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선거에 사용된 포스터.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186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선거에 사용된 포스터.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풍경 하나 - 유대인과 카고

유럽 백인들이 유대인을 대놓고 차별한 역사는 깊다. 그 연원을 파고들면 로마시대에 이른다. 역사가 타키투스는 유대인들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두고 그들이 과거 나병에 전염됐던 기억과, 돼지가 나병의 매개동물이라는 점 때문에 돼지고기를 꺼린다고 말했다. <영웅전>의 저자인 플루타르코스 역시 상세한 연유를 밝히진 않았지만 유사한 이야기를 한다. 

유대인들이 나병환자라는 건 사실상 그들이 신체적으로 붕괴됐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없는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숨어사는 길밖에 없다. 아우슈비츠에서 만개한 말살은 그렇게 정당화됐다. 

나병과 관련된 속설로 차별받은 집단은 또 있다. 프랑스와 스페인에 걸쳐 살던 천민 ‘카고’다. 이들은 나병환자의 후손으로 나병환자이거나, 유사나병환자 혹은 나병보유자로 지목됐다. 프랑스 툴루즈 법원은 1600년에 카고들이 다른 사람들과 생물학적으로 다른지 아닌지를 확실하게 판별하기 위한 의학조사를 실시하라고 지시한다. 역사상 최초로 의학을 사회적으로 이용한 사례인 동시에, 근대적 인종차별이 시작되는 기점이었다. 

카고의 기원에 대해서는 수많은 설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사라센인(중동 거주 아랍인)에게서 왔다는 것이다. 대체로 8세기에 사라센인들은 기독교로 개종하는 대가로 프랑스 남서부에 정착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역사가 피에르 다 마르카는 이 설명을 받아들일 경우 카고를 부르던 별칭인 크리스티아누스(구카톨릭교도와 대비해 새 개종자를 뜻하는 말)라는 이름을 설명할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나병이라는 질환을 비유럽세계, 즉 동방에서 온 것으로 치부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풍경 둘 - ‘검은 원죄’ 흑인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흑인들은 15세기에 시작된 노예무역을 통해 아메리카에 유입된다. 수 세기에 걸친 노예무역이 초래한 파괴적인 결과를 설명하는 글 중에 이런 표현이 있다.

“다카르(세네갈)에서 칼라하리 사막(남부 아프리카)까지 흑인노예무역은 연안에서부터 평균 200km 내의 모든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삶을 붕괴시켰다. 이 지역에서의 인구반출률은 인구의 4분의 1 내지 3분의 1에 이르렀다. 물론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심리적 외상은 측정이 절대 불가능했다.”

흑인은 왜 동물이나 짐짝 취급을 당했을까? 왜 그토록 모진 차별을 받았을까? 고대 그리스인들은 흑인들을 여러 야만인들 가운데 하나로 여겼지만 특별히 차별을 두지는 않았다. 로마제국에서도 그랬던 것 같다. 고대 로마제국 황제인 셉티무스 세베루스는 사실 흑인이었다. 흑인이 로마 황제였다는 사실은 인종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경계가 그리 굳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때문에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기독교 전통에서 유래한다고 보아야 한다. 더 정확하게는 구약에 등장하는 유명한 구절을 편향적으로 해석한 데서 찾아야 하는데, 이 해석은 기독교인과 이슬람교도가 동시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성경은 가나안의 불행과 관련된 이상한 이야기를 전하는데, 그것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대홍수가 끝나고 나서 노아는 포도나무를 심는데, 그 열매로 만든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서 자신의 천막 안에서 벌거벗은 채로 잠이 든다. 세 아들 중 막내인 함은 이 모습을 발견하고 그를 비웃지만 다른 두 아들인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벗은 몸을 다소곳이 옷으로 덮어준다. 잠에서 깬 노아는 함이 자신을 비웃었다는 사실을 알고 함의 자손 가나안에게 저주를 내린다. 가나안의 자손들이 영원히 셈과 야벳 자손들의 종이 될 것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창세기> 히브리어 본(本)에는 노아의 후손들이 제각기 특정 피부색을 띠게 되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혀 없다. 그러나 기독교가 시작되면서부터, 어쩌면 그보다 더 일찍부터 검은 인종을 ‘함’의 자손으로 여기는 전통이 생긴다. 그 결과 검은 인종은 저주받은 인종이 된다. 이를 근거로 훗날 흑인노예제도는 저주에 따른 당연한 결과처럼 묘사된다.

프랑스어에서 검다는 뜻을 지닌 Noir는 세월이 흘러 ‘죄를 범한’이라는 말에 대한 일종의 시적 동의어가 되기에 이른다. 검은 영혼, 가장 검은 행위들, 검은 거짓말 등은 코르네유나 라신과 같은 프랑스 작가들의 글에서 흔히 나타난다.

인종차별은 인류역사를 설명하는 또 다른 열쇠말이다. 유대인, 집시, 카고, 여성, 동성애자, 흑인, 황인종 등등 수많은 대상이 차별과 배제에 시달렸다. 유대인과 카고 사례에서 보듯 인종차별은 대상을 타자화함으로써 내부 모순을 해결하고 결속을 도모하는 수단이었다. 국제적으로는 제국주의적 탐욕을 뒷받침하는 훌륭한(?) 이데올로기였다.

통상 이런 이데올로기는 논리적인 당위나 객관적인 팩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병과 성경 이야기에서 드러나듯 근거없는 편견을 토대로 믿고 싶은 바, 하고 싶은 바를 행동에 옮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2019년 6월 19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외국인 노동자 차별’ 논란에 불을 지폈다. 황 대표는 이날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부산지역 중소 중견기업 조찬간담회에서 “내국인은 국가에 세금을 내면서 나라에 기여한 분들”이라며 “외국인은 우리나라에 기여해온 바가 없기 때문에 산술적으로 똑같이 임금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건 공정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근로기준법과 외국인고용법 등 국적을 이유로 근로자에게 차별적 처우를 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현행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외국인 노동자는 세금을 내지 않아 우리나라에 기여하는 바가 없다’는 황 대표의 주장을 두고도 전문가들의 반박이 이어졌다.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는 페이스북 글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들도 똑같이 세금을 원천징수 당한다. 세금은 국적이나 인종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주 노동자들이 점점 늘고, 일자리를 두고 내국인과 외국인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는 현실에 비춰봤을 때 이 발언은 상당히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내국인을 우월한 위치에 두고 외국인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역사적 무기(?)가 드디어 한국사회에 공개적으로 등장하게 될 것인가 하는 우려에서다. 황대표 발언도 명백히 틀린 팩트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4년 제작된 테리 조지 감독의 영화 호텔 르완다의 포스터. 르완다 내전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2004년 제작된 테리 조지 감독의 영화 호텔 르완다의 포스터. 르완다 내전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풍경 셋 - 후투와 투치

1994년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대학살은 ‘얼토당토 않은’ 환상에 뿌리를 둔 대표적인 차별 비극으로 기록된다. 그 당사자는 아프리카 대호수 지역에 살고 있는 후투인과 투치인이다. 이들은 지금도 서로 대립하면서 가난한 두 나라, 르완다와 부룬디를 줄기차게 유린하고 있다. 

서구 대중매체에 따르면 후투인과 투치인은 서로 다른 민족이다. 민족이 인종을 뜻하는 것이라면 투치인과 후투인은 같은 민족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같은 언어와 문화, 종교를 공유한다. 그들 사이에 신체적인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당사자들조차 첫 눈에 누가 투치인이고 누가 아닌지 항상 분간할 순 없다. 교차 결혼도 드물지 않아 후투인이 투치인이 되는 일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지역을 장악한 유럽인들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투치족을 우대하고 그들을 권력 파트너로 삼았다. 투치인은 후투인들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됐다. 그러다 1962년 독립의 순간이 도래하자 식민지 개척자들은 그곳에 그대로 남아 있을 작정으로 느닷없이 태도를 바꾼다. 즉 다수인 후투 집단에게 권력을 주기로 결정한다. 복잡한 정세가 관련돼 있지만 이로 인해 르완다에서 (후투인에 의한) 투치인 집단학살이 발발했고, 1994년 학살이 끝날 때까지 약 80만 명이 사망한다. 

이 학살에는 미래가 암담했던 젊은이 수만 명이 살인자로 참여하는데, 그들은 전쟁과 성공적인 작전 수행 그리고 합법적인 약탈과 조장된 가학성, 계산된 잔인성이 불러일으키는 광적인 흥분상태에 사로잡혀 있었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처음 아프리카 대호수지역을 여행한 유럽인들은 1863년 객관적인 증거가 하나도 없는 놀랄만한 환상을 창조해낸다. “경작지를 떠나지 않는 정주민인 후투인들은 토착민이고, 수세기 전에 에티오피아에 해당하는 지역으로부터 이동해온 투치인에 의해 정복됐을 것이다. 따라서 투치인들은 진짜 흑인이 아니며 셈인에 가깝다.”

르완다 부룬디를 지배해온 독일인, 벨기에 인들은 이 학설(?)에 의거해 아리안(서구 백인의 이상형)을 표준으로 했을 경우 우월한 인종으로 여겨지는 투치인들에게 의지하기로 결정했다. 달리 말해 투치인들은 미개인보다는 유럽인에 가까운 ‘우수한 사람들’로 받아들여졌다. 그런 상황이 독립을 앞두고 반전되자 그동안 쌓였던 모순이 폭발했으며, 그 결과는 ‘학살을 통한 투치인 배제’라는 대재앙으로 나타났다.

아프리카를 비롯한 비유럽권에서 크고 작은 인종차별과 그에 따른 비극이 계속 이어진 것은 근현대사에서 주로 유럽 백인들이 가해자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엉터리 이론과 편견에 사로잡혀 유럽 백인이 가장 완전한 인종이며, 그들을 정점으로 인류를 서열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근대사회를 이끈 기술과 문명이 그들 손에 있었기에 여기에는 어떤 이의도 제기될 수 없었다. 

영국이 이집트를 점령하고 민족주의 반란을 종식시킨 1882년부터 1907년에 이르기까지 이집트를 통치한 이는 영국제국주의자 크로머였다. 그는 자신의 경험과 업적을 위엄스럽게 기록한 <현대 이집트>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사람을 허위와 불성실로 타락시키는 정확함의 결여, 이것이야말로 동양적 심성이 갖는 중요한 특색인 것이다. 유럽인은 주도면밀한 이론을 좋아한다. 사실을 말하는 언어에는 한 치의 애매함도 없다. 비록 논리학을 공부하지 않더라도 유럽인은 타고난 논리학자다. 그의 훈련된 지성은 기계의 부품과 같이 작동한다. 이에 반해 동양인(중동인)의 정신은 동양의 길거리와 마찬가지로 현저히 균형을 결여하고 있다. 동양인의 추론은 가장 감상적인 것이다. 그들은 진리를 인정할 수 있는 단순한 전제로부터 가장 분명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도 없다. 어떤 평범한 이집트인으로부터 사실에 관한 단순한 진술을 얻고자 노력해보라. 그의 설명은 일반적으로 너무 길고 명료하지 못할 것이다. 필경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몇 번이나 자기모순에 빠지고 부드러운 반대심문에도 정신을 못차릴 것이다.”

윌리엄 뮤어(1819~1905)의 <마호메트의 일생>과 <칼리프제도, 그 융흥 쇠퇴 및 종언>은 지금도 신뢰성이 높은 학문적 업적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뮤어는 책에 담긴 주제를 “마호메트의 검과 꾸란이야말로 문명과 자유 그리고 진리에서 세계가 지금까지 경험한 가장 완강한 적이었다”는 한 마디 말로 뒷받침한다.

미국의 정치 잡지 '하퍼스 위클리'(1898)에 실린 ‘황화’. 황화란 ‘동양인에게서 초래될 재앙’을 일컫는 말이다. 그림 속 처녀들은 유럽의 각 나라를 대표하며 기독교 십자가 아래 무장해 그림 오른쪽 부처 그림으로 상징되는 동양의 위협에 맞설 것을 요구받고 있다. 그림의 바닥 중앙 쪽에는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직접 쓴 글이 있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유럽의 제국들이여, 그대들의 믿음과 가정을 수호하는 데 합류하라!”
미국의 정치 잡지 '하퍼스 위클리'(1898)에 실린 ‘황화’. 황화란 ‘동양인에게서 초래될 재앙’을 일컫는 말이다. 그림 속 처녀들은 유럽의 각 나라를 대표하며 기독교 십자가 아래 무장해 그림 오른쪽 부처 그림으로 상징되는 동양의 위협에 맞설 것을 요구받고 있다. 그림의 바닥 중앙 쪽에는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직접 쓴 글이 있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유럽의 제국들이여, 그대들의 믿음과 가정을 수호하는 데 합류하라!”

 

르투르노란 사람이 쓴 <여러 인종 문학의 진화 1894>는 세계문학사 서술에 진화론을 도입한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황인종 문학에 관한 논의를 마무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분명히 몽골인종은 감수성과 상상력을 빈약하게 타고났다. 그런 자질의 결핍이 지성 자체에도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왜냐하면 중국인은 오래 전에 문명 발달을 경험했지만 지적인 모험을 하는 것을 즐기지 않기 때문이다. 사상가 사회비평가 철학자가 산출한 고급문학이라도 생각은 모자라기만 할 따름이다. 형식은 빈약하고 내용은 범속해서 대범한 상식 이상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다.”

아일랜드 출신 영국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올리버 골드스미스(1730~1774)는 한 술 더 뜬다. 1774년에 발간한 저서 <지구의 역사>에서 그는 유럽인의 얼굴색이 가장 아름다운 이유가 “기쁨과 슬픔의 온갖 표정이 뺨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아프리카인의 검은 안색이나 아시아인의 올리브색 얼굴도 이런 변화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유럽인들처럼 분명하지도 가시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일부 국가에서는 안색이 결코 변화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크로머에서 골드스미스에 이르는 언설은 당대 제국주의를 인종적, 문화적으로 떠받치는 조악한 편견이다. 제국주의자들은 그러나 이같은 편견에 입각해 자신들이 저지른 패악을 정당화했다. 당연히 피해를 당한 이들에게 그런 편견은 노예무역과 유대인 학살에서 드러나듯 파국적이었다. 19세기 인디언 탄압을 폭로한 도미니쿠스 선교회 수도사, 라스 카사스 신부가 <인디언 말살에 대한 간결한 보고>에 남긴 글을 보자. 이 글은 차별과 말살을 증언하는 생생한 기록이다.

“(1511년 쿠바) 추장이 말뚝에 묶여 있었을 때 생프랑수아 출신의 한 경건한 수도사가 그에게 하느님과 우리의 신앙에 관해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추장이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였다. 사형집행인들이 그에게 허락한 시간 안에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였는데, 수도사가 이야기해 준 것을 믿는다면 영광과 영원한 안식이 있는 천국에 갈 것이고, 믿지 않는다면 지옥에 가서 영원히 고통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추장은 잠시 생각해보더니 기독교인들이 천국에 갔느냐고 수도사에게 물었고, 수도사는 그들은 선량한 사람들이므로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했다. 추장은 더 생각하지도 않고 그 즉시 자신은 절대 천국에 가고 싶지 않고, 지옥에 가서 그런 사람들이 없는 곳에 살고 싶으며 그렇게 잔인한 사람들은 절대 만나고 싶지 않노라고 대답했다.”

외견상 패권적인 제국주의가 소멸된 지금은 어떨까? ‘아리안 인종 기제’가 작동하지 않는 현대는 인종차별이 발생할 소지가 적지 않을까? 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이다. 황대표 발언이 위험한 이유다.

1973년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에 벌어진 제 4차 중동전쟁은 석유파동을 초래했다. 이 경제위기로 유럽에서 완전고용은 종말을 고한다. 이어서 자본주의 기업들이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현대화, 즉 인원 감축을 결정한 탓에 이후 몇 년간 실업은 계속해서 증가했다. 생활이 팍팍해지자 희생양을 찾던 극우파들은 그 책임을 개발도상국에서 온 이민자들에게 떠넘겼다. 지금 전 세계에서, 특히 서유럽에서 또다시 정치 사회적으로 중요한 화두가 된 ‘인종차별’은 이렇게 해서 세를 불려나가기 시작했으며, 주지하다시피 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끌로드 레비 스트로스는 <인종과 역사>에서 ‘인류’라는 개념이 차별과 배제를 극복할 수 있는 지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시선을 보낸다. 

“인종이나 문명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형태의 인간을 포괄하는 ‘인류’라는 개념은 상당히 늦게 나타났고 전파된 지역도 한정돼 있다. 인류라는 개념은 최고로 발달한 것처럼 보이는 단계에서조차도 불확실성과 퇴보로부터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없다. 이는 최근의 역사가 증명한다.”

 

참고자료

♣ 에드워드 사이드 지음/박홍규 옮김, <오리엔탈리즘>, 교보문고

♣ 마이클 키벅 지음/이효석 옮김, <황인종의 탄생: 인종적 사유의 역사>, 현암사

♣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 지음/하정희 옮김, <인종차별의 역사>, 예지

♣ 조동일 지음, <세계문학사의 허실>, 지식산업사

♣ 임지현-사카이 나오키 대담집, <오만과 편견>,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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