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책 읽을 시간과 공간을 선물하세요
손님별 맞춤형 공간 구성
아이 동반 땐 좌식 테이블
그림책·독립출판물 호응
독서모임도 첫발 내디뎌

주선경 씨에게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 특유의 활기가 있었다. 돈을 많이 못 벌 것이란 주변 사람들의 걱정도 잘 알고 있다.

요즘 같은 불황에 초보자가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업계 선임자들의 조언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얼까 하는 고민 끝에 시작한 일이기에 서툰 걸음이나마 즐겁게 내딛고 있다. 그는 지난달 3일 창원시 성산구 사파동에 독립서점 '주책방'을 열었다. 사파고 정문 앞 주택 반지하 공간이다.

▲ 창원 사파동에 새로 문을 연 주책방 입구. /이서후 기자
▲ 창원 사파동에 새로 문을 연 주책방 입구. /이서후 기자

실내장식이 웬만한 카페만큼이나 훌륭하다. 다른 독립서점 주인들이 보면 많이 부러워할 것 같다. 내부는 크진 않지만 전체적으로 4개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지하로 내려가는 경사면 덱에서 바라보는 서가는 은은하고 편안하다. 테이블 2개로 꾸며진 좌식공간은 전기패널을 깔아 한겨울에는 온돌방 노릇을 할 수 있다. 갤러리처럼 그림을 걸고, 테이블을 하나만 둔 곳은 연인이나 친구들을 위한 장소다. 그리고 책 모임 같은 걸 할 수 있는 세미나실도 있다.

"처음에는 소소하게 시작하려고 했어요. 책도 지금보다 적게 두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인테리어에 힘이 많이 들어갔어요. 서울에 있는 독립서점 돌아다니면서 찍은 사진을 자주 보여줬더니, 공사하던 인테리어 업체 사장님이 나름 신경을 써서 해주신 것 같아요."

▲ 내부 좌식 독서공간. /이서후 기자
▲ 내부 좌식 독서공간. /이서후 기자
▲ 연인·친구 위한 독서공간. /이서후 기자
▲ 연인·친구 위한 독서공간. /이서후 기자

보통 서점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장사를 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말한다.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지극히 옳은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본 독립서점 주인들은 대체로 반대다. 장사보다 책을 좋아하는 게 더 크다. 주 씨도 마찬가지다. 서점을 열기 전 독서 모임에도 참여하며 책을 열심히 읽고 모았었다.

"사실 늙어서 할머니가 되면 할매책방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젊어서 시작하게 될지는 몰랐죠.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직장을 그만뒀어요. 경력 단절 상태라 뭐라도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마침 좋은 공간이 하나 생겼어요. 그래서 이왕이면 좋아하는 일을 하자 싶었고, 마침 이 주변에 제대로 된 서점이 없어서 독립서점을 냈어요."

막상 서점을 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여느 독립서점 주인이 그렇듯 주 씨도 책을 파는 일과 관련해서는 어떤 경험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하는 서점학교에 가서 배우기도 했는데 직접적인 운영 비결보다는 거시적인 출판업 상황 정도를 파악하는 정도였고요. 사실 일반서점을 하시는 분들이 독립서점이란 개념을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은 모양이더라고요. 그래서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은 거는 다른 독립서점들이에요."

막상 문을 열었지만 동네 사람들에게 특히 나이가 있으신 분들에게 독립서점은 아직 낯선 곳인 것도 사실이다.

"동네 분들이 서점 생겼다고 좋아하세요. 그런데 연령대가 있으신 분들은 책이 없네, 책이 특이하네, 책 좀 더 갖다놔야겠네, 이런 말씀을 하시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섭섭하기도 했는데, 어차피 취향이 다른 거고, 모두를 다 만족하게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래도 다행인 건 한 번 여기서 책을 사보신 분은 이후에도 계속 오셔요."

현재 판매용 서가에는 500권 정도 책이 꽂혀 있다. 주로 시, 소설, 에세이, 그림책들이다. 자세히 보면 좋은 책이 꽤 많다. 20~30대 독자를 기준으로 대부분 베스트셀러라고 할 만한 것들이다.

주 씨가 나름 신경을 쓰는 건 독립출판물과 그림책이다. 독립출판물은 입구 오른쪽에 따로 섹션을 만들었다. 지금은 책이 그렇게 많진 않다. 독립출판물은 일반 책하고 달리 유통업체를 통하지 않고 저자나 출판사에 직접 연락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연락을 하더라도 재고가 없으면 책을 구할 수 없다. 하지만, 조바심 내지 않고 차곡차곡 책을 늘려 나갈 생각이다.

▲ 주책방 내 독립출판물 섹션. /이서후 기자
▲ 주책방 내 독립출판물 섹션. /이서후 기자

그림책과 좌식 공간은 아이 엄마인 주 씨가 평소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것이었다.

"제가 엄마니까 엄마 손님들이 많거든요. 사실 그림책이 많이 팔리기도 하고요. 육아만 하는 아이 엄마들은 평일 낮에 아이와 함께 갈 데가 잘 없어요. 그래서 일부러 좌식 공간을 만들었어요. 도서관 같은 데 가면 아이들하고 떠들기가 그렇잖아요. 여기 데리고 와서 책도 좀 읽고, 상황이 되면 엄마들하고 책 모임도 해볼까 해요."

문을 연 지 이제 한 달, 주 씨는 주위의 걱정보다 서점 운영을 잘하는 것 같다. 오히려 서점업을 잘 모르는 게 장점이었을까. 여기저기 용감하게 문의를 하고 원하는 책을 구해온다.

예컨대, 최근 발매된 베르나르 베르베르 신작 장편소설 <죽음>(열린책들) 동네책방 에디션은 창원에서는 유일하게 주책방에서만 구할 수 있었다.

독립서점에서 특히 중요한 커뮤니티 활동도 이미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 30일에는 처음으로 독서모임을 진행했다. '2019년 상반기 나의 독서'가 주제였는데, 공지 하루 만에 신청자가 다 찼다. 역시 SNS의 힘이 컸다. 참석자 절반은 기존 손님이었지만, 나머지는 처음 오시는 분들이었다. 그만큼 주책방이 올리는 게시물을 유심히 살펴보는 이가 많다는 증거다.

주 씨는 서점을 열고 지난 한 달 거의 하루도 쉬지 않았다. 그만큼 긴장하고 걱정을 많이 한 것도 있지만, 이를 통해 적정한 영업시간과 쉬는 시간을 정하려는 뜻이다.

"아직 베타 서비스 단계라고 할까요? 여러모로 실험을 해보고 있어요. 영업시간도 그렇고, 휴일도 아직 확정하지 않았어요. 지속 가능한 서점이 되려면 지금 하는 것에 뭘 조금씩 더 얹어야 하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에요. 그런데 한 달 해보니 독립서점 오래 하시는 분들은 정말 대단하신 거 같아요. 어떻게 그렇게 오래 하실 수 있죠?"

주 씨는 스스로 말하는 것도 좋아하고 책을 고르는 것도 좋아한다고 했다. 실제로 만나보니 그렇다. 그러니 누구라도 주책방을 찾았을 때 어색할 일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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