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급 급급한 형사들 세계
욕망 앞의 변화과정 그려
연기 빛나지만 연출 과잉

※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전작 <방황하는 칼날>(2013)에서 자식을 잃고 남은 인생이 없는 주인공과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질러 놓고도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괴물들의 극한 대립을 통해 강렬한 메시지를 전했던 이정호 감독이 5년 만에 인간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는 범죄 스릴러로 돌아왔다.

여고생이 실종된 지 16일 만에 토막 난 시체로 발견된다. 희대의 살인사건에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힌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범인을 검거해왔던 강력반의 에이스 한수(이성민)는 후배 종찬(최다니엘)과 함께 수사를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마약 브로커이자 정보원인 춘배(전혜진)가 한수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한다. 춘배는 한수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살인을 은폐해주는 대가로 여고생을 죽인 살인마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한다. 살인범을 잡으려고 다른 범죄자의 살인을 눈감아주는 선택을 한 한수.

"누군가 범죄를 은폐해주는 대가로 뭘 받았다면 그게 뭘까? 그게 살인이라면 아주 큰 걸 받았겠지?"

진급을 앞두고 한수와 경쟁 관계인 동료 형사 민태(유재명)가 이 사실을 알아채면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 영화 <비스트> 주요 장면. 진급을 앞다투는 강력반 한수(이성민·오른쪽)와 동료 형사 민태(유재명). /스틸컷
▲ 영화 <비스트> 주요 장면. 진급을 앞다투는 강력반 한수(이성민·오른쪽)와 동료 형사 민태(유재명). /스틸컷

◇'무엇이 짐승을 만드는가?' = 감독은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잔혹한 범죄 드라마의 외면에 범인을 쫓는 두 형사의 심리전과 육탄전으로 휘몰아친다.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한수와 범인은 증거로 잡아야 한다는 민태는 냉탕과 온탕처럼 대립하지만 그들의 내면은 욕망으로 들끓는다.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면 정보원과도 적당히 타협하고 때론 범죄도 일삼았던 한수에게 극악무도한 살인범을 잡기 위해 살인을 눈감아주는 선택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 그의 선택이 부메랑이 되어 옥좨오면서 한수는 악몽에 시달리고 약을 먹어도 잠을 이루지 못한다. 한수가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점점 더 극한 상황으로 내몰릴수록 법과 원칙을 중요하게 여기던 민태는 한수의 행적을 뒤쫓으며 드러나는 증거를 한수를 적당히 옥죄는 데만 활용한다.

권력을 향한 욕망, 범인을 먼저 잡아야 한다는 욕망, 그리고 점점 더 강렬해지는 욕망 앞에 영화는 두 남자가 어떻게 변해가는지에 집중한다.

"누구나 마음속에 짐승 한 마리씩 있다고 하잖아. 그게 언제 나타나는지가 문제일 뿐이지."

◇어쩌다 그렇게 된 걸까? = 한때 동료였던 것으로 추측되는 한수와 민태는 어느 순간 경쟁자로 마주하고 주변에서도 적당히 그들을 부추기고 대립하게 한다. 차악을 택한 줄 알았지만 최악으로만 치닫는 현실에 한수는 점점 이성을 잃어가고, 민태는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채 기회를 노린다. 그들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둘 다 승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차기 과장 자리를 놓고 세상은 그들에게 '함께'를 용납하지 않는다. 나는 언제든 다른 누군가로 대체될 수 있다. 그런 현실 앞에 한수는 최선도 차선도 아닌 차악을 택했고,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네가 선택한 거잖아."

라이벌이었지만 그래도 동료였던 민태는 끝내 죽음을 눈앞에 둔 한수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

"그러게. 어쩌다 그렇게 됐네."

상황을 수습할수록 극한의 궁지로 몰리는 한수 역의 이성민은 섬세한 감정 표현으로 펄펄 끓어 오르며 몰입도를 높이고, 그런 이성민을 상대로 유재명은 무표정한 잿빛 표정 하나만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해 낸다. 배우들의 연기가 빛을 발할수록 설득 가능한 개연성보다는 주인공을 극한으로 밀어 넣기만 하는 불친절한 전개가 더욱 아쉽다. 거기에다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감독은 기괴하기까지 한 폭력과 낭자한 피, 집단 난투극, 억지스러운 반전 등 쉴 새 없이 과잉된 채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이끌며 피로도를 가중시킨다.

프랑스 영화 <오르페브르 36번가>(감독 올리비에 마르샬, 2004)가 원작이다. 도내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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