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날다' 줄임말 아날
조합원 대부분 마을 여성
농촌·생태 지키기 활동가
'안전한 식탁'고민하면서
지역 농산물 사용 지향에
고유 품종들 보전 사업도

세련된 데다가 도도하기까지 한 '아가씨'들이 결국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느덧 '아줌마'가 된다. 아줌마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냥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한 명 한 명 아줌마들은 저마다 특별하고 소중하다. 그 특별함이 눈에 띄는 우리 동네 아줌마들을 만났다.

◇아줌마들의 비상 = 지역사회에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고 '거창 아줌마'들이 모였다. '아줌마 날다'라는 뜻을 담아 2017년 10월 '아날'이라는 협동조합을 만든 것이다. 이들은 시작부터 협동조합을 선택했다. 배경숙 대표는 그 이유를 "여성의 삶을 주체적으로 바라보고, 아줌마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지역사회의 공익적 가치를 실천해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돈을 많이 벌면 좋겠지만, 협동조합은 적자가 나지 않는 선에서 조합원 모두가 즐겁고 행복하게 같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날'은 조합원 26명 중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엄마이고 주부다. 협동조합을 만들면서 '안전한 먹거리 운동'은 공통된 관심사였다. 당연히 협동조합이 해야 할 사업으로 먹거리 운동을 선택했다. 하지만, '아날' 조합원들은 여기서 머물지 않았다. 안전한 먹거리 운동을 고민하며 우리나라 농업과 농촌의 현실에 관해 관심을 넓히고, 지구환경과 시민으로서 그 역할을 생각했다.

"농사를 직접 짓지 않아도 우리 모두는 농촌·농업과 연결되어 있다. 안전한 먹거리는 친환경 농업에서 시작되므로 조합에서는 생태환경을 지키는 일을 해 나갈 것이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를 이웃과 함께하고자 노력해 나갈 것이다. 우리는 '아날'을 통해 우리의 생활 방식과 철학을 조금씩 완성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한 조합원이 '아날'을 두고 말한 이야기다.

◇아줌마들의 아지트 카페 '아날' = 협동조합 '아날'은 지난해 1월 거창읍 상림리에 있는 한 카페를 인수해 문을 열었다. 조합의 일터와 함께 아줌마들이 아지트를 만든 것이다. 카페 이름도 조합 이름을 따 '아날'로 지었다. 카페 '아날'은 당연히 친환경 카페를 지향한다. 지역 농산물과 친환경 농산물이 기본 식재료다. 화학첨가제 없는 건강한 음료를 만들고, 시럽 등 모든 식재료는 'NON-GMO(비유전자변형식품)'만 쓴다.

초등학생 자녀 두 명을 데리고 카페를 찾은 한 주민은 "아이들 간식거리가 참 걱정인데 이곳에 오면 마음이 놓인다. 어디에서 제주산 무농약 레몬이 들어간 레모네이드를 맛볼 수 있겠냐? 카페 '아날'에 오면 건강해지고 뭔가 배워가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취재차 들른 날 카페의 특별메뉴는 '카라멜 시럽을 직접 만들어 달달하면서 느끼하지 않은 카라멜마끼아또', '공정무역 카카오닙스 요거트', '거창에서 키운 무농약 흑마늘 라떼', '구운 가래떡과 한살림 조청'이었다.

카페 '아날'에서는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건강한 먹거리와 판매 관련 다양한 정보도 같이 나눈다. 한살림 거창매장에서 여는 '토종이 있는 수요장터' 소식과 농가 직거래 관련 정보도 상세히 전한다. 또, 제철 과일과 채소 등 친환경 먹거리를 전국 여성농민들과 연계해 판매를 돕기도 한다. 최근에는 합천군에서 생산된 유기농 흑토마토를 소개해 판매를 도왔다.

이 밖에도 월 1회 조합원들이 참여하는 협동조합 공부 모임도 진행하고 있다. '작은 음악회', '이웃과 소통하고 즐기는 우리동네 톡투유', '우리 막걸리 나눔' 같은 특별한 행사도 자주 연다.

한 조합원은 "카페 '아날'은 언제나 재미있고, 정이 넘치며, 맛난 것을 먹고, 무엇인가를 배워갈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 2017년 10월 결성한 '아날' 협동조합, 이들은 지난해 1월 거창읍 상림리에 카페도 열었다. 지역 농산물·친환경 먹거리 추구가 '거창에서 키운 무농약 흑마늘 라떼'라는 메뉴에서 잘 드러난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 2017년 10월 결성한 '아날' 협동조합, 이들은 지난해 1월 거창읍 상림리에 카페도 열었다. 지역 농산물·친환경 먹거리 추구가 '거창에서 키운 무농약 흑마늘 라떼'라는 메뉴에서 잘 드러난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 아날협동조합은 건강한 먹거리와 토종씨앗 사업도 펼친다. /박일호 기자
▲ 아날협동조합은 건강한 먹거리와 토종씨앗 사업도 펼친다. /박일호 기자

◇'아날'의 특별한 사업 '토종씨앗' = 협동조합 '아날'이 하는 아주 특별한 사업이 있다. 바로 '토종씨앗'을 지키는 사업이다. 거창에는 지난 3월 거창여성농업인센터가 토종씨앗의 명맥을 잇기 위해 거창토종씨앗보급소를 열었다. 외래종과 유전자변형농산물 종자에 밀려 토종씨앗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가운데 토종씨앗을 수집하고 지역 주민에게 재배기술을 알려주는 사업을 한다. '아날'도 이 사업에 동참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거창군 신원면 일대 마을을 찾아다니며 토종씨앗 실태조사와 수집활동을 펼쳤다. '아날'은 당시 활동 결과를 담은 책자를 거창군여성농민회와 같이 발간하기도 했다. 올해도 조합원들이 여성농민회와 함께 토종씨앗을 찾고자 거창군 가북면을 대상으로 수집활동을 벌이고 있다.

배 대표는 "토종씨앗은 지역의 고유 유산이다. 우리 민족의 정신문화와 연결되어 있다. 생물의 다양성 확보는 식량 주권과 안보의 중요한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조합원은 "토종씨앗을 조사하며 신원면에 있는 마을 전부를 돌아봤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떠난 농촌 마을의 황량함이 보였는데, 외지 사람을 반갑게 맞아주는 마을 어르신들을 보며 따뜻한 정을 느꼈다. 토종씨앗으로 말미암아 이웃끼리 서로 경계를 허무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고 전했다.

또, 한 조합원은 "토종씨앗은 이 땅의 역사와 함께했다. 토종씨앗의 소중한 유전자 정보는 안전한 밥상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 토종씨앗을 통해 정말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거창의 농민단체가 위천면 서덕들 660㎡(200평) 남짓한 논에 토종벼를 손 모내기로 심었다. 예전에 거창 지역에 많이 심었던 품종인 '노인도'와 '다다조'라는 토종벼로 '아날' 조합원들도 참여했다. 한 조합원은 "벌써 어떤 쌀이 나올까 기대가 된다"며 "가을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조합원과 대화 중 카페 '아날'에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 한 조합원 부부가 두 살배기 아이를 데리고 방문한 것이다. 부산에서 귀농한 젊은 조합원으로 '아날'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고 다른 조합원들이 귀띔을 해줬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눈망울처럼 조합원들의 이야기에서 새삼 순수함과 맑은 힘이 느껴진다. 사람 사는 세상의 끈끈한 정과 함께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같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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