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수행해 항일역사 터득
학생 관점서 자발적 체험
소감 발표로 공감대 형성

밀양청소년희망탐방대가 올해로 3년째를 맞았다. 밀양시청이 후원하고 밀양교육지원청이 기획하여 경남도민일보가 진행하는 활동이다.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올해는 밀양 역사·문화에서 커다란 특징 가운데 하나인 ▲왕성했던 항일독립운동의 자취를 찾는 일정을 하나 마련했고 ▲표충사로 대표되는 밀양의 멋진 불교문화 ▲밀양의 물산과 인물이 예로부터 풍성했음을 보여주는 영남루·밀양향교·예림서원 ▲밀양이 수륙(水陸) 양면에서 오래 전부터 교통 요충이었음을 보여주는 삼랑창·작원관지·삼랑진역과 함께다.

이처럼 특징에 따라 탐방 지역을 넷으로 구분하여 참여하는 학교에게 두 가지를 고르도록 한 다음 이를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탐방하고 있다. 올해는 밀성여중·밀양중·홍제중·미리벌중·삼랑진중·밀성제일고·밀양여중·동명중 등 여덟 개 학교와 함께 모두 10차례에 걸쳐 활동을 벌이는 중이다.

지난해까지는 밀양독립운동기념관을 찾았지만 올해는 의열기념관과 밀양아리랑아트센터를 찾는다. 올해가 무장항일단체 의열단 창립 100주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밀양아리랑은 그 부드러우면서도 씩씩한 가락으로 항일독립운동과 줄곧 동행했다.

▲ 홍제중학교 학생들이 의열기념관 둘레 담벼락 만세시위 대열에 들어가 하나가 됐다.
▲ 홍제중학교 학생들이 의열기념관 둘레 담벼락 만세시위 대열에 들어가 하나가 됐다.

의열기념관은 항일독립운동의 큰 별 김원봉 선생의 생가터에 있다. 의열단이 1919년 11월 중국 만주에서 창립될 때 주역 가운데 한 분이었고 단장을 맡아 1935년 해체될 때까지 스무 차례 넘는 폭탄 투척 등 말 그대로 맹렬하게 활동을 이끌었던 인물이 바로 김원봉 선생이다. 1898년 태어난 김원봉 선생은 열세 살 1910년에 국치를 맞아 크게 울었고 이른바 일본 천황의 생일을 기리는 그해 천장절에 일장기를 학교 변소에 처넣는 저항을 동료이자 후배인 윤세주 선생 등과 함께 벌였다.

열세 살 요즘으로 치면 어리디 어린 나이에 스스로 의식을 갖추고 의미 있는 사회활동에 나섰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김원봉 선생이 고작 스물두 살 나이에 의열단을 꾸리고 단장을 했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당시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열 살만 넘어도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나이로 인정했다. 그래서 젊어서부터 공동체의 운명을 위해 자기 한 몸을 내던져도 남달라보이지는 않았다.

지금 중·고교 학생들을 보면 독립운동가를 보고 '우와, 멋있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당대 독립운동은 멋있어 보이기 위한 활동이 아니었다. 오히려 엄혹한 조건에 맞추어야 했기에 멋이 없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일제에 붙잡히면 곧바로 고문·투옥으로 이어졌기에 목숨을 걸어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더욱이 의열단의 경우는 일제에 대한 인마 살상 투쟁이었기에 그 대표는 엄청난 긴장 상태를 동반하는 죽음의 자리라 할 수 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 이런 느낌을 학생들이 조금이나마 갖도록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누구나 혼자서 우뚝할 수는 없다. 험산준령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야 그 최고봉이 까마득히 높을 수 있다. 밀양은 숱하게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고장이다. 지난해만 해도 일흔여섯 분이더니 올해 들면서 일흔아홉으로 늘었다. 그러다 5월 들어서면서는 어느덧 다시 여든셋으로 많아져 있었다. 이보다 더 많은 독립운동가 분들을 '보유'한 기초자치단체는 우리가 아는 범위에서는 없다. 이는 정부에서 인정된 숫자만인데 이를테면 월북 때문에 아직 공인받지 못한 김원봉 선생은 포함되지 않았다.

김원봉 선생은 일제강점 36년 동안 줄곧 항일 활동을 벌였다는 면에서도 출중하고 단 한 차례도 일제에게 붙잡히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대단하다. 이는 혼자서 이룬 것이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밀양에는 훌륭한 선배와 스승, 본받을 만한 동료와 후배들이 많았던 것이다. 전홍표가 20년 앞에서 끌어주고 황상규·김대지가 8~9년 앞에서 동시대를 함께하고 두 살 아래 윤세주가 동료로서 활동하였기에 가능했다는 얘기다.

미션지를 하나씩 들려주고는 의열기념관 안팎을 돌아보게 했다. 거기에 적힌 미션은 어쩌면 간단하다. ▲밀양이 의열투쟁의 본향이 된 원동력 찾기 ▲의열단 알아보기 ▲김원봉 알아보기 ▲둘레 담벼락 그림에 들어가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작품 사진 찍기 넷이다.

이렇게 하면 아이들이 스스로 즐거워하며 알아서 찾아다니는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어른이 앞에 나서서 설명하고 아이들은 졸졸 따라다니는 일이 없어지면 생긴다. 어른들 관점에서 주어지는 설명을 벗어나 자기네 관점에서 찾아보고 자기네 안목만큼 담아내는 능동적인 활동이 펼쳐지는 것이다.

▲ 의열기념관을 둘러보고 무엇을 새롭게 알고 느끼게 되었는지 소감을 공유하는 시간을 갖고 있는 밀성여중 학생들.
▲ 의열기념관을 둘러보고 무엇을 새롭게 알고 느끼게 되었는지 소감을 공유하는 시간을 갖고 있는 밀성여중 학생들.

이것으로 끝나면 펼쳐만 놓았지 수확까지는 못한 꼴과 같다. 함께 모여 소감을 발표하고 공유하는 과정까지 거친다. 이렇게 해야지 '아하, 저 친구는 저렇게 느꼈구나', '아하, 이 친구는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보았네' 등 서로의 경험이 상대방에게 스며들면서 생각과 이해와 공감의 범위가 넓어지게 된다.

바로 밀양아리랑아트센터로 옮겨간다. 방음 처리가 된 전수관에는 북과 장구, 징과 꽹과리 등속이 갖추어져 있어 신나게 마음껏 두드려 볼 수 있다. 아리랑의 여러 갈래 다양한 종류와 흘러온 역사, 앞으로 펼쳐질 전망 등을 소개하는 전시관에서는 당연히 미션지가 동반된다. 역사 속 아리랑의 의미를 ▲1700년대 후반 ▲한민족 디아스포라 ▲일제강점기 ▲6.25전쟁 ▲88올림픽과 2018겨울올림픽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게 한다. 여러 아리랑을 들어본 다음 밀양아리랑의 특징을 나름대로 적어보게도 한다. 또 아리랑을 모티브로 삼아 만든 상품들을 둘러본 다음 자기 취향을 살려서 ▲아리랑 브랜드를 그려보게 한다. 아이들이 내는 작품의 수준은 하늘에서 땅까지 천차만별 각양각급이지만 아리랑을 생활 속에서 활용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꼬투리를 한 번 마련해 준다.

이렇게 하고 보면 두어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아이들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아이들이 모여서 하는 발표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조금이라도 새롭게 느끼게 되었고 알게 되었다고 뿌듯해하는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의열기념관을 다섯 번 왔지만 이번에 제대로 알게 되었다." "밀양이 자랑스러워졌다." "정말 고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가슴이 먹먹하고 울컥해졌다." "지금 우리는 너무 행복한 것 같다."

△후원 : 밀양시청

△기획·주관 : 밀양교육지원청·경남도민일보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