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글로 만드는 과정 내면 깊숙이 떠나는 여정

우리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목표치를 함께 그리게 된다. 나 역시 현재의 가게를 준비하면서 마음속으로 그려보던 이상적인 책방의 모습이 있었다. 외형적으로 원하는 모습의 경우 '예산 내'라는 명확한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더 상상하고 싶어도 범위가 자연스럽게 제한되었다.

반면 무형의 모양 즉, 가게의 분위기나 나아갈 방향은 앞으로의 노력 여부와 상황 변화에 따라 그 결론은 셀 수 없이 많은 경우의 수를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어떤 날에는 일본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았던 조용하고 단정한 동네 책방을 그리며 가슴 설레다가도 책방 주인의 에세이에 나오는 망하기 일보 직전의 서점이 미래의 내 모습으로 오버랩되기도 했다.

불안함과 설렘, 무수한 상상과 상념이 가득한 날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한결같이 다짐처럼 마음에 새긴 모습은 늘 비슷했다. 언제나 책을 읽는 사람들과 책을 쓰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공간.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책방의 모습이란 그런 것이었다.

책에는 글을 쓴 사람의 인생이 어떤 면으로든 담기게 된다. 우리가 관용적으로 사용하는 '책을 읽음으로써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라는 말은 진부해 보이지만 진리에 가깝다. '인간은 아는 만큼 덜 예속된다'는 말처럼 우리는 책을 통해 누군가의 삶의 한 단면을 읽게 되고, 그렇게 알게 된 타인의 삶은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을 조금 더 넓고 관대하게 볼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만들어 준다.

나는 이런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막연하지만 선명하게, 이 작은 책방이 그런 사람들로 채워지기를,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찾아주기를 바랐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바람처럼 이 공간은 책을 읽는 행위를 순수한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남겨준 좋은 기억으로 가득 차 있다.

▲ 글쓰기의 최전선. /장참미 시민기자(오누이북앤샵 대표)

◇글쓰기 모임

좋은 여운을 남기고 간 많은 사람들 가운데 글쓰기 모임을 통해 만난 사람들을 빼놓을 수 없다. 그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은 나에게 잊지 못할 경험이자 배움의 기억이다.

글쓰기 모임은 처음 책방을 열면서 생각했던 두 가지 계획 중 하나였다. 소정의 강의료와 함께 진행되긴 했지만 참여하는 사람들 모두 어떤 가르침을 얻으러 왔다기보다 자신의 경험과 글을 나누고자 하는 태도로 이 모임에 참여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이 모임을 계획했을 때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가 요즘 같은 시대에 글을 쓰려고 하나, 이미 나와 있는 책들, 좋은 글들을 소비하기에도 빠듯하다. 부족한 실력으로 글을 생산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일이다'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서 모집 공고를 올리면서도 잘 안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나의 마음 한구석에는 '글을 쓰는 것'이 주는 신성한 신뢰감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는 피로감을 주는 '일'이 아니다. 나를 들여다보고, 혼란한 마음을 잔잔하게 만들어 주는 '힐링'에 더 가까웠다.

◇안목

은유 작가가 쓴 <글쓰기의 최전선>에 따르면 '글을 쓴다고 문제가 해결되거나 불행한 상황이 뚝딱 바뀌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 줄 한 줄 풀어내면서 내 생각의 꼬이는 부분이 어디인지, 불행하다면 왜 불행한지 적어도 그 이유는 파악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책을 통해 우리는 산다는 것은 무엇이며,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균형감각을 키우게 된다. 읽는 행위로 우리는 경험하지 못한 감정과 세계를 통과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쓰는 행위는 읽는 것보다 더 능동적이다.

이해하는 것에 더해, 쓰고자 하는 사람이 될 때 우리는 글쓴이의 처지를 더 깊고 섬세하게 느끼게 된다. 깊은 이해는 깊은 안목을 낳고 깊은 안목은 구체적인 감각으로 다가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읽어야 하고 동시에 써야만 하는 것이다. 쓰고 읽고 그에 관해 대화 나누는 것만이 나와 타인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최전선>은 글 쓰는 사람, 은유 작가가 쓴 책이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글쓰기의 최전선'은 저자가 수유너머 R에서 진행한 글쓰기 강좌의 이름이다. 이 수업은 단순한 스펙 쌓기나 학위 취득을 위한 글쓰기가 아니다.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얽히고 설킨 자신을 풀어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어렵게 꺼내놓은 마음들을 함께 나누고 감응하는 능력을 키우는 일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고 저자는 그 과정에서 발견한 '글쓰기의 힘'을 모아 펴내며 이렇게 썼다.

◇증언

"이 책은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증언이다. 누군가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여지없이 맞닥뜨리는 문제들, 고민들, 실험들, 깨침들, 변화들, 질문들에 관한 이야기다. 글을 쓰고 싶은데 한 문장도 나아가지 못할 때, '왜'라고 묻고 '느낌'으로 써 내려가는 그 섬세한 몸부림의 시간을 담았다. 지난 4년간 글쓰기 수업의 경험과 고민을 토대로 구성했다."

제1부 '삶의 옹호로서의 글쓰기'는 목소리를 갖지 못한 이들이 자기 삶을 용기 있게 증언하면서 자기 언어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2부 '감응하는 신체 만들기'는 각기 다른 삶의 배경을 가진 이들이 모여 시를 낭독하고 외우고 느낌을 말하면서 각각의 주체로 거듭나는 여정을 그렸다. 3부 '사유 연마하기'는 상식과 금기에 도전하며 자기 관점에서 질문하는 법을 배운다.

글 쓰는 일은 누구는 할 수 있고 누구는 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딱 자기만큼만 쓸 수 있다. 더 잘 쓸 수도 없고 더 못쓸 수도 없다. 그렇기에 저자는 자신만의 언어로, 자신만의 감수성으로 글을 써야 하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고유한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저 쓰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글쓰기에서 문장을 바르게 쓰는 것과 글의 짜임을 배우고 주제를 담아내는 기술은 물론 필요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어떤 글을 쓸 것인가'하는 물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탄탄한 문장력은 그다음이다. 열심히 잘 쓰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그 '열심'이 어떤 가치를 낳는가 물어야 한다. 우리 삶이 불안정해지고 세상이 더 큰 불행으로 나아갈 때 글쓰기는 자꾸만 달아나는 나의 삶에 말 걸고, 사물의 참모습을 붙잡고, 살아 있는 것들을 살게 하고, 인간의 존엄을 사유하는 수단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 <글쓰기의 최전선> 중 일부. /장참미 시민기자(오누이북앤샵 대표)

◇인간에 대한 이해

무엇을 쓰고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면 그런 글은 일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탐구를 통해 정리된 마음의 자리에 타인, 혹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위한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

실제 책방에서 있었던 글쓰기 모임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 책에 나오는 인터뷰를 통한 감응은 아니었지만 글쓰기 모임이 진행되는 동안 자연스럽게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고 동시에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꺼낼 준비를 했다.

그 용기 있는 순간들은 우리의 정신을 건강하게 했고 서로의 부족함, 그리고 그 저변에 깔려있는 애정을 발견할 때마다 위안 받고 온전해졌다. 어렵게 꺼낸 마음은 쉽게 전달된다. 어떤 글은 단어 하나를 고르는 일에도 많은 망설임과 두려움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은 말 그대로 글을 써야만 살 수 있었던 작가를 비롯해 글을 쓰는 것으로서 자신을 발견했던 사람들의 보고가 들어있다. 책을 읽는 내내 동시에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자. 써야 쓴다는 책 내용처럼. 무의미한 글은 없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그렇게 쓰고 읽어서 우리 모두 자신과 타인의 이야기들로 삶을 가득 채울 수 있기를 바란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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