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렬의 생태이야기 53

‘한국 지형에 강하다.’ 어느 통신 회사의 광고 카피다. 국산 휴대폰이 처음 나오던 무렵. 꽤 오래전 유행했던 말이다. 국토의 3분의 2가 산악지형인 우리나라에 딱 어울리는 말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우리 주변에 사는 수많은 조류 중에도 한국 지형에 강하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새가 있다. 산과 들, 농촌과 도시 모든 지형에 적응해 살고 있는 새. 바로 황조롱이다. 황조롱이는 원래 산과 들판에 주로 사는 새였다. 주된 먹이는 쥐, 두더지, 작은 새, 매미 같은 곤충류, 파충류 등이다. 고성능 망원경으로 자세히 살펴보면 머리는 검은 갈색이고 깃털 가장자리는 갈색 또는 붉은 갈색이다. 앞이마에서 눈 위로 황갈색 가는 띠가 지난다. 눈 가장자리는 노란색이다. 가슴, 배 옆구리는 연한 갈색 바탕에 갈색의 세로무늬가 있다. 하지만 맹금류들은 얼핏 보면 대부분 비슷비슷해 보여 구분하기가 쉽진 않다.

황조롱이 같은 매류는 전 세계에 58종이 알려져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6종이 기록되어 있다. 황조롱이, 매 그리고 참매, 붉은배새매, 새매, 개구리매 등이 있는데, 모두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는 새들이다. 이중 황조롱이는 1982년 11월 4일 천연기념물 제323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1970년대와 1980년대는 고도성장의 시대인 동시에 환경오염의 시대이기도 했다. 농촌에서는 과도한 농약 살포와 화학 비료 사용을 통한 식량 증산 계획이 추진되었고, 도시는 공장 폐수로 인한 수질오염이 극에 달했던 시기다. 수출을 위해서라면, 경제 성장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한다는 ‘잘살아보세’ 종교(?)가 유행하던 시대였다.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새들 입장에선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먹이터가 자꾸만 사라져 갈 뿐만 아니라 이유도 모르게 번식률까지 저하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원인을 밝혀내기까지는 제법 긴 시간이 필요했다. 오로지 먹고 사는 문제에만 집중했던 사람들이 늦게나마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여러 가지 심각한 현상 중에는 맹금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도 포함된다. 농약과 중금속 성분이 체내에 축적된 먹이를 먹고 살아가는 황조롱이 입장에서는 영문도 모른 채 의문의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갈수록 숫자가 줄어드는 맹금류 다섯 종과 황조롱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늘을 나는 황조롱이 /윤병렬
하늘을 나는 황조롱이 /윤병렬

얼마 전 상자 텃밭을 만들기 위해 모종 파는 가게를 찾아간 적이 있다. 상자에 흙과 거름을 섞어 가득 채운 후 상자 텃밭에 맞는 적당한 모종을 고르기 위해서였다. 어떤 모종을 심어볼까.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간 모종 가게 주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엄청 다급한 소리다. 하늘을 살펴보니 수십 마리 제비들이 떼를 지어 모여든다. 능숙한 비행 솜씨로 집 주변을 날아다닌다. 제비들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동네 제비가 모두 한곳에 모이는 습성이 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황조롱이 한 마리가 중화요리 집 처마 밑에 있는 제비 둥지를 습격하고 있다. 제비들이 집단으로 방어에 나서 보지만 제비집에 달라붙어 있는 황조롱이는 요지부동으로 새끼를 잡아먹고 있다. 제비를 생각해서 황조롱이를 쫓아 볼까 생각하다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냉정한 야생의 세계에 인간이 개입하는 건 바람직하기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제비들은 허망한 표정으로 전깃줄에 앉아있다. 상황이 종료된 모양이다.

황조롱이는 집 나온 새끼 새도 좋아하지만 잔디밭이나 풀 사이를 어슬렁거리는 쥐를 더 좋아한다. 쥐는 굴을 파고 생활하는데 조심조심 먹이 찾아 굴 밖으로 나오는 쥐는 바로 황조롱이의 먹잇감이 된다. 쥐는 위는 볼 줄 모르고 앞만 보고 다니기 때문에 그야말로 쥐도 새도 모르게 황조롱이의 먹잇감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쥐를 잡기 위해 황조롱이가 개발한 비행술이 ‘호버링’(정지비행)이다. 공중에서 날개를 편 채 움직이지 않고 땅을 주시하는 먹이 사냥 방법이다. 몇 분에서 몇십 분까지 정지비행에 몰두하는 모습을 간혹 볼 수 있는데 최장 시간은 22분에 이르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조금 어렵게 설명하면 중력과 양력이 같아지고, 항력과 추력도 같아지는 상태에 이른 것이 호버링이다. 이 모든 과정은 날개로 조절한다. 좌우 날개를 위, 아래로 움직여서 중력과 양력을 조절하고, 꼬리 깃을 이용해 항력과 추력을 조절하면 정지비행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참새나 붉은머리오목눈이도 황조롱이의 주된 사냥 대상이다. 지난해 한 시사교양프로그램에 소개돼 시청자들의 공분을 샀던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새순이’ 사건이었다. 상황을 요약하면 이렇다. 도심에서 살아가던 ‘새순이’라는 참새는 사람을 무척이나 잘 따르던 참새였다. 사람 머리 위에 앉아서 재롱을 떨 만큼 사람과 친근한 참새여서 방송 촬영에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식당 사장님이나 손님 그리고 프로그램 피디, 촬영 감독까지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방송 카메라가 참새 움직임 따라 부지런히 촬영에 임하고 있는 순간. 갑자기 화면에서 ‘새순이’가 사라지는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다. 방송 촬영 도중 황조롱이에게 잡아먹혀 버린 것이다. 날카로운 발톱에 낚아 채인 참새는 건너편 건물 광고판 위에서 순식간에 황조롱이 먹이가 되고 말았다. ‘새순이’ 참새를 아끼고 보살피며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 그리고 방송을 시청하던 시청자들이 망연자실한 순간이었다.

도심에서 살아가는 황조롱이는 농촌 황조롱이에 비해 먹이 찾기가 무척 힘들다. 쥐를 찾기도 어렵고 새들도 많지 않다. 그래서 특히 둥지에서 갓 나온 새끼 새들은 순식간에 황조롱이의 먹이가 되고 만다. 딱새, 박새, 곤줄박이, 제비, 붉은머리오목눈이 같은 작은 새들이 황조롱이의 먹잇감 들이다.

 

제비집을 터는 황조롱이 /윤병렬
제비집을 터는 황조롱이 /윤병렬

그런데 왜 황조롱이는 가뜩이나 살기 어려운 도시로 이주한 것일까?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가장 타당한 설은 도심 빌딩을 높은 바위 벼랑처럼 생각해 좋아한다는 것이다. 시야가 탁 트여 먹이 있는 곳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또한 재빠르게 날아오를 수 있는 공간을 선호하는 황조롱이의 특성이 도심을 선택한 이유라는 것이다. ‘도시로 간 황조롱이’라는 어린이 동화책에 나오는 황조롱이 부부는 아파트 베란다와 발코니에 놓여있는 화분을 둥지로 선택했다. 바위 절벽의 오목한 부분과 닮은 곳이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뉴스에 종종 등장하는 황조롱이들이 바로 도시로 간 황조롱이들이다. 황조롱이는 원래 둥지를 짓지 않는 새다. 한번 쓴 둥지를 지속적으로 쓴다. 지정된 사냥터도 둥지와 가까운 곳에 있다. 자신이 직접 둥지를 짓지 않고 새매나 말똥가리, 까치, 어치가 지은 둥지나 하천의 흙벽, 바위 벼랑의 오목한 곳에서 번식한다. 주로 절벽이나 집 처마, 다리 난간 같은 지형에 둥지를 틀고 네 개에서 여섯 개 정도의 알을 낳는다. 한국 지형에 강한 황조롱이의 특성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어찌 보면 황조롱이가 조상 때부터 대대로 살아오던 삶터를 인간이 빼앗아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귀소 본능과 영역 본능이 탁월한 황조롱이 입장에선 인간이 원망스러울 따름인 것이다. 황조롱이가 도시로 온 것이 아니라 도시가 황조롱이의 공간을 침략한 것이다. 어떤 조류학자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다른 도시에 비해 부산 시내에 황조롱이가 많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의 특성상 원래 황조롱이가 번식하던 산과 절벽을 깎아 아파트와 빌딩을 지은 곳이 많아서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인위적인 구조물에서 오히려 번식 성공률이 더 높은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태풍 같은 바람의 영향이나 집중 호우 같은 비의 영향으로부터 비롯되는 둥지 훼손이 적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도심에 지은 까치둥지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 번식기에 까치와 혈투를 벌이는 황조롱이도 많이 관찰할 수 있다. 황조롱이가 까치나 까마귀와 벌이는 둥지 쟁탈전과 전투 장면은 짠한 마음까지 들 때가 있다. 황조롱이는 암컷과 수컷 역할이 뚜렷이 구분되어 있는 새 중 하나다. 암컷은 둥지에 앉아 알을 품는다. 수컷은 주로 사냥을 담당한다. 수컷이 사냥해온 먹이는 그들만이 정한 특별한 장소에서 암컷이 전달받아 새끼에게 정성스레 찢어 먹인다. 알과 새끼 그리고 암컷을 지키기 위한 수컷 황조롱이의 사투는 눈물겹다. 도시화와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던 그 시절 아버지의 모습을 닮은 듯해서 더욱 짠하다.

황조롱이의 삶을 더 많이 힘들게 하는 요소는 건물 유리창이다. 투명 유리창은 새나 사람이나 그 존재 자체를 가늠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사람은 간혹 유리창에 부딪혀 다치는 정도인데 반해 새들은 대부분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도심을 날아다니며 먹이를 구하는 황조롱이들에게 투명 유리창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이나 다름없다.

예나 지금이나 황조롱이는 사람들에게 참 고마운 새다. 곡식 축내는 쥐를 잡아먹는 새인 동시에 최상위 포식자로서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해 주는 맹금류이기 때문이다. 사람들 곁으로 다가와 함께 살자며 고개 내미는 황조롱이. 아파트 베란다와 발코니를 내주는 사람들이 늘어간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따뜻한 미소가 퍼지는 반면 한편으론 다른 생각도 든다. ‘개발과 발전에 환장한 사람들 욕심은 어디까지일까. 이러다간 인간에 의해 여섯 번째 대멸종이 초래될지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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