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적인 여성상에 가두려는 시각 불편
그의 공적을 기억하는 데만 그쳐선 안돼

"동교동에서 아침마다 당직자들 따뜻한 밥, 맛있는 반찬 챙겨주신 모습도 기억에 남습니다"하고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의 추도식에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돌봄 일을 전담한 가정주부로서 고인의 모습을 불러냈다. 이 대표의 발언은 수십 년간 한국 정치의 일부를 상징한 동교동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정치집단이었음을 확인해주는 것을 넘어선다. 그의 발언은 남편이 리더인 정치집단에서 아내에게 요구된 일이 무엇이었는지 분명히 말해준다. 물론 당직자들이 새벽부터 일정을 시작할 경우 집에서 밥 먹고 올 여유가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날마다 아침밥을 리더의 집에서 먹는다면 그들은 가족 집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동교동이라는 낱말이 나타내듯 한국정치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 혼합되어 있다. 한국의 정치집단 구성원들은 정치적 신념을 같이하는 사람들로만 뭉쳤을 뿐 아니라 사적인 유대감이 그 못지않게 작용하므로 보스가 가부장인 가족에서 밥을 같이 먹는 '식구'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동교동이 김 전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확대된 가족집단이 되기 위해서는 여성의 노동력이 필요했다. 김 전 대통령이 독재정권의 탄압으로 가택연금을 당한 상태에서 사적인 공간인 동교동 사저에서 정치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고려해야 하고 정보경찰의 감시 속에 드나든 당직자들은 고난을 함께한 동지로서 밥을 같이 먹는 사적인 친밀함으로 결속해야 했던 사정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이 바뀐 뒤에도 동교동의 상징성이나 역할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성이 자기 가족에게만 따뜻한 밥과 맛있는 반찬을 아침으로 먹이려고 해도 하루 전부터 준비해야 하고 새벽부터 부산을 떨어야 한다. 이 이사장의 기상 시간은 몇 시였으며 몇 사람 밥을 차렸을까 생각하니, 안쓰러워진다. 이 이사장이 한국 여성운동 1세대를 대표하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당직자들에게는 정치 보스의 아내로서 밥노동이라는 돌봄 서비스의 공급자로서 위상이 부각되었다. 호랑이 같은 위압적인 정치 거물의 남편과 상반되는 따뜻하고 다정한 아내의 역할 분담은 당직자들의 결속과 충성을 끌어냈을지 모른다.

이 이사장의 서거 직후 "내면이 강인한" 사람이라는 평가도 빠지지 않았다. 고인에게 이 평가는 액면 그대로 합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성에게만 즐겨 쓰이는 상투적인 표현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성운동가마저 비껴가지 않는 것은 씁쓸하다. 특히 사회운동가나 정치인 등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기대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 여성을 가리키는 데 단골로 쓰이는 사정을 생각하면 고약하기까지 하다. 이 세상은 남자에게는 겉으로는 세고 안으로는 여리든 겉으로는 물렁하고 안이 단단하든 아무도 가타부타하지 않는다. 그건 그 사람의 개인 성정일 뿐이다. 그러나 아무리 대단하고 똑똑한 여자라도 자질을 안으로 품고만 있지 밖으로 티를 내서는 안 되며,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여성상을 따르면서 다소곳하고 얌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자가 남자를 이기는 꼴을 못 보겠다는 유치한 욕망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드러내더라도 한국 사회의 성인지 감수성은 그것을 불편하게 느끼지 않는다.

퍼스트레이디가 되어 여성 정책에 기여한 측면에 주목하여, 이 이사장을 남편을 성공시키고 자신은 아무것도 챙기지 못한 희생적 여성상에 가두려고 하지 않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고인은 생전에 정치인의 아내라는 것이 족쇄가 되어 자신의 역량을 십분 발휘하지 못했던 수많은 여성의 길에서 비켜나지 않았다. 집에서도 정장을 입고 있어야 하거나 기자들 밥도 챙기거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몰라야 할 개인적인 선행도 남편 위한 일로 부각된 정치인 아내들처럼, 그라고 해서 한국 정치의 보수성이나 전통적이고 희생적인 여성상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번민과 갈등을 겪지 않았을 리 없다.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판에 박힌 평가는 말할 것도 없고 여성가족부를 창설하는 데 기여하는 등 이희호의 공적을 기억하는 데만 그쳐서는 안 된다. 이희호는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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