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두려워 말고 불편 그대로 받아들이자
지성까지 대체 가능한 인공지능
인간-기계 대결구도 구축 불필요
자기고집 무한한 미래 좁히는 일
인간관·윤리관 비판적 모색 기회

철학 중에서도 윤리학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다루는 분야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누구나 언젠가는 고민하게 되는 내용 아닌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철학자가 본 미래시대의 윤리'라는 제목이 붙은 철학자 허경 고려대 교수의 강연을 찾아가게 된 것도 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 때문이었다. 지난달 진주에 있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 남강홀에서 열린 이 강연은 진주시와 진주문고가 함께 준비한 '문화가 있는 날' 행사의 하나였다. 허 교수는 진주문고 여서재에서 진행하는 철학 강좌 하나를 맡고 있기도 하다.

▲ 진주시와 진주문고가 준비한 강연으로 지난달 LH 남강홀에서 철학자 허경이 강연하고 있다. /이서후 기자
▲ 진주시와 진주문고가 준비한 강연으로 지난달 LH 남강홀에서 철학자 허경이 강연하고 있다. /이서후 기자

◇인공지능의 비약적인 발전

제목을 구체적으로 풀면 '인간의 지성까지 대체할 정도로 발전하는 과학 기술 시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정도가 되겠다. 허 교수는 급변하는 세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것으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 이야기를 꺼냈다. 2016년 이세돌 9단과 진행한 대국이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었다. 당시는 이제 지적인 면에서도 기계가 인간을 이기는 시대가 왔다며 충격을 안겨준 이벤트였다. 인간의 자존심을 말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허 교수는 굳이 인간과 기계가 대결구도를 만들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인간이 계산기와 계산 대결을 할 필요가 없고, 자동차와 달리기 대결을 할 필요가 없듯이, 인공지능 분야도 마찬가지라는 거다.

하지만, 인간의 지성을 따라잡으려는 인공지능의 비약적인 발전은 어떤 면에서는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여기 허 교수가 강연을 위한 자료로 컴퓨터 공학자인 손병희 인하공업전문대학 교수와 채반석 프리랜서·디지털 저널리스트의 글을 인용한 것을 보자.

"1990년대 후반이 되면서 인터넷이 등장하고 검색엔진이 발달하였고 이에 따라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게 되면서, 이런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있어 인공지능 스스로 학습하는 머신러닝이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중략) 어쨌든 2020년에는 인간 통제를 받지 않는 자립형 소프트웨어 에이전트가 전체 경제의 5%를 차지할 것이고, 300만 명 이상이 로봇 상사를 모시게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중략) 산업 혁명 때 나온 기계는 수동적이어서 사람이 기계를 개선해야 했고, 지금도 어느 정도 사람이 해줘야 업그레이드가 되는데, 기계가 딥러닝 후 특이점에 도달하게 되면, 사람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업그레이드를 하게 된다. 한 마디로 기계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 곧 철학을 하게 되면서 인간을 따라잡게 될 것이다. 과학자들은 대략 이때를 2045년경으로 본다."

거칠게 요약하면 2045년경이면 인공지능이 철학적인 생각을 하면서 인간을 따라잡는다는 거겠다.

결국, 기계가 이제는 인간의 육체뿐 아니라 지성까지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이미 인공지능 발전으로 앞으로 사라질 직업 리스트가 나오고 있기도 하다. 허 교수는 이를 두고 농업혁명, 산업혁명을 이어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또다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두려움에 마음을 닫지 말자

인간은 이런 인공지능의 발전을 조금은 두려운 눈으로 보고 있다. <터미네이터>, <공각기동대>처럼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다.

걱정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인간은 미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산업시대 영국에서 일어난 기계 파괴 운동(러다이트)이라도 다시 일어날 것인가.

허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과학 진보에 대해 우리가 취해야 할 올바른 태도는 그것의 발전을 무조건 위험시, 죄악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비판하고, 그것의 장단점, 위험성을 철저히 밝혀 이에 대한 대응책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우리의 기존 인간관, 윤리관 역시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중략) 과학과 기술의 진보란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의 주어진 기존 인간관, 윤리관이 이제 더는 지금처럼 무비판적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음을 알려주는 하나의 시금석이자 축복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과학 기술의 진보에 따른 세상의 변화를 기존 시스템(가치관, 윤리관)에 대한 위협 세팅을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나로부터 탈출하기

자, 다시 처음의 문제 제기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한 사람의 미래는 그 사람이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대하는 태도에 달렸다. 나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콘트롤 할 수 없는 미지의 것을 두고 불편해 한다. 관심 없는 척하거나 자기 방식대로 이해하거나 혹은 경청하거나 존중한다. 보통은 자신이 익숙한 가치관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정리하려고 애를 쓸 것이다. 허 교수는 미지의 불편함을 불편함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충고한다. 지금의 자신의 세계관(가치관, 윤리관)에 대한 고집으로 무한한 자신의 미래를 좁혀 놓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철학자 레비나스의 '준비가 안 돼 있을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말이나 니체의 '진실과 진리의 적은 의심이 아니라 확신'이라는 말들은 좋은 힌트가 된다.

그래서 허 교수는 이렇게 되묻는다.

"나로부터 탈출은 가능한가?"

그의 강연을 듣고 있자니 결국 미래에 대한 대비는 예측이나 계획이 아니라 결국 적응력에서 찾아야 하는 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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