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미 정상이 70년 대치 경계를 넘어도
대문에 세금폭탄 기사…측은하다 측은해
삼국의 경호원들은 각기의 '지존'을 에워싸고 나왔다. 하지만 세 정상이 서로 손을 맞잡는 간격에 이르면서 경호동선 따위는 허물어지고 그들은 옷깃을 부딪치는 지척에서 맞붙고 말았다. 솜털까지 세우는 긴장감으로 살상 무기를 지닌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살펴 만약에 있을 위해를 몸 바쳐 막아야 함이 호위하는 자의 사명일 것이다.
그러나 웬걸 그들은 우르르 돌진해와 엉겨 붙는 기자들을 떼어내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비켜" "나와" 소릴 내지르며 육박하는 기자들의 쟁투는 외려 경호태세보다 엄중하고 치열하다. 주연인 정상들과의 거리조절에 실패한 TV 카메라가 흔들려 춤을 추는 통에 아침부터 TV 앞에 쪼그리고 앉은 이의 자세는 어지럽기 짝이 없다. 카메라는 '주연'을 쫓으려 심히 나부대나 돌진하는 기자들의 뒤통수만 연신 찍어댈 뿐이니 유례가 없는 희한한 풍경이었다.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불과 하룻밤 새 벌어진 일이다. 두 차례 북미회담의 성사과정을 되짚어보면 비교가 안 되는 파격이다. 그것도 우리가 그리 소원하던 남북미 3국 정상의 '판문점' 상봉이라니. 감불생심. "악랄한 제국주의의 수괴와 주구, 그리고 '악의 축'인 동토의 나라를 잇는 세습독재자"라 서로를 멸칭하던 사이가 아니었던가. 그 증오와 원혐의 분단 상징인 판문점에서 세 나라의 정상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서로의 손을 잡은 것은 그야말로 역사적 사변이었다.
"건보료 폭탄 터집니다… 어르신, 개인연금 들었나요?" 7월 1일 아침 조선일보 인터넷판의 헤드라인이다. 오산 공군기지 격납고를 배경으로 한 '트럼프 쇼'를 끝으로 마감된 그 극적인 회담 과정을 늦도록 보고 또 보고 되새긴 이튿날 아침이다. 놀랍다. 70년 전쟁의 대치 현장에서 적대국 정상들이 서로 국경을 넘나든 이튿날, 분단 당사국 최대 신문의 조판에 '판문점'이고 나발이고는 아랑곳없고 '건강보험료 폭탄'이 대문짝만하게 찍혀있는 것이다. 기사는 납세자의 원망을 알뜰히 덧붙인다.
"은퇴하면 배당받아서 생활하려고 했는데…. 그냥 속 편하게 아파트나 사야겠습니다."(40대 회사원 A씨) "예금이나 적금은 하지 말고 일본 노인들처럼 장롱 속에 현금 쌓아두라는 얘기네요."(50대 자영업자 B씨)
이게 무슨 난리인가 뒤져보니 정부가 세금인상을 검토한단다. 낯선 용어와 복잡한 설명을 참고 재독 삼독해보니 과세의 표적이 '집이니 땅이니 하는 실물자산과는 별도로 예금 이자, 주식 배당과 같은 금융소득이 많은 사람에 한해 건강보험료를 좀 더 걷겠단 것이네. 17억 원의 여윳돈을 은행에 넣거나 증권투자를 한 사람의 이자소득에서 연 20만 원 정도를 걷자는 것이다. 그래봤자 대상은 40만 명 정도이고 그것도 아직 검토 중인 사안이란다.
측은하다, 조선일보. 이게 세계가 경탄의 눈으로 지켜본 남북미 회담과 헤드라인을 다툴 기사인가? "거 판문점 쇼 따위에 시선 둘 것 없어요. 이놈의 '빨갱이' 정부가 세금폭탄으로 당신 돈을 빼앗아가요"라는 저급한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다니 부끄럽지도 않은가.
"전부 김정은에게 퍼주느라 국민 생각 안 하고 정신이 온통 주체사상에 정신 팔려 눈에 보이는 것은 국민이 아니라 북한 김정은 퍼주는 것 외에는 없을 것입니다"라는 댓글이 달렸더라. 기쁘기도 하겠다 너희는. 그리 개돼지로 취급해도 태극기 흔들며 환호해주는 애국시민이 있어서.
그러나 '분단'을 제 배 불리는 수단으로 삼아 호의호식하던 자들이 온갖 훼방을 할지라도 이미 오는 봄을 막을 순 없다. 헤어지며 트럼프가 지켜보는 가운데 포옹하는 남북정상의 모습에서 평화의 징조를 본다.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