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진해 - 일제강점기부터 꾸준히 대회에…1960년대 이후 초·중학교 활기
옛 창원 - 삼미특수강·금성사 등 팀 창단…1992년 시장기 개최 '저변 확대'

'통합 창원시'는 지난 2010년 창원·마산·진해지역이 합쳐지며 탄생했다. 오늘날 창원시 야구 뿌리·줄기는 옛 마산에 있다. 하지만 옛 진해지역 또한 오래전부터 야구 기지개를 켜왔다.

진해는 한때 양궁·배구·복싱에서 명성을 얻었다. 야구는 그와 비교하면 한 발짝 뒤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이 지역 야구는 이미 1920년대 조금씩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진해시사>를 보면, 김종세라는 인물이 그 산파 역할을 했다. 진해 출신인 그는 1920년대 지금의 청소년 대표에 선발됐다. 1923년 서울 휘문고보 시절 전조선학생야구선수로 뽑혀 일본에서 열린 '전일본중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에 투수로 출전하기도 했다. 김종세는 이후 고향 진해로 돌아와 야구 보급 역할을 했다.

'진해 야구'는 일제강점기에 해군을 중심으로 활동 영역을 구축했다. 1927년 9월 4일 '진해해군공작부야구단'이 마산중앙운동장에서 열린 마산구성야구단과의 경기에서 8-6으로 승리했다. 진해팀은 1931년 10월 조선체협 주최 '조선신궁경기야구대회' 일반부에 출전하기도 했다.

진해팀은 1938년 6월 '경남소년야구대회'에도 마산·부산·진주·고성과 함께 이름 올렸다.

진해체육회가 1945년 12월 창립됐는데, 야구를 제외한 축구부·정구부·육상부만 산하에 뒀다. 하지만, 이 지역 야구는 여전히 해군 중심으로 끈을 이어갔다. '진해해군공창'은 1954년 5월 '제2회 경남연식대회'에 출전해 1회전서 부산남전을 5-0으로 격파하기도 했다. 이후 '진해 대해병기지팀'이 일본 광양정공팀과 친선 경기를 펼치기도 했다.

'진해 야구'는 1960년대 들어 초·중학교 야구부 중심으로 좀 더 활기를 띤다. '진해대야초'가 1965년 5월 '제2회 재향군인회장기쟁탈 전국국민학교대항야구대회'에 경남 대표로 출전했는데, 1회전서 인천 서림초에 0-2로 패했다.

지역 또 다른 초교팀인 '진해도천초'는 눈에 띄는 성적을 남기기도 했다. 진해도천초는 1973년 '제3회 회장기쟁탈 전국대회'에서 3위를, '1983년 제13회 대통령기 전국대회 경남예선'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진해중학교'는 1970년 7월 '제13회 문교부장관기쟁탈 전국중학초청대회'에 출전하며 이 지역 중등팀 존재를 알리기 시작한다. 1972년 5월에는 '제3회 조서희기쟁탈 전국중학대회'에도 참가했는데, 특별한 인연 덕이었다. 당시 서울 배문중·고등학교가 진해에서 자주 훈련하며 진해중과 관계를 맺었다. 그런데 배문중·고 이사장이 조서희 씨였고, 진해중은 그의 이름을 딴 대회까지 참가할 수 있었다.

진해중 투수로 활약한 감사용 씨는 그즈음 학교 전력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우리 진해중이 특히 마산동중과 시합을 자주 했습니다. 앞에 선배들은 종종 이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때는 마산동중을 한 번도 꺾지 못했습니다. 당시 마산동중 멤버가 유두열·배경환 등 막강했거든요."

진해중은 1978년 6월 '제25회 청룡기쟁탈 전국중학선수권대회'에 출전했지만, 이렇다 할 성적까지 내지는 못했다.

이후 1980년 진해남중 야구부가 창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진해지역 초·중·고 야구팀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현재까지 진해를 대표하는 선수는 감사용(진해대야초·진해중, 프로 삼미 등), 정학수(출생·진해중, 프로 롯데), 임정면(진해대야초·진해중, 프로 해태 등), 공필성(진해제황초·진해남중, 프로 롯데) 등이 있다.

진해 체육시설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학교·군부대 외 전혀 없는 실정이었다. 그러다 진해공설운동장이 도민체육대회를 앞둔 1963년 5월 확장 준공되며 체육활동 구심점 역할을 했다. 7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야구장, 그리고 육상장(축구·럭비도 가능)이 들어선 것이다. 진해야구장은 따듯한 기후 덕에 전국 야구팀 전지훈련 메카 역할을 했다. 감사용이 직장생활을 하다 프로야구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도, 1982년 1월 삼미슈퍼스타즈가 이곳에 동계훈련 캠프를 꾸렸기에 가능했다.

옛 창원지역은 1970년대 공단 중심으로 직장인 야구팀이 활성화됐다. 삼미특수강 창원공장도 직장인 팀을 뒀는데, 야구광이었던 김현철 삼미그룹 회장이 직접 경기에 뛰기도 했다. 김 회장은 그에 만족하지 않고 프로팀까지 창단했다. 금성사는 종종 창원을 대표해 전국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1992년 창원시장기쟁탈 야구대회가 열리면서 저변 확대로 이어졌다.

창원지역 학교 야구는 1990년대 하나둘 창단됐는데, 현재는 초등부 창원사파초, 중등부 창원신월중을 두고 있다. 창원사파초는 1992년 창단 이후 2000·2013년 '전국소년체전' 동메달, 2001년 '제31회 회장기 전국초등야구대회' 3위 등의 성과를 남기고 있다. 창원신월중은 1994년 창단 이후 2001·2002년 경남대학교 총장기 대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2012년 '전국소년체전' 준우승, 2013년 '전국중학야구선수권대회' 준우승, 2014년 'KBO총재배 전국중학야구대회' 준우승, 2015년 '전국중학야구대회' 3위를 각각 차지했다.

참고 문헌 △<진해시사>, 진해시사편찬위원회, 2006 △<한국 야구사 연표>, 홍순일 편저, KBO·대한야구협회, 2013 △경남야구협회 소장 자료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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