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 마을 동력 '천연에너지', 역사성 살린 트레킹 코스도
신흥~의신 4㎞ 옛길 걸으니 암벽·화개천 등 풍경 다채

▲ 신흥~의신 옛길이 커다란 암벽을 낀 채 이어지고 있다.
▲ 신흥~의신 옛길이 커다란 암벽을 낀 채 이어지고 있다.

◇물·바람·햇빛을 최초 동력으로 삼아

탄소 없는 마을은 하동군청이 추진하고 있다. 출발점은 석탄·석유 같은 화석연료 대신 개울물과 햇빛과 바람으로 전기를 만드는 데에 있다. 전기를 생산하여 일부는 마을 주민들이 쓰고 남는 일부는 팔아서 수익을 낸다.

수익금은 주민 자치 역량과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종잣돈이 된다. 돈이 모이면 관심이 생기고 관심이 생기면 사람이 모인다. 수익을 어떻게 처리할지 함께 모여 의논하여 운동회나 문화행사도 하고 마을도 가꾸고 사람들이 찾아와 즐길 시설물이나 탐방로도 만든다. 이런 일들을 치르다 보면 없던 경험과 능력도 자연스레 생겨나게 된다.

결국 주민들 힘으로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드는 것이다. 물·바람·햇빛 같은 천연에너지는 그렇게 나아가는 받침돌이 된다. 천연에너지는 어디에나 있다. 섬진강과 지리산이 있는 하동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니까 이보다 더 중요한 핵심 관건은 동네 주민들의 의지다. 주민들이 마음을 먹어야 마을을 가꾸는 지속성도 확보할 수 있다. 이런 마을은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도 찾아와 놀고 쉬기 좋은 안성맞춤이 된다. 이처럼 선순환 구조를 갖추면 수익도 다시 창출된다.

하동군청은 목통(2015년), 의신·단천(2016년), 범왕·오송(2017년) 마을을 탄소 없는 마을로 선정했다. 경남도청은 이들 다섯 군데 탄소 없는 마을을 지난해에 경남 대표 생태관광지로 뽑아 지원하고 있다. 올해는 부춘·명사마을 두 곳이 탄소 없는 마을로 추가되었으며 앞으로도 주민 의사를 확인하여 세 개 마을 정도를 더 선정할 계획이다.

다섯 개 마을은 저마다 트레킹 코스를 하나씩 갖추고 있다. 목통은 화개장터에서 물건을 팔려고 보부상들이 걸었던 보부상길(목통~당치재), 의신은 서산대사가 출가했던 산소치유길(신흥 또는 의신~원통암), 단천은 서산대사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아보는 미션길(암호바위~용추폭포), 범왕은 수로왕 아들들이 출가했던 참선길(칠불사~삼정마을), 오송은 수로왕과 아들이 함께 걸었던 부자길(오송마을~칠불사)이다.

다섯 개 탄소 없는 마을은 지난해 12월 운영협의회를 구성하는 한편 특징을 살린 마을 이름을 내걸고 대표도 뽑았다. 목통은 으름꽃별천지마을(대표 장영수·010-8795-2050), 의신은 베어빌리지(대표 최진기·010-5370-1822), 단천은 별헤는마을(대표 양성만·010-3839-0458), 범왕은 가야역사마을(대표 박윤기·010-6256-1071), 오송은 솔향기힐링빌리지(대표 김학기·010-3861-1772)다. 민박·펜션 등 숙박시설과 먹을거리 또는 체험프로그램을 알아보려면 마을 대표에게 전화를 하면 된다.

▲ 옛길 왼편으로는 녹음이 짙게 우거져 있고 오른편으로는 화개천이 하얗게 물보라를 일으키며 흐른다.
▲ 옛길 왼편으로는 녹음이 짙게 우거져 있고 오른편으로는 화개천이 하얗게 물보라를 일으키며 흐른다.

◇푸른 그늘과 하얀 물보라가 어우러지는 옛길

신흥~의신 옛길을 걸었다. 4km 남짓 되는데 산소치유길에 해당된다. 서산대사가 의신마을 위쪽 원통암에서 출가할 때 걸은 길이다. 화개초교 범왕분교 들머리에는 커다란 푸조나무가 있다. 신흥사라는 절이 있던 자리다. 최치원 선생이 지리산에 들면서 짚고 있던 지팡이를 꽂았더니 싹이 나서 자랐다는 나무다. 맞은편 화개천 시냇가 너럭바위 세이암(洗耳巖)은 선생이 속세 얘기를 담았던 귀를 깨끗이 씻은 자리다.

민가가 사라지는 지점에서 도로 왼편을 보니 옛길이 나타났다. 옛길은 대체로 골짜기를 끼고 이어진다. 옛날에는 이런 데 사람들이 점점이 흩어져 살았다. 옛길을 오르내리며 농사를 일구고 나물·약초를 캐고 나무를 하고 숯을 구웠다. 그래서 옛길은 오르막 내리막이 있어도 지나치게 가파르지는 않다. 먹고살려고 일상적으로 오르내리는 길이었으므로 험준한 데로는 길을 내지 않았던 것이다. 옛길은 처음부터 잘 다듬어져 있었다. 낮았거나 깎여나간 데는 돌과 흙이 채워져 있고 비탈졌거나 튀어나왔던 데는 적당하게 골라져 있었다. 옛길의 미덕이 그대로 남아 있는 자리에 요즘 들어 새로 가꾼 자취가 더해진 셈이다.

높다랗게 자라난 나무 덕분에 내내 그늘을 걸을 수 있었다. 초여름 날씨인데도 거의 땀이 나지 않았다. 옛길 둘레에는 두릅나무 엄나무 옻나무 밤나무 감나무 등등 옛날 시골 집안에 심었던 나무들이 많았다. 40년 전만 해도 여기에 드문드문 사람 사는 집들이 있었던 것이다. 길가 묵정밭도 사람 살았던 자취다. 왼편으로 비스듬히 평평한 자리가 그렇고 오른쪽 아래로 다락같이 층층이 축대를 쌓은 자리가 그렇다.

풍경은 변화무쌍했다. 평평하게 이어지는가 하면 곧장 오르내리는 계단이 나타났다. 커다란 바위를 끼고 걷는가 싶었는데 얼마 가지 않았는데도 눈 앞이 확 트이는 산록이 펼쳐진다. 줄곧 시내를 끼고 걸었는데 건너편 바위를 물길이 몰아친다 싶으면 고개가 나타났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왼쪽으로 지리산이 높게 솟아 있고 오른편은 화개천이 하얗게 물보라를 일으킨다. 내려가다 보면 왼쪽에서 흘러드는 조그만 물줄기가 하나 나타난다. 때로 바위를 지나며 작은 폭포를 이루고 때로 조금씩 퐁퐁 솟는 샘물로 바뀌었다.

▲ 베어빌리지에서 볼 수 있는 반달가슴곰 두 마리.
▲ 베어빌리지에서 볼 수 있는 반달가슴곰 두 마리.

화개천은 씩씩하게 흐르는 시원한 물소리로 끝까지 동행했다. 저만큼 떨어져 있는데도 물방울 차가운 알갱이가 살갗에 느껴졌다. 바위가 하얀색이라서 푸른 물줄기조차 거기에 부딪히는 순간 물보라가 하얗게 동화되는가 싶었다. 화개천 한편 어귀에 보니 길손 몇몇이 바위에 걸터앉아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근 채 점심을 먹고 있었다.

의신마을에 가까워지면서 고로쇠나무가 많아졌다. 산비탈은 물론 옛날 농사를 지어먹던 묵정밭까지 온통 고로쇠나무다. 겨울 끝자락에 고로쇠물을 받아내려고 심었지 싶었다. 고사리밭도 많았는데 이른 봄철 한 번 꺾어낸 뒤로는 그대로 두었는지 제법 우묵하게 웃자라 있었다.

옛길 끄트머리 의신마을 들머리에는 베어빌리지가 자리 잡고 있다. 야생방사를 했는데 거기 적응하는 데 실패한 반달가슴곰 두 마리가 주인이다. 건물 2층으로 올라갔더니 위쪽 등막과 아래 바닥에서 이쪽으로 고개를 치켜드는 곰이 두 마리 보였다. 곰들에게 먹이주기 체험을 하는 장소였는데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색다른 볼거리가 될 만했다.(문의 055-883-3580)

등산화와 지팡이 없이도 누구에게나 걷기 좋은 옛길이었다. 비탈길도 적당하게 있어서 자드락 산길을 걷는 느낌도 제법 누렸다. 왼편과 오른쪽에서 지리산과 화개천이 끼쳐주는 산수의 묘미는 특히 환상적이었다. 전국 곳곳을 적지 않게 다녀봤지만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이보다 빼어난 옛길을 본 적이 없다. 물론 원통암까지 가려면 비탈길을 1km가량 더 올라야 하는데 이는 개인 취향에 따른 선택 사항으로 남겨두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 이 기획은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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