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하는 삶의 태도 곳곳에

시인은 아마 햇살 한 줌의 온기로도 넉넉해 할 줄 하는 사람일 것이다. '햇살 한 줌'이란 시에 담긴 그의 마음을 보니 그렇다.

"8차선 대로를 막힘없이 달리는 자동차들 정지 신호에 일시 멈춘다 너비가 아득한 횡단보도 늦은 아침 먹구름 낀 찬 하늘아래 화사한 차림의 한 아가씨가 잽싸게 횡단보도 위로 걸음을 내딛는다 그때 한 중년 아주머니 (중략) 한 다리가 굳어버린 채 기역자로 구부정하게 뻣뻣한 팔로 뒤뚱거리며 남은 한 다리를 겨우 걸음을 내딛는다 (중략) 도로의 절반쯤에 이르러 깜빡이는 신호는 빨간불로 바뀐다 반대편 차들이 모두 급히 출발하는데 중앙선 이쪽에서 경적 소리 하나 없이 차들이 얼어붙은 듯 꼼짝 않는다 인제 아줌마가 겨우 다 건넜는데 그 뒤를 이어 그제서야 막 길을 건넌 한 사람 아까 그 아가씨"

제주 출신으로 진해에서 활동하는 김순병 시인의 시집 <오늘 꽃을 받았어요>(도서출판 경남, 2019년)에는 이처럼 냉정한 세상 속 한 줌이라도 온기를 채우는 시들이 많다.

▲ 〈오늘 꽃을 받았어요〉김순병 지음.
▲ 〈오늘 꽃을 받았어요〉김순병 지음.

예컨대 이 짧은 시를 보자.

"이 아름다움을/ 부정하지 마라// 누가 하찮은 미물에게/ 자기 몸을 먹이로 내줄 수 있나" ('벌레 먹은 장미' 전문)

그리고 시인은 기도하는 사람이다. 시집 곳곳에 기도의 흔적이 보인다.

"영하의 아침/ 한 할머니가/ 털실목도리를 귀와 입까지 칭칭 두르고/ 옷을 겹겹이 껴입고/ 등은 굽은 채 앞도 안 보고/ 손등으로 연신 콧물을 훔치며/ 납작하게 접힌 박스를/ 유모차에 층층이 싣고 끌며/ 차도의 오르막길을/ 거슬러 오르고 있었다" ('살아가야 할 이유 하나로' 전문)

하여 김순병의 시집을 읽다 고개를 들면, 세상이 조금 따뜻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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