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 수주 위기 딛고 날갯짓
예측·예방 초점 리스크 관리를

몇 년 동안 국내 조선·해양산업은 충격의 소용돌이를 헤매었다. 해양플랜트가 발단이었다. 설계도, 생산도 많은 물량을 책임질 능력이 되지 않는데 마구잡이로 저가 수주를 한 것이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최근 해양플랜트에 대한 기대감이 살아나고 있다. LNG(액화천연가스) 수송선 시장이 동면기를 지났고 국제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선을 넘어서자 해양플랜트 수주가 가시화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중공업이 2년 만에 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FPSO) 수주에 성공했다. 지난달 22일 삼성중공업은 인도 릴라이언스 선사와 1조 1040억 원 규모의 FPSO 1기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대우조선해양은 영국 로즈뱅크 해역의 해양유전 개발사업을 위한 FPSO 1척의 입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현대중공업이 미국 석유개발업체인 엘로그 익스플로레이션이 발주한 반잠수식 원유생산설비(FPS) 1기를 수주했다. 해양플랜트 건조 물량이 없어 2000여 명의 유휴인력 구조조정과 해양공장 일부를 매각하는 수순을 밟던 현대중공업에는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사업 규모가 총 7조 원이 넘는 아람코 프로젝트에는 삼성중공업을 비롯해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3사가 모두 입찰에 참여했다. 또 호주, 베트남 등 1조 원이 넘는 대형 프로젝트들이 대기하는 등 굵직한 프로젝트의 발주가 예상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은 선주사의 인도 지연으로 재고로 남아있던 드릴십을 인도하거나 매각을 확정 지었고, 현대중공업도 카타르 국영 석유회사인 바잔 가스 컴퍼니와의 10조 원에 가까운 하자보증 요구에 대해 국제상업회의소(ICC)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하자보수 충당금의 범위에서 종료했다.

해양플랜트 위기의 근본 원인은 유가 하락이라는 외부요인과 맞물려 국내 조선소들이 과도한 매출 경쟁을 벌이면서 리스크(risk) 관리에 눈을 감은 것이다. 견적단계에서 정확한 물량 예측, 계약서 조항의 꼼꼼한 점검이 필수인데도 근거 없이 숫자나 문장을 임의로 조정하거나 해석한 것이 화근이 됐다. 건조자가 설계에서부터 건조, 시운전, 인도 전반을 책임지는 일괄수주계약(EPC)에서는 조선소가 부담해야 할 위험이 훨씬 커진다. 지금은 해양플랜트를 건조하는 국내 대형조선소가 모두 리스크관리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리스크를 직접 찾아내고 평가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리스크의 리스트를 관리'하는 데 머무르는 것이 현실이다.

해양플랜트는 EPC라는 계약의 특수성과 수주 시점이 아닌 인도 시점에서 건조대금 대부분을 회수한다는 점, 선박과는 달리 표준 선형이 없고 설치 해역이 속한 국가나 발주 기업 특수성이 우선 강조된다는 점에서 계약자인 조선소의 리스크는 피할 수 없는 허들이다. 하지만, 선제적으로 리스크를 예측하고 관리함으로써 계약자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특수한 환경과 조건을 발주자가 아닌 계약자 입장에서 정확하게 예측하고 분석할 수 있는 표준과 실력을 갖추었을 때만이 가능하다. 해양플랜트 리스크 관리는 계약조항 검토와 중량 추산과 관리, 기자재업체 관리 노하우가 성공을 위한 필수 3박자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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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조선업계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지난 4년 해양플랜트 산업 시련의 시기가 체질 강화 기회가 되었음을 실력으로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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