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정완영 작품세계 분석
정제된 시상·자유로운 율격
전통시조 품격 잃지 않게 해

18일 오후 7시 경남문학관 2층 세미나실은 50여 명의 청중이 자리를 가득 채웠다. 이날 경남문학관이 준비한 이지엽(61) 시조시인 초청강연이 있었다. 이 시인은 1982년 <한국문학>에 시가,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와 현재 경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으로, 계간 <한국동시조> 발행인과 <열린시학>, <시조시학> 편집주간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날 강연은 '격조 높은 한국의 서정과 절묘한 율격의 완성'이란 제목으로 백수(白水) 정완영(1919~2016) 시조시인에 대한 것이었다. 정완영 시인은 경북 금릉군(현 김천시) 출신으로 1960년대를 풍미한 시조시인이다. 그에 이르러서야 현대시조가 완성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확실히 백수의 출현은 당시 시조단에 큰 충격을 주었다고 판단된다. 단아하고 잘 정제된 시상과 한국의 정한의 주제, 물이 흐르듯 자유로운 율격의 작품들은 당시의 시조단을 확실하게 사로잡았으며 빠른 시간에 전파되어 그 문체를 흉내 내는 수많은 시조시인들이 양산되기도 하였다." (강연 자료집 6쪽)

이지엽 시인은 백수 시의 서정을 대표하는 시조로 '감'이란 작품을 들었다. 그는 전체 3연 중 세 번째 연에 특히 감동했다고 밝혔다.

▲ 18일 오후 7시 경남문학관 2층 세미나실에서 이지엽 시조시인이 시조의 서정과 율격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이서후 기자
▲ 18일 오후 7시 경남문학관 2층 세미나실에서 이지엽 시조시인이 시조의 서정과 율격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이서후 기자

"초가집 까만 지붕 위 까마귀 서리를 날리고/ 한 톨 외로이 타는 한국 천년의 시장기여/ 세월도 팔짱을 끼고 정으로나 가는 거다." (정완영 시조 '감' 중에서)

이날, 이 시인이 백수를 통해 강조하고자 한 것은 결국 우리 전통 시조의 높은 품격이었다. 그는 특히 백수가 이룩한 가락의 유연성 부분에서 우리 시조의 독특함이 잘 드러난다고 강조했다. 백수는 시조의 형식을 엄격히 따졌지만, 가락을 살려야 할 부분에서는 오히려 과감했다. 다음 시조를 보자.

"설사 저 장천(長天)에서 동아줄을 내려준대도/ 이 강산(江山) 이 수심(愁心) 버리고 하늘에는 내사 안 갈래/ 풀피리 불자던 봄이 너 더불어 오잖는가" (정완영 시조 '겨울' 중에서)

"눈발도 우두봉 눈발은 휘몰이로 치는 건데/ 백매화 가지를 꺾어 두드리는 시늉도 하고/ 하룻밤 군불을 지펴도 한 백 년은 산 것 같더라." (정완영 시조 '관기리' 중에서)

'이 강산 이 수심'이나 '우두봉 눈발은' 같은 부분은 일반적인 시조 율격에서 벗어났지만, 실제로 읽으면 가락을 타려고 일부러 그렇게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운율의 강·약과 완·급까지를 고려하면 한층 묘미를 느끼게 한다. 한 음절이나 어절에서 강·약·완·급의 개념은 우리나라 자유시의 시학에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개념이지만 시조에서는 탄력성을 부여하는 역할과 관련되어 매우 중요하다." (자료집 17쪽)

이런 강약완급 조정이야말로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우리 시조의 품격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시인은 이런 운율의 묘미를 살린 사설시조나 백수가 독자적인 세계를 완성했던 동시조(童時調)야말로 지금 시대에 시조가 살아남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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