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10명 중 8명 집유·벌금형
대법원 "연말 양형기준 마련"

끊이지 않는 불법촬영 성폭력 사건. 그러나 지난 5년간 경남에서 불법촬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10명 중 8명은 집행유예나 벌금형 등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이 때문에 불법촬영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이 없어 형량이 재판부마다 들쑥날쑥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양형기준은 법관이 선고 형량을 결정할 때 참고하는 기준인데, 자의적 판단에 따라 형량이 지나치게 차이나는 것을 막고자 범죄 유형별로 형량 범위를 설정한 것이다.

◇늘어나는 범죄 = 카메라를 이용한 불법촬영 성폭력은 계속해서 늘고 있다. 온라인 시대에 불법촬영 범죄 피해는 촬영물 유포로 이어지면 더 커진다.

지난 8일 경남지역 한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 ㄱ(58) 씨가 구속됐다. ㄱ 씨는 2018년 3월부터 지난달까지 근무지에 카메라 2대를 설치해 여성동료 3명이 옷을 갈아 입는 모습 등을 126차례 불법 촬영한 혐의를 받고 있다. ㄱ 씨는 촬영물을 이동저장장치(USB)에 담아뒀는데, 이를 잃어버렸다가 덜미를 잡혔다. USB를 주운 다른 공무원이 경찰에 신고했다.

이날 SBS 김성준 전 앵커가 지하철역에서 불법촬영을 한 혐의로 입건된 사실도 알려졌다. 김 전 앵커는 지난 3일 오후 11시 55분께 서울 영등포구청역에서 여성의 하체를 촬영한 혐의를 받고 있다.

여성들은 사람이 많이 몰린 곳에 가면 불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3월에는 진해군항제가 열리는 여좌천에서 한 30대가 신발에 소형 카메라를 부착해 여성의 신체를 불법촬영한 혐의로 붙잡히기도 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전체 성범죄 가운데 불법촬영은 2008년 3%(585건) 수준이었으나 2014년(24.1%·6735건) 이후 매년 20%를 넘게 차지하고 있다.

◇"양형기준 필요" = 경남경찰청 집계를 보면 도내 불법촬영 범죄는 2014~2018년에 915건 발생했다. 이중 22명은 구속됐고, 618명은 불구속 입건됐다.

같은 기간 경남에서 불법촬영죄 처벌 현황을 보면 86.7%는 집행유예나 벌금형이었다. 양산을 제외한 경남(창원지방법원 관할)에서 불법촬영에 대한 처벌 현황(선고 기준)을 보면 1년 이상 징역·금고 실형은 12명, 1년 이하 징역·금고는 7명, 집행유예 105명, 재산형(벌금) 91명, 선고유예 6명, 무죄 4명, 소년부 송치 1명 등이다.

대법원은 불법촬영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설정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법관의 판단에 따라 처벌 편차가 다른 사례도 있다. 지하철에서 휴대전화 카메라로 여성 48명을 촬영한 한 이는 징역 4월에 집행유예 2년, 9명을 촬영한 이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또 지하철에서 1명을 휴대전화로 촬영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람은 벌금 400만 원, 2명을 촬영한 사람은 벌금 150만 원을 선고받은 적도 있다.

이는 지난달 '디지털 성범죄와 영향' 심포지엄에서 백광균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판사가 지난해부터 올해 4월까지 서울중앙지법에서 선고된 불법촬영 범죄 1심 선고 164건을 분석해 내놓은 사례들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달 95차 회의에서 "불법촬영 범죄는 양형 편차에 대한 비판이 많아 실무상 기준을 설정할 필요가 크다"고 했다.

올해 4월 출범한 7기 양형위는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 마련을 우선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양형위 관계자는 9일 <경남도민일보>와 통화에서 "디지털성범죄 양형기준은 연말께 마련될 것"이라고 했다.

양형기준을 반드시 설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도 있다. 도내 한 법조계 관계자는 "양형기준은 형량을 고정하기 때문에, 판사의 판단 범위를 제한할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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