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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김춘수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이었다. 1956년 부다페스트는 소련에 저항하는 피로 물든 도시로 각인돼 있었다. 시의 첫 구절에 '다뉴브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東歐)의 첫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의 소련제 탄환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소녀를 쓰러뜨렸다'라는 문구가 있다. 이는 소련군의 총에 맞아 무참히 쓰러진 헝가리 어린 소녀, 그 사진의 한 장면이 시 창작의 동기였다. 이렇듯 시인은 부다페스트에서의 사건을 우리나라 6·25전쟁 당시 한강변에서 죽은 소녀의 이미지로 연결했다. 그래서 이 시는 소련군과 북한군의 비인도적 만행을 백일하에 드러나도록 고발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내 고등학교 시절에 국어 교사였던 H에 따르면, 부다페스트 소녀의 상황에 김춘수 시인의 경험담, 이를테면 자신의 여동생이 북한군의 성폭행으로 자살하게 되었는데, 이에 저항하지 못한 오빠로서의 죄책감을 환유적으로 표출한 시라고 하였다. 이러한 김춘수 시인의 시집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은 출간된 지 올해로 회갑을 맞았다.

최근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에서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한국인이 타고 있던 유람선 허블레아니호를 들이받아 침몰시킨 크루즈 바이킹 시긴호 사건이다. 이번 사고로 한국인 관광객들 26명이 사망 또는 실종됐다. 이 가운데는 여섯 살의 소녀도 있었다.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이 어린 소녀의 죽음이 자꾸만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과 겹쳐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60여 년 전 헝가리 소녀와 김춘수 시인 여동생의 죽음, 그리고 이번 사고로 말미암은 어린 소녀의 죽음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무심한 다뉴브강은 요한슈트라우스의 선율처럼 흘러가고 있다.

이역만리에서 어이없는 참변을 당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아울러 해양관광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나라의 선박 안전에도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두 번 다시는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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