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숙소·주중 대회 등 금지
선수·지도자·학부모 반발
"현장 목소리 듣고 정책 짜야"

"일반 학생들이 공부하는 건 괜찮고, 운동하는 학생들이 운동하는 건 안 된다는 건가요. 그런 걸 왜 정부가 막는 건가요."

"기숙사와 합숙소의 차이는 뭔가요. 학교 기숙사와 일반 기숙학원은 인정하면서 운동선수 합숙소는 폐지한다는 걸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제주도 한라체육관에선 지난 16일부터 전국 중등·고등학교·대학교·일반부 선수들이 참가한 종별 체조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혁신위원회(혁신위)의 2차 권고안대로라면 대한체조협회는 내년부턴 주중에 이런 종별 대회를 열 수 없다.

체육계 구조 개혁을 위해 민관합동으로 출범한 혁신위가 지난 4일 발표한 2차 권고안에서 운동선수들의 학습권 보장을 이유로 학기 중 주중 대회를 열지 말고 주말에만 개최하라고 제안한 탓이다. 체조의 종목 특성상 대회 일정을 이틀 내에 끝낼 순 없다. 주말 이틀로는 모자란다. 게다가 무리하게 일정을 진행하면 선수들이 다칠 위험이 커진다.

대회 전체 수를 줄여 방학에만 진행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반론에 체조인들은 대회 수 감소는 곧 경쟁력 저하라고 입을 모은다. 혁신위 2차 권고안 발표 이후 체육계는 주중 대회 금지, 합숙소 폐지, 확대 개편보다는 폐지에 가까운 소년체전 진행 방식 변경 등에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일방 제안이라며 격하게 반발했다.

한라체육관에서 만난 선수, 학부모, 지도자의 반응도 한결같다. 이구동성으로 혁신위의 권고안 취지는 이해하지만, 제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 정교한 체육 정책을 짜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3년간 딸을 체조 선수로 키우고 귀국한 학부모 ㄱ 씨는 "운동하는 선수들에게 맞는 수업 커리큘럼을 만들어주면 좋겠다"며 "미국에선 학교에서 그렇게 수업을 짠다. 안 그러면 미국 운동선수들도 일반 학생들의 수업을 못 따라간다"고 설명했다.

한 사회의 건전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학교는 기본 교육을 선수들에게 제공하고, 선수들은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훈련하며 학교 수업을 듣는 여자 기계체조 대표선수들은 운동을 쉴 수 없도록 모는 주중 대회 금지 방침을 걱정했다. 한 선수는 "주중 대신 주말에만 대회를 뛴다면 쉴 수 있는 시간이 없기에 힘들 것 같다"고 예상했다. 이어 "부족한 학습은 인터넷 등을 통한 'e러닝'으로 대체해 운동과 수업을 병행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현재 여자 대표선수들은 대한체육회의 위탁 교육 협약에 따라 충북체고에서 수업을 받는다. 매일 3∼4교시 오전 수업을 받고 오후에 진천 선수촌에 돌아와 체조 훈련을 이어간다.

지도자들은 혁신위와 체육계 갈등이 마치 밥그릇 싸움으로 비치는 것에 거부감을 보이면서 유독 체육계에만 가혹한 정부 정책에 불만을 터뜨렸다. 특정 종목, 특정 지도자의 일탈로 촉발된 체육계 폭행·성폭력 사태를 마치 엘리트 스포츠 전체의 문제인 양 매도한 점, 학습권이라는 하나의 틀에 끼워 맞추다 보니 선수들의 운동 권리를 무시한 점을 들어 혁신위의 원칙을 불신했다.

최저학력을 통과한 선수들만 대회에 출전토록 하겠다던 혁신위의 권고가 대표적이다. 운동선수의 성적이 전교생 평균과 비교해 일정 기준의 최저학력(초등학교 50%, 중학교 40%, 고등학교 30%)에 미달하면 그 선수의 전국 규모 대회 출전을 막는다는 것이다. 운동선수들에게 너무 과도한 요구를 한다는 여론이 체육계에서 우세하다.

체육인들은 또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는 아무 토를 달지 않고 용인하면서 운동선수들을 위한 합숙소엔 눈살을 찌푸리는 이중 태도도 비판했다. 지도자 ㄴ 씨는 "합숙소는 사라져도 종목 일정에 따라 합숙훈련은 짧더라도 진행해야 할 텐데 그럼 부족한 예산 탓에 유흥지대 복판에 몰린 모텔에서 지내며 훈련해야 하는 것이냐"고 말했다. /연합뉴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