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받은 것보다 더 주려고 하는 기버
하기에 따라 호구도 능력자도 될 수 있어

아내를 처음 본 건 24년 전 대학교 1학년 때였다. 같은 과 동기생이었다. 둥글둥글하고 착해 보이는 인상이 좋았다. 서울 사람들은 다 겉으로는 친절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다 계산적이라는 조금은 편협한 통념을 가지고 있던 더벅머리 시골출신 필자에게 아내는 서울 토박이였음에도 그저 '착하다'는 인상으로 다가왔다.

인간사가 다 그렇듯 아내와의 결혼까지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내보다 더 키가 커버린 딸과 외모만큼은 필자를 꼭 닮은 아들을 키우며 살고 있다. 아내의 전반적인 인상은 필자뿐만 아니라 아내를 알고 있는 그때 친구들이나 이후 만나는 사람들이나 전반적으로 똑같다. 착하다는 거다. 왜 모두들 당신을 착하다고 할까. 물론 나도 당신이 뭣보다 착해서 결혼했지만. 도대체 착하다는 게 뭐지? 아내와 이야기하면서 자문자답도 많이 하곤 했다.

아내와 부부싸움을 하면 항상 나오는 말이 그렇다. 나는 항상 당신과 아이들의 보조자이며 주변인이다. 마치 군대의 5분 대기조처럼 항상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즉 나의 일, 내가 일궈낸 성과 등 '나'라는 존재감을 찾기가 어렵다고 한다. 남에게는 착할지 모르겠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착하지 못한 아이러니함에 아내는 힘들어한다.

그런데 이게 알고 보니 '기버(Giver)'들의 일반적인 특성이었다. 기버들은 남으로부터 받는 것보다 더 주고 싶어 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타인과 갈등이 있을 때도 내가 좀 불편하면 되지, 내가 좀 손해 보면 되지 이런 태도를 보인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착한 사람의 전형이다. 기버들은 공감능력이 매우 높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감정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해 같이 웃고 같이 운다. 그런데 그로 인해 정작 자신은 손해를 보게 되고 급기야 다른 사람들에게 착한 사람을 넘어 '호구'라고 찍히게 된다.

그에 반해 '테이커(Taker)'는 받는 것보다 적게 주는 사람들이다. 테이커는 자기애가 강하다. 그래서 나의 것, 나의 일, 나의 성과물을 항상 먼저 챙기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손해를 보는 것을 참지 못한다. 이런 테이커들에게 기버는 딱 좋은 먹잇감이다. '매처(Matcher)'는 받는 만큼 주는 사람이다.

굳이 따지자면 기버는 착한 사람, 매처는 중간, 테이커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많은 연구결과는 기버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생산성이 떨어지고, 수입도 적고, 사기와 같은 범죄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내 일보다 남 일을 더 신경 쓰니 생산성이 떨어지고, 남의 선의를 마냥 믿어주다가 뒤통수를 맞게 되는 패턴이다. 그렇다면 기버는 실속은 전혀 없으면서 듣기만 좋은 착한 사람인 건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위 연구결과는 동시에 기버들 중 일부는 성과가 가장 좋은 톱 클래스에도 상당수가 분포되어 있다고 알려주고 있다. 즉 기버는 호구가 될 수도 있지만, 그 특유의 베푸는 성격으로 강력한 인적 인프라를 구성해 최고의 성과를 내는 능력자도 될 수 있다는 거다.

기버들은 테이커들을 잘 가려내야 한다. 기버를 호구로 만드는 사람은 테이커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의 유형을 기버, 매처, 테이커 이렇게 딱 세 종류로 나누기는 어렵다. 같은 기버라도, 같은 테이커라도 정도의 차이는 있기 마련이다.

얼마 전 아이들에게 아내 몰래 용돈을 평소 받는 것보다 2배 더 주려고 했다. 아들은 그래도 "정해진 게 있는데 그렇게 많이는 못 받겠어요" 했지만, 딸은 날름 받으려 했다. 아이들의 행동패턴을 보고는 항상 느끼는 거지만 아들은 엄마 닮았고, 딸은 나를 닮았구나 싶었다. 착한 천성의 아들이 호구가 안 되는 법을 가르쳐야겠다. 아내와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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