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 조장해 이익 취하는 '가진 자'
그 야비한 수단, 늘 통하진 않는다

아주 오래된 중학교 시절 이야기 하나 들추어 본다. 학교에 다니는 아들에게 물으니 반 친구들이 선거를 통해 반장을 직접 뽑는다고 했다. 그러나 오래전에는 담임 선생님이 반장을 지명했었다. 성적이나 지도력도 살폈겠지만 부모님의 직업과 재력, 학교에 대한 기여도도 크게 보았다. 이렇게 뽑힌 반장의 위세 또한 대단했다. 심부름꾼 반장이 아니라 담임 선생님을 등에 업고 위임받은 권한으로 친구들을 통치하는 반장이었다. 심지어 친구들에게 체벌을 가하기도 했다. 반 아이들 대부분 반장 위세에 눌려 고분고분했지만 뒷자리 변방의 덩치 큰 친구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선생님 꾸짖음에도 눈을 치뜨고 주둥이를 서발이나 내미는 녀석들이었으니 반장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제 말이 먹혀들지 않아 위신이 깎인다고 생각한 반장이 벼르고 벼르다 그중 '강이'라는 친구를 불러내 선생님이 쓰던 매로 두들겨 패는 일이 벌어졌다. 친구들 앞에서 망신을 당한 '강이'는 같은 뒷자리 변방의 '호야'라는 친구에게 같이 반장을 치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호야'가 제의를 거절하자 두 녀석이 서로 싸우게 되었다. 반장은 기회다 싶어 두 녀석의 싸움을 더 부추기고 열세에 몰린 '호야'를 꼬드겨 제 편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자 승산이 없어진 '강이'도 순순히 반장 말을 따르게 되었다.

반장은 유리한 위치에 있음에도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친구 사이에 갈등을 부추겨 어부지리를 얻는 고약한 수단으로 반 친구들을 쥐락펴락했다는 오래된 옛날이야기인데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이런 야비하고 치졸한 수법을 무슨 대단한 전략처럼 쓰고 있다.

중국 삼국시대 가장 세력이 강했던 위나라 조조는 촉의 유비가 한중을 공격하자 손권을 오나라 왕으로 봉하고 형주의 관우를 치게 해서 그를 죽인다. 이에 분노한 유비는 화살을 손권에게 돌리고 이릉대전에서 장사진으로 대패한다. 서로 큰 타격을 입은 촉과 오는 세력을 더 키우지 못하고 위에 정복되고 말았다. 우리나라 정치사에도 이 수단으로 굳건하게 뿌리 내린 정당이 있다. 군사 쿠데타와 광주를 피로 물들이고 정권을 잡은 민정당은 87년 6월 항쟁으로 정치적 위기를 맞고 이듬해 총선에서조차 여소야대 정국이 되자 내각제 개헌이라는 미끼를 던져 거대 여당인 민자당을 만들어 정권을 장악했다. 초강대국인 미국은 저들의 패권을 유지하고 이득을 얻기 위해 이 수단을 가장 많이 써먹는 나라이다. 세계 곳곳의 분쟁에 개입해서 부추기고 편을 들어 제 영향력을 넓히고 이권을 챙긴다. 석유 통제권을 틀어쥐기 위해 중동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냉전 체제에서는 패권을 틀어쥐고자 분단국을 만들고 동족상잔의 전쟁 빌미를 주었다.

그러나 이 야비한 수단이 늘 통하진 않았다. 3당 야합에 따른 거대 보수여당의 탄생은 민주 진보세력의 결집을 이끌어 내었다. 미국도 분쟁 지역에서 반미 의식이 높아지고 개입하여 보는 이득이 줄자 고립주의로 돌아서는 듯하다. 지역의 한 대기업에서는 강성 노조가 들어서면서 사측과 대립의 골이 깊어지자 하청 노동자에게도 지급해오던 성과급을 뜬금없이 법적 문제를 들어 직영노동자에게만 지급하고 미루다가 격려금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삭감하였다. 노노 갈등을 야기해 강성노조의 동력을 무력화시키려는 꼼수였다. 처음에는 직영 노동자와 갈등을 빚는 듯하더니 사측으로 불만의 화살을 돌리면서 조직이 급격히 커진 하청노조가 직영노조와 연대해 오히려 사측을 압박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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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게 지닌 자들은 약자의 분열을 조장해 득을 취하는 이런 수단으로는 당당한 맞섬이 아님을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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