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으로 애태우는 어리석음이 죄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 살자

세상법이 참으로 무상하다. 어느 선인은 말했다. 세월은 마치 번갯불과 같고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것 또한 죽음에 직면하게 되면 그것은 부싯돌 치는 것과 같은 사이에 있다고 했다. 숨 한 번 들이쉬고 나가지 않으면 죽는 것이니 명(命)이란 숨 한 번 쉬는 사이인 경각에 달렸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억울한 일이지만 무상이란 이와 같은 것이다. 한낱 꿈과 같고 이슬과 같고 안개와 같고 번개와 같은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의 허무한 모습이다. 다시 봄이 가고 여름 가고 가을이 다가와서 다시 겨울을 맞는다는 것 자체가 늙는다는 소식이다. 어제 피었던 꽃이 오늘 전부 낙화가 되어 앙상한 빈 가지만 달렸다. 본래 없던 것이 피었으니까 떨어져서 본래 그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옳은 이치가 아니겠는가?

이처럼 사람이 태어나면 죽는지도 알아야 한다. 갈 때가 되면 갈 줄을 알아야 하는데 중생은 멍청하게도 안 죽기를 바란다. 사람은 본래대로 돌아가는 윤회의 수레바퀴를 알아야 한다. 이것이 인연 따라서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 살아야지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세상일에 심장을 태우고 간을 태우면서까지 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부귀영화나 이익을 욕심내면 심장이 타고 결국 간이 타서 죽게 된다.

이렇게 자기 몸은 타는 줄도 모르고 욕심을 내서 능히 부자도 되고 또 비록 권속이 많더라도 죽을 때는 혼자 가는데 죽을 때는 모든 것이 허망한 가운데 허망치 않은 인과법(因果法)이 있어서 죄만 더 많이 따라붙는다. 콩 심으면 콩 나고 팥 심으면 팥 나는 것 같이 나쁜 일 하면 나쁜 일 하는 것이 이자 쳐서 나한테 따라오고 좋은 일 하면 좋은 일 하는 그림자가 이자 쳐서 나한테 따라서 온다.

그래서 옛 부처는 하찮은 나쁜 일이라도 범하지 말고 조그마한 착한 일일지라도 버리지 말라고 했다. 그 옛날 부처의 제자 중에 눈먼 스님이 있었는데 바늘귀를 못 꿰니까 "누가 복 좀 지으시오"라고 소리치자 석가 부처께서 얼른 바늘귀를 끼워주었다. 그런 모습을 본 제자들이 "어찌하여 거룩한 부처께서 직접 바늘귀를 꿰어줍니까?"하고 물으니 부처께서는 "나도 복을 좀 지으려고 그런다"고 대답했다. 불법은 복혜구족(福慧具足)한 자기 본마음(本心)이 본래 부처이며 거짓 나를 버리고 참된 나(我)를 찾아 일체중생을 제도 구원하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 '나'는 바로 '생각하는 나'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무엇이 될까? 입을 열어 말하면 벌써 그르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생각 이전의 나'를 깨닫는다면 그 '나'는 순수하고 깨끗하면서 항상 우리의 앞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으로 도(道)란 텅 비어 공(空)했으면서도 끊임없이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해내는 위대한 어머니다. 도(道)는 언제나 그대 마음속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도로써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할 수가 있다. 어떻게 도가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할 수 있을까? 높은 하늘은 항상 푸르고 물은 바다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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