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불확실의 연속이란 점
공감하고 위로하는 산문집
애써 힘주어 버티는 삶보다
장단에 맞추는 유연함 강조

사람들의 손 타지 않은 지형이나 공간을 볼 때면 오래전 그곳에 머물렀을 누군가에 대해 생각한다. 주로 고속도로를 지날 때나 숲길을 걸을 때 무의식중에 그런 생각이 들곤 하는데 '조선 시대에 저곳에 누군가 살았겠지? 삼국 시대에도 사람들은 이 길을 걸었으려나?' 하는 조금은 황당하고 괴짜 같은 생각이다.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공상적인 사람으로 오해할까 봐 한 번도 소리 내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으나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또 하나, 종종 도로 위의 차들을 바라보다 어느 순간 내가 다른 공간에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눈앞의 상황들이 마치 화면 너머에 있는 영상이 되어버린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다 차들이 신호에 멈춰 한 줄로 서게 되면 자동차 속 희미한 선팅 너머 실루엣의 사연들이 궁금해진다. 그들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직업은 무엇이고 왜 이 도로에 있는 것일까 하는 무의미한 생각들. 잠시 멍해졌다가 신호가 바뀌면 상념을 걷어내고 나도, 차들도 제 갈 길을 간다. 신호가 바뀌고 한 방향으로 달려나가는 차들은 마치 유속이 빠른 강물인 것만 같다.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인가 열심히 달려나가고 있다. 사람마다 속도와 방향의 차이는 있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우리의 시간은 흘러가고,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렇게 흘러가버린 인생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저마다의 사연과 역사를 가졌을 이름 모를 사람들, 그들 대부분이 시간과 함께 흘러 어디론가 흡수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면 괜스레 마음이 우울해지기도 한다.

◇ 나와 타인을 이해하다

때로는 궁금했다. 나는 왜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그것도 수백 년 전, 혹은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이들의 자취에 대해 늘 떠올리고 궁금해하는 것일까. 내가 가고 있는 목적지만 생각하기에도 모자란 이 시점에, 왜 이토록 자주, 내 옆을 달려가는 이름 모를 사람들의 사연에 연연해하고 시선을 빼앗기는 걸까.

그러다 얼마 전 박연준 작가의 신작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를 읽다가 이런 글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발레를 배우는 곳 아래층엔 은빛요양원, 그 아래층엔 심청이요양원이 있다. 내가 토실한 몸으로 다리를 찢고, 팔을 들어 올리고, 빙글빙글 턴을 하는 동안 내 아래, 내 아래아래, 그곳에서는 어떤 노인들이 누워있을 것이다.

은빛요양원 창문은 두꺼운 커튼으로 반 이상 가려져 있고 심청이요양원 창가엔 늘어난 속바지와 팬티, 1인용 침대 시트가 널려 있다.

늘어난 속바지, 저 힘없는 면직물을 누군가 입을 거라고 생각하면 슬퍼진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내 아래,아래' 중)

 

이 페이지를 읽으며 동질감이라는 감정이 안심이란 형태로도 찾아올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 내가 가지고 있었던 감정이 특이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은 때때로 은근한 위안이 되기도 한다. 누구나 자신의 자리와 그 주변 관계들 속에서 삶의 아이러니함을 느끼는 순간들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언젠가 한 소설가가 소설을 읽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감정은 언어 이전의 것이고 소설은 감정에 언어가 부여된 순간이며, 다양한 감정을 언어로 마주할 때 우리는 자신과 다른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어쩌면 나는 이따금씩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개별적인 존재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으며 지금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이미 지나가버린 사람들과 지나치는 사람들 속 나의 자리는 어디쯤에 있는지를. 그래서 늘 주변을 둘러보고 스쳐간 사람들을 궁금해했던 것은 아닐까. 박연준 작가의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는 장르로 따지자면 소설이 아닌 산문이지만 글을 통해 나를, 혹은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해 대답을 구하지 못한 질문들이 떠올랐고, 대답은 아니었지만 질문의 씨앗을 발견하게 해 주었으니 말이다. 그렇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 한 편의 무용 작품

박연준 시인의 전작 <소란>과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를 즐겁게 읽었기에 신작 소식을 듣고 설레는 마음으로 출판을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기대하면 실망한다는 말과 달리, 이번 책은 이전과는 또 다른 면으로 넓어지고 깊어져 독자의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았다. 아니, 사실 충족시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시인 특유의 선별된 어휘와 무게감, 그 속에서도 잃지 않는 유머와 자유로움은 문장 속에 오래 머물게 했고 쉽게 책을 덮지 못하게 만들었다. 책 가운데는 작가가 직접적으로 단숨에 썼다고 적은 글도 있다.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 작가가 이 글들을 오래 다듬고 고민하며 만졌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에서는 작가의 과거 어떤 지점에 대한 회상과 여행의 단상들,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공통으로 통과하는 감정들을 다루고 있다. 또한 작가의 한 면을 구성하고 있을 서재 한편의 책들을 소개하는 부분과 글 속에 인용하거나 삽입된 아름다운 시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목차를 따라 읽다 보면 마치 잘 구성된 한 편의 무용 작품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실제로 박연준 작가는 발레를 배우고 있으며 이 책에서 발레와 관련된 에피소드들도 종종 언급된다.

 

"분야를 막론하고 모든 고수는 '춤추듯'한다. 짐승의 뼈와 살을 발라내는 도축업자, 건반을 주무르는 피아니스트, 키보드와 마우스를 조종하는 프로게이머, 수술을 집도하는 외과의사, 무대 위를 거니는 연극배우, 발끝으로 턴하는 발레리나, 고수의 동작엔 '억지'가 없다. '쓸데없는 힘'이 없다. 힘을 뺀 듯 자연스럽고 에너지가 넘친다. 몸에 밴 리듬이 모든 동작을 춤처럼 보이게 한다. 그들은 다음 동작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행동한다. (중략) 지금은 춤이 아니라 동작을 만들어보기에 바쁘다지만 언젠가는 음악을 입고 춤출수 있기를, 그게 목표다.

일주일에 세 번, 발레교습소에 나가는 할머니가 되어야지. 오전에는 발레를 배우고, 오후에는 공책을 펼쳐 시를 쓰는 할머니. 공책을 새것으로 바꿀 때마다 맨 앞에 적어놓는 문구를, 할머니가 되어서도 적어놓을 것이다.

"춤추지 않으면 무용수들은 길을 잃는다." - 피나 바우쉬

시를 쓰는 내 정체성과 무용수의 정체성이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는 '언어가 추는 춤'이라 믿는 까닭이다. 길을 잃어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 발레 교습소에 나가는 할머니가 되어야지' 중)

 

춤추듯 인생의 모든 면에서 자연스럽고 유연한 태도를 고수하고자 하는 저자의 태도는 글을 통해 독자에게 천천히 스며든다.

자신에 대해 먼저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때문에 인생은 예측할 수 없고 불확실함의 연속이며 오늘을 살아가지만 과거로부터 늘 발목 잡히고 미래로부터는 언제나 협박당한다. 예전에 알지 못했던 것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기도 하고 오늘의 전부가 미래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하는 일들로 가득 차 있는 것.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에는 작가가 경험한 인생의 이상한 일들로 가득하다. 어떤 순간에는 다짐으로 때로는 그리움과 애틋함으로 가득 찬 글들은 인생이 흘러가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버린 사람들에게 힘을 빼고 리듬에 몸을 맡기듯 부드러워질 필요를 느끼게 해준다.

인생은 이상하다. 노력해도 시간은 미끄러지듯 흘러간다. 그렇다면 우리도 조금 더 자연스럽게 춤을 추듯 살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그렇게 흘러가다 보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포개어지고 불어나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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