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없이 변화하되 균형 유지하는 자연
좌익·우익 치우치면 사회 병들게 해

엊그제가 하지였다. 일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길고 밤은 가장 짧은 절기다. 지난해 동지 때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았던 현상의 정반대다. 사계절의 변화와 함께 자연의 변화를 쉼 없이 설법하고 온몸으로 느끼도록 하는 자연의 얼굴이다. 그 변화는 반드시 균형을 유지한다.

새가 두 날개로 날아가듯이 인간 마음도 언제나 두 날개로 꿈을 날고 있다. 만약 한쪽 날개가 상처를 입으면 마음의 평정을 잃게 된다. 날개는 오른쪽, 왼쪽을 지탱하면서 생각과 꿈을 날아서 삶을 짓는다. 오른쪽이나 왼쪽 날개를 더 많이 움직이면 판단이 흐려지거나 오판하게 되고, 행동은 더욱 한쪽으로 기울어져 불평불만이 커지고 관계유지가 어려워져서 폭력과 투쟁으로 돌진한다. 자기 생각과 행동방식이 다른 사람을 증오하고 소외시키며 심하면 죽이기도 한다.

좌익과 우익, 보수와 진보의 근원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탐욕이라는 오래되고 전혀 치유되지 않은 채 인간의 삶속에 깊이 뿌리내린 무서운 병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 모든 것을 판단·결정·행동하는 이 증상이 사회성과 정치성과 결합하면 집단심리로 돌변하여 한 사회나 시대를 병들게 한다. 특히 경제이론, 사회논리, 정치목적 등과 결합하면 한 시대의 모든 사람을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만들어 깊고 큰 상처를 남기거나 멸망할 수도 있다. 좌익·우익·보수·진보는 탐욕의 소산이다. 비슷한 정도의 생각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일수록 어느 한쪽 성향에 깊이 매몰되며 자신과 반대쪽 사람을 적으로 규정하고 싸우며 죽이려 든다. 그 모습이 정치든 사회문화든 국회·행정부·사법부든 똑같은 증상에 매몰된다.

여기서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은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많이 소유한 사람일수록 한쪽으로 치우친 증상이 깊고, 독하며, 매몰차다는 것이다. 외국의 어느 신문에서 읽었는데, 한국인들은 지식과 대학을 버렸다는 내용이었다. 지식을 버렸다는 말은 상식보다 감정에 지배되고 대학을 버렸다는 것은 대학의 지식이 한국인의 삶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현상을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의 기이한 행태를 예로 들었다. 대학을 버린 예로 이른바 폴리페서로 불리는 정치권력 해바라기 교수와 공무원이 되려는 학생을 들었다.

사실 우리나라 대학 학문의 대부분은 외국에서 수입한 것이다. 생산지의 특성과 역사를 소중하게 여기는 외래학문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도와주기는 어렵다. 그러니 돈과 시간과 열정만으로 퍼붓고는 빈껍데기로 늙어가는 것이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초라한 군상일지도 모른다. 이 깊은 허무와 상실감에서 좌우, 진보보수의 뒤틀린 독소를 들이켜고 미친 듯이 설쳐대다가 속절없이 죽어간다. 정치권력과 좌우, 보수진보의 접목은 우리 현실의 눈을 멀게 한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올바름을 실천하는 수행인 중정(中正) 철학을 절규했던 19세기 중엽의 불교 수행자였던 초의(草衣)스님의 법문이 다시 그리워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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