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는 이지은·전동군 부부
현실적 걱정 떨치고 오른 여정
4년간 70여 곳 나라 문화 경험
하루하루 짧은 일기·사진 모아
지역출판사 불휘미디어서 펴내

책을 읽으며 몇 년 동안을 세상의 길 위에서 보낸 지난 여행의 기분들이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순식간에 저를 오랜 여행자로 되돌려 놓은 건 지역출판사 불휘미디어에서 낸 <하루 한장 여행 일기>(이지은, 2019년 4월)입니다.

이지은(40)·전동군(42) 부부가 장기 세계 여행을 하면서 쓴 글과 사진들이 담겨 있습니다. 글은 아내 이지은 씨가 썼고요. 서울에 사는 분들인데 우연히 불휘와 인연이 닿아서 책을 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느 유명한 여행작가들처럼 사색적이라거나 감성 넘치는 내용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일상을 옮겨놓은 짤막한 일기라도 이렇게 모아 놓으니 여지없이 훌륭한 여행 책이 되는군요. 오히려 이런 일상적인 이야기가 저의 지난 기억을 더욱 생생하게 살려놓는 것 같습니다.

▲ 2013년 세계 여행 중 파키스탄 훈자에서 만난 풍경. /이지은
▲ 2013년 세계 여행 중 파키스탄 훈자에서 만난 풍경. /이지은

◇박차고 나와 세상을 향해

"대학교 졸업 후 약 10년, 당연하다 생각하며 살았던 우리의 삶에 대해 끊임없는 물음들이 생겨났다.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해볼까? 우리가 하고 싶은 건 뭘까? 우리의 행복은 무엇이지? 무얼 했을 때 우리는 행복하지?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인데, 하고 싶은 일 하면서, 행복해질 수는 없을까?" (8쪽)

아마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을 맞닥뜨리는 때가 있을 겁니다. 저로 치면 '삶의 모든 것이 넘어져 있었다'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고 누구나 선뜻 모든 걸 정리하고 세계 여행을 떠나는 건 아닙니다. 무모할 정도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거든요. 결정하고 나서도 하루에 수십 번을 내가 잘한 것인지 되묻게 됩니다. 주변에서도 난리가 납니다. 주로 '갔다 와서 어떻게 먹고살 거냐', '지금까지 쌓은 경력이 아깝지 않으냐' 같은 걱정어린 질문을 많이 받게 되죠. 이 부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세계 여행을 하겠다는 결정이 과연 잘한 결정일까? 하는 현실적인 걱정과 두려움이 꿈틀거릴 무렵, 우리는 문득 깨달았다. (중략) 그건 그때 가서 걱정하면 되는 일인데, 가진 것이 늘어나면 포기하기란 더 어려워질 것이고, 지금 용기를 내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결심하기 어려운 일이 될 텐데,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면 그땐 건강이 허락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인데, 지금 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잖아?!!" (9~10쪽)

▲ 이탈리아 시라쿠사 가는 길에서 이지은, 전동군 부부. /이지은
▲ 이탈리아 시라쿠사 가는 길에서 이지은, 전동군 부부. /이지은

◇고생스럽고도 행복한 일상

막상 다녀보면 장기 세계 여행이란 게 만만치가 않습니다. 저로 치면 정말 외롭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그러다가 미친 듯이 행복해지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이들은 함께여서 외롭지는 않았겠지만, 그렇더라도 고생스러움은 피해갈 수 없었던 것 같네요.

"사실 이란은 쉽지 않은 여행이었다. 글자도 말도, 화폐 단위도, 심지어 숫자마저 우리에겐 생소하고, 관광객이 많지 않은 까닭에 편의 시설도 충분하지 못했다. 특히 이란에서 머문 보름 동안, 몸무게가 10㎏이나 빠져버렸다. 같은 이슬람 문화권이지만, 이스탄불은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도시라 그런지 맛집 천국이로구나~." (터키 이스탄불, 142쪽)

"가방이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완전히 열려있다! 홀라당 가방이 열리는 동안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던 나, 그만큼 솜씨가 좋았던 게지. 피렌체에는 유난히 소매치기가 많다는 말에 중요한 물건들을 숙소에 두고 나온 터라 우리의 가방 안에는 간식으로 싸 온 샌드위치 세 개가 전부였다. 조심스레 가방을 열었던 그 사람, 얼마나 당황했을까?" (이탈리아 피렌체, 299쪽)

▲ 2013년 세계 여행 중 이란 이스파한에서 친절한 이란 사람들과 함께한 이지은(왼쪽에서 둘째) 씨.  /이지은
▲ 2013년 세계 여행 중 이란 이스파한에서 친절한 이란 사람들과 함께한 이지은(왼쪽에서 둘째) 씨. /이지은

◇여행이란 일상을 살다

어쩌면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낯선 곳을 어떻게 돌아다닐까 궁금하기도 하겠습니다. 사람은 그런 '위기' 상황에서 감각이 예민해지고, 두뇌 활동이 활발해지는 것 같습니다. 항상 어떤 식으로든 방법이 생겼거든요. 책에는 힘들거나 혹은 즐겁거나 하는 경험이 많이 적혀 있습니다. 이렇게 좌충우돌하며 여행자가 되어가는 거죠.

"여행을 한다는 것, '여행'이란 일상을 매일 살아가는 것이다. 어딘가에 도착하면, 거기서 무엇을 볼 것인지, 어디를 갈 것인지를 정하고, 언제 갈 것인지, 휴관일은 언제인지, 교통수단은 어떻게 되는지, 최적의 동선은 무엇인지, 그 도시에 관한 역사를 공부한다. 매일의 일정을 소화한 뒤에는 하루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다음 날, 혹은 다음 목적지에 대해 준비도 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무엇을 먹을지, 어떤 재료를 살 것인지, 마늘과 토마토는 몇 개를 살 것인지까지…. 하나하나가 의사결정의 연속이다. 여행이라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또 한 뼘 성장하는 중이다." (285쪽)

그렇게 새로운 일상에 적응이 될 무렵이면 낯선 사람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군요. 문화가 다르고, 환경이 다른 곳이라도 여행자에게 호의적인 사람은 어디나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요. 이 부부는 저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만났고, 지금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이들과 함께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나에게도 변화가 나타났다. 특히나 이란과 파키스탄 여행 이후 내 안에 가지고 있던 편견과 오해들이 깨지고, 그 일을 계기로 주위 사람들과 세상을 향해 마음을 좀 더 열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알아가는 재미를 발견하게 되고, 호기심도 생기면서, '한 번 해볼까?' 하는 도전 의식도 늘어갔다." (138쪽)

▲ 인도 델리에서 만난 청년들과 함께한 전동군(오른쪽에서 둘째) 씨. /이지은
▲ 인도 델리에서 만난 청년들과 함께한 전동군(오른쪽에서 둘째) 씨. /이지은

◇우리가 걸어가는 방향

2013년 네팔에서 시작한 부부의 장기 여행은 4년 동안 몇 번이나 이어졌습니다. 이들이 다녀간 나라도 70여 곳에 이릅니다. 그리고 현재 남편은 다시 일을 하고 있고, 아내는 대학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장기 여행은 아니지만, 여행을 자주 다니려 노력하고 있다네요.

"어떻게 사는 것이 보다 행복하게, 보다 가치 있게 사는 것일까? 세계 여행을 시작하며 가졌던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여전히 찾아가는 중이다. 다만, 예전에는 어디로 가야 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몰랐다면, 지금은 그 방향이 어디인지쯤은 알 것 같다. 그래서 그 답을 향해 한 걸음 더 내딛고 있다고 생각한다." (381쪽)

이번 책에는 처음 여행을 떠나서 9개월 동안의 여정이 담겼습니다. 이후 이야기도 책으로 낼 예정이라는군요. 부부의 못다 한 다음 여행 이야기가 무척 기다려집니다.

불휘미디어 펴냄, 384쪽, 1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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