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친구들 모두 부러워한 아이가 있었다. 문방구집 딸이었다. 문방구는 보물섬이었고 친구는 그 보물을 마음대로 쓰고 먹는 공주 같았다. 실제로는 단 하나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했지만 '너도 그런 가슴 아픈 속사정이 있구나' 하는 생각 따윈 들지 않았다. 우리가 좋아하는 게 전부 거기 있었으므로 그저 부러웠고, 방과 후엔 매일같이 문방구로 몰려갔다.

반짝반짝하는 2층짜리 새 필통, 냄새도 나는 음식 모양 지우개, 저런 수많은 색깔을 언제 다 써보나 싶은 물감은 보기만 해도 흐뭇했다. 아직 잉크냄새가 나는 새 문제집, 입으면 날아다닐 것 같은 새 체육복, 비싸서 만져보지도 못한 장난감에 괜스레 설렜다. 문방구에서 파는 간식거리는 무엇보다 맛났다. 동전을 넣으면 작동되는 오락기를 한밤중엔 독차지하고 있겠구나 싶었다.

정작 그 친구는 슈퍼마켓집 아이를 부러워했다. 깨끗하고 조용하고 세련되고 고급스러워 보인다고 했다. 사실 몇 평 되지 않는 작은 잡화점이었고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더 많았지만, 우리에게 문방구가 그랬듯 친구에게는 그 슈퍼마켓이 이상향이었다.

언젠가 그의 아버지가 젊은 시절 책방을 하고 싶어 했으며 나중엔 문방구를 접고 책방으로 바꿀 계획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그의 딸도 우리도 "왜요?" 여러 번 물었다. 몇몇은 슈퍼와 문방구에 더 많은 물건이 있는데 책만 팔면 손님이 많지 않을 거라고 했고, 다른 몇은 대체 책이 왜 좋은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사를 갔다가 한참 지나 대학생이 된 후에야 그 동네에 들렀다. 골목엔 문방구도 슈퍼마켓도 남아있지 않았다. 책방이 생기지도 않았다. 대신 24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과 주택보수 업자의 개인사무실이 들어섰다. 골목은 한낮에도 밤에도 조용하고 길 건너 곳곳에서는 대단지 아파트 건축공사가 한창이다.

이제 동네 꼬마들은 어디를 아지트 삼아 추억을 쌓고 있을까. 문방구집 막내딸인 친구와 그 아버지는 과연 꿈을 이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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