 없으므로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지난해 7월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형사1부(전국진 부장판사)는 "비록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간음행위를 하기 전 어떠한 유형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밀폐된 공간에서 신체를 세게 붙잡는 등 피해자를 현저히 곤란하도록 한 것은 강간죄에서 폭행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항소심과 상고심 재판부도 "법리의 오해가 없다"고 판결했다.

이처럼 법원이 강간죄 성립요건에서 폭행과 협박의 범위를 점점 더 넓게 적용하더라도, 근본적으로 법을 고치지 않으면 '처벌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여성단체의 지적이다. 경남여성회 성폭력상담소 등 208개 단체가 참여한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는 올해 1~3월 전국 성폭력상담소 66곳에서 1030명을 상담한 결과 폭행·협박 없이 벌어진 강간·유사강간이 71.4%(735명)에 이른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나온 여성가족부 <성폭력피해상담 분석 및 피해자 지원방안 연구> 보고서도 "권력이나 지위 등 위력을 가진 가해자는 폭행이나 협박을 하지 않고도 피해자를 유인해 성폭력을 저지를 수 있으며 거부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기도 어렵다"며 "비동의간음죄 신설 등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강간죄 개정 연대회의는 지난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형법과 성폭력 관련 법 개정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가해자의 물리적인 폭행이나 명시적인 협박을 수반하지 않는 다양한 성적 침해가 벌어지고 있다"며 "형법 제297조 강간죄를 개정해 성폭력 구성요건을 '동의' 여부를 중심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회에는 강간죄 구성요건을 폭행·협박 대신 '의사에 반하여'나 '동의 없이'로 고치거나 비동의간음죄를 별도로 신설하고자 하는 형법 개정안 9건이 발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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