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체제 변화 학습·토론하는 간부회의
그 시각 공무원들 비아냥 글 보니 참담해

'즉물적인 비아냥'이라는 유령이 경남도청을 떠돌고 있다. 특히 공적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이 유령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민간인들은 이유도 모른 채 혼란과 공포에 휩싸일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17일 경남도청에서는 '주요 현안 토론회'가 열렸다. 월요일마다 개최돼왔던 간부회의를 변형한 것인데, 김경수 지사 취임 후 간부회의는 월간 전략회의라든지 주요 현안 토론 등의 이름으로 변용돼 열리고 있다. 형식적인 업무보고와 도지사의 '모두말씀'으로 구성됐던 의례적인 회의 대신, 간부들이 주요 도정 현안을 허심탄회하게 공유하고, 새로운 정책 트렌드를 학습하는 장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김 지사의 의지가 작용한 것이다. 이날 현안 토론회에서는 '세계와 4.0, 데이터 그리고 정부혁신'이라는 주제의 특강이 펼쳐졌다. 이 분야 국내 권위자인 숭실대 오철호 교수가 한 시간가량 강의를 했고, 실·국장 간부공무원들이 질의를 하는 방식이었다.

솔직히, 내용 자체는 어려웠다. 기존 행정 시스템에 익숙한 이들일수록 '4.0'이라든지 '데이터'라는 말은 귓가를 맴돌았을 뿐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세계 체제의 거대한 변화,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대한민국 정부의 정책적 방향, 그 과정에서 노정되어온 혼란상,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여러 방안들에 대한 고민 등이 녹아든 강의였다. 한 시간 강의로 이 모든 상황들을 이해하고 도출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혜안을 얻을 수는 없겠으나, 이러한 공부는 쉼 없이 이어져가야 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혹 '당장 해야 할 일도 바쁜데 쓸데없는 어려운 말을 늘어놓는다'는 생각이 불쑥 솟아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 와중에서도 또 한편으로는 "공부를 해야겠다"는 자성도 뒤따르는 게 인지상정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같은 시각 '경남도청 공무원노동조합' 자유게시판에는 "생방송 하지 마라" 등의 글이 올랐다. 강의실에는 도지사를 비롯한 실·국장들만 참석했고, 그 장면은 청내 유선망을 통해 전 사무실에 방송되고 있었다. "월요일 아침부터 간부공무원 다 모아놓고 인문학 강의나 듣는 도정. 이게 맞나?"라는 글에서부터 "혁신이 뭔데? 뜬구름 잡지 마라", "맨날 강의만 해라. 일하지 말자", "밥도 묵지 말고 오후에도 계속 토론해라. 고마" 등의 글이 쏟아졌다.

일부 공무원들 글을 경남도청 전체 공무원의 생각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즉물적 비아냥'이 점차 경향화되고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청내에서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저 비아냥 속에 담긴 뜻을 대충은 이해한다. 뙤약볕 아래 진흙탕에서 총알을 피해 낮은 포복을 하는 병사들을 향해 차양 아래 지도부가 적진의 사령부를 침투하지 못한다고 호통만 친다면 저런 반응이 나올 법도 싶다.

그러나 아무리 일부 공무원이라 할지라도, 익명 속에서 '일베식' 후안무치를 여과없이 드러내는 공무원이 있다는 데 도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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