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국사회의 민주화 운동과 인권운동, 평화운동을 이끌어 온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6·10 민주항쟁 32주년 기념일에 우리 곁을 떠났다. 고인은 여성·민주주의·인권·평화 등 우리 사회발전의 뼈대가 되는 소중한 가치의 수호자이자 버팀목이요 상징이었다.

고인이 남긴 큰 발걸음은 짧은 필설로 도저히 형언할 수가 없다. 민주투사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기 전부터 고인은 고 이태영 여사와 함께 남녀 차별철폐와 여성의 인권신장을 위해 싸운 선구적인 여성운동가이자 인권운동가였다. 고인의 희생과 투신이 있었기에 오늘날 여성의 평등권 신장과 사회·경제적 진출, 법·제도의 지위 향상이 가능했다.

사랑과 헌신으로 인동초 부부의 삶을 살면서 고인은 김 전 대통령의 조력자이자 동반자로서 한반도 평화와 민주화에 기여했다. 분단과 독재의 시절 정치적 동지 김 전 대통령과 함께 죽음의 고비와 역경을 딛고 이겨낸 숱한 일화들은 이 땅의 민주주의 역사의 기록 자체다.

고인은 김 전 대통령을 먼저 떠나보낸 후에도 진보와 보수를 가릴 것 없이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이라면 따를 수밖에 없는 정신적 지주요 예지자로 살아왔다. 평화통일에 대한 투철한 신념으로 남북이 경직된 대립을 거듭하던 시절에도 세 차례나 방북해 화해와 공존·번영의 메시지를 던져왔다. 남북이 전쟁과 공멸의 위기마다 가까스로 넘길 수 있었던 것은 고인의 그림자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라 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

큰 별이 떠나간 빈자리가 얼마나 클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국민이 서로 사랑하고 화합해서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고 민족의 평화통일을 염원한다는 마지막 유지를 새겨듣고 실천하는 것만이 그 자리를 메워나가는 유일한 방도일 것이다. 날로 잔혹하고 천박하게 추락하는 우리 정치의 혼탁한 현실을 반추해보면 고인을 떠나보낸 이들이 진정으로 뼈아프게 성찰해야 할 말씀이다. 이제는 낡은 시대의 아픔과 짐을 내려놓고 김 전 대통령과 평안하게 영면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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