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살 때 김해랑 덕에 마산서 교육·전통춤 섭렵
"은혜 못 잊어"술회…다수 영화 주조연 활약도
서울서 30여년 후학양성·독보적 작품세계 구축

최현(1929~2002)은 만능재주꾼이었습니다. 부산 출신으로 노래를 곧잘 불렀던 그는 무용가 김해랑(1915~1969) 눈에 띄어 마산에서 무용을 배웠습니다. 최현은 수려한 외모와 춤 실력 덕에 <삼천만의 꽃다발>(1951년)로 영화계 데뷔까지 합니다. 하지만 "본 자세로 돌아가는 것이 선생님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 무용에 전념하죠. 그는 교육자로서 예술가로서 한국 무용계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100여 편의 안무작을 남겼죠. 이 시대 마지막 낭만주의자, 수려한 춤사위 속의 고독한 춤꾼이라 불린 최현. 올해 타계 17주기를 맞아 그를 재조명해봅니다.

지난주 창원시 마산합포구 씨네아트 리좀에서 '무용인 최현, 영화인 최현'이란 주제로 토크쇼가 열렸다. 이승기 전 마산문화원 영상자료원장과 장승헌 공연기획 MCT 대표·예술감독, 남정호 전 한예종 무용원 교수, 정양자 록파무용단 단장, 이동근 마산국제춤축제 대표, 정연규 대동제 대회장 등 6명이 마이크를 들었다. 그들은 각기 다른 주제로 최현을 기억했고 이야기했다. 이날 최현 부인 원필녀 씨, 김해랑 아들 김기석 씨 등을 비롯해 50여 명이 함께했다.

▲ 지난 13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씨네아트 리좀에서 '무용인 최현, 영화인 최현' 토크쇼가 열렸다. 참석자들이 각기 다른 주제로 최현을 기억하고 이야기하고 있다. /김민지 기자
▲ 지난 13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씨네아트 리좀에서 '무용인 최현, 영화인 최현' 토크쇼가 열렸다. 참석자들이 각기 다른 주제로 최현을 기억하고 이야기하고 있다. /김민지 기자

◇제2의 고향 마산 = 김해랑은 한국무용계 1세대로 영남춤의 대부로 불린다. 최현은 17살, 악극단 초빙강사로 온 김해랑에게 스카우트됐다. 그는 당시 무지개악극단이 주최한 전국가요경연대회에서 2등으로 입상해 악극단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렇게 최현의 마산 생활은 시작됐다. 마산상고 졸업 후 서울대 사범대학 진학까지 만 7년 정도다. 그는 김해랑 집에서 먹고 자며 각종 전통춤을 섭렵했다. 훗날 그는 스승 김해랑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술회했다.

"모든 것은 다 선생님이 시켜준 거예요. 학비 다 대주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끈질긴 스승의 제자 사랑하는 마음 덕에,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거칠 수 있었어요. 뭘 가르쳐줘서, 춤을 잘 춰서, 돈이 많아서, 그런 게 문제가 아니라 길을 못 찾고 있는 한 사람의 젊은이에게 길을 열어주었다는 그 은혜는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지요."

최현은 남들보다 4년 늦게 마산상업중학교에 입학해(6년제였던 마산상업중학교는 1951년 마산동중과 마산상고로 분리 개편된다) 낮에는 춤을 배우고 밤에는 학교를 다녔다. 그는 끼가 많았다. 교내 연극부장을 했고 당시 고등학생이던 그는 신경균 감독의 영화 <삼천만의 꽃다발>(1951년) 주인공으로 발탁된다. 이 영화는 마산에서 촬영됐다.

이승기 전 마산문화원 영상자료원장은 "1952년 1월 31일 자 경남신문 전신인 마산일보에 <삼천만의 꽃다발>이 마산시민극장에서 상영한다고 나와있다. 내용은 두 눈을 잃은 6·25 참전 사병이 어머니의 한쪽 눈 이식으로 광명을 찾게 된다는 것인데 마지막 신(광명)에 김해랑 무용장면이 나왔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최현은 이 영화를 계기로 다수 영화에서 주·조연으로 활약했다.

▲ 영화 <시집가는 날>(1956년)에 출연한 최현(오른쪽). /한국영상자료원
▲ 영화 <시집가는 날>(1956년)에 출연한 최현(오른쪽). /한국영상자료원
▲ 영화 <시집가는 날>(1956년)에 출연한 최현(오른쪽). /한국영상자료원
▲ 영화 <시집가는 날>(1956년)에 출연한 최현(오른쪽). /한국영상자료원

◇제 살 뜯어 먹는 완벽주의자 = 그는 서울대에 진학하면서 마산을 떠난다. 1955년 서울 혜화동에 최현무용연구소를 설립하고 후학을 길렀다. 배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김천홍·한영숙·김진옥·장재봉 등 당대 빼어난 명인들을 찾아가 한국 전통춤을 사사했고 이는 최현의 작품세계를 풍성하게 하는 자양분이 된다.

그는 국립무용단에서 한국무용, 발레 등 여러 장르의 주역 무용수로 출연했다. 또 서울예고 등에 30여 년간 재직하며 창원대 김향금·이화여대 김명숙·한양대 백정희·한국체대 강미선 교수 등 제자를 길렀다. 100여 편의 춤을 안무했다.

최현은 여성 중심의 한국 무용계에서 남성 춤의 정체성을 이어온 독보적인 존재다. 그의 대표작은 하늘로 비상하려는 인간의 이상을 학의 고고한 자태를 빌려 상징적으로 묘사한 <비상>, 사군자에 내재한 고고한 인격과 내면세계를 춤으로 표현한 <군자무> 등이다.

성기숙 한예종 교수는 논문 <영남지역 춤의 전통과 춤선구자 연구>에서 최현 작품에 대해 "경상도 춤의 질박미와 신무용의 고전주의적 품격을 주조로 하면서도 섬세하고 부드러운 낭만적 감성과 동양적 심미성이 함축됐다"며 "남성춤이 점차 중성화, 여성화되어가는 풍토 속에서 최현 춤은 한국적인 멋과 풍류 정신이 내재된 남성춤의 정체성을 굳건히 지켜낸 독보적인 춤"이라고 평했다.

장승헌 MCT 대표·예술감독은 최현에 대해 "인간의 내면과 선비정신을 춤에 많이 녹였던 분"이라며 "영화에서 얻은 여러 가지 노하우와 연기력, 드라마적인 구조를 자신의 안무에 응용했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최현은 완벽주의자였다"며 "결과물이 마음에 안 들면 지원금조차 반납할 정도로 까다로웠고, 좋은 결과물을 위해 스태프에 많은 걸 요구해 악명이 높았다"는 후일담을 전했다.

▲ 한국무용가 고(故) 최현 선생. /연합뉴스(최현우리춤원 제공)
▲ 한국무용가 고(故) 최현 선생. /연합뉴스(최현우리춤원 제공)
▲ 한국무용가 고(故) 최현 선생. /연합뉴스(최현우리춤원 제공)
▲ 한국무용가 고(故) 최현 선생. /연합뉴스(최현우리춤원 제공)

 

 

□ 연보

△1929년 12월 부산 영도 출생. 2남 5녀 중 장남

△1946년 마산 김해랑 무용연구소 입문

△1953년 마산상고 졸업

△1955년 최윤찬무용연구소 개설

△1956년 영화 <시집가는 날> 신랑 미언 역. 최윤찬에서 최현이라는 예명을 쓰게 됨

△1959년 서울대 사범대학 체육과 졸업

△1965년 서울예고 부임

△1976년 최현 무용단 창단

△1981~1985년 서울예대 무용과 주임교수

△1986년 아시안게임 문화축전 식전행사 <영고>외 2편 총괄 안무

△1994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수훈

△1995년 국립무용단 예술단장 겸 예술감독

△1996년 세계무용연맹 한국본부 회장

△2002년 지병인 간암으로 별세

 

※참고문헌

<우리춤의 사상가 최현>(2012), 마산국제춤축제위원회, 불휘미디어, 논문 <영남지역 춤의 전통과 춤선구자 연구: 마산을 중심으로>(2010), 성기숙, 한국무용예술학회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