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지원협 회의록·녹취록 없애
기록원 시정 조치에 소송 '각하'
반대대책위 "책임 회피에 제동"

한국전력공사가 밀양 송전탑 건설을 위해 꾸린 '밀양 송전탑 갈등해소 특별지원협의회' 회의록을 위법하게 폐기한 사실이 드러났다.

국가기록원이 '밀양 송전탑 특별지원협의회 회의록 등은 공공기록물이기에 한전이 폐기한 것은 위법하다'며 시정 조치를 요청했는데, 한전은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최근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박성규 부장판사)는 한전이 국가기록원을 상대로 낸 시정조치 요청처분 취소 청구를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내용에 대한 판단도 없이 재판절차를 끝내는 것이다.

정부와 한전은 주민 반발에 부딪혀 중단된 밀양 765㎸ 송전탑 공사를 2013년 10월 재개하기에 앞서 그해 8월 특별지원협의회를 꾸렸다. 협의회에는 산업통상자원부, 한전, 주민, 경남도, 밀양시, 지역구 조해진 국회의원실 등 관계자 20여 명이 참여했다. 당시 밀양765㎸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는 협의회에 불참했다.

특별지원협의회는 지난 2016년 1월 송전탑 공사 마무리와 함께 활동을 종료하면서 협의회 결정사항에 대해 비공개를 원칙으로 10년간 한전이 관리하기로 했다. 다만, 협의회 모든 회의록, 녹취록 폐기를 결정했다.

국가기록원은 2018년 3월 특별지원협의회 회의록 폐기 관련 기록관리 실태점검을 하고, 그해 5월 한전에 시정 조치를 요청했다. 더불어 한전에 회의록을 기록관으로 이관하고 통합전자문서관리시스템에 등록, 보존기간을 상향 조치할 것을 요구했다. 또 주요 정책·사건 관련 기록물을 영구기록물로 재분류하라고 했다.

국가기록원은 "협의회 회의록 등은 한전 업무와 관련해 생산된 기록물로 한전이 관리해야 하는 공공기록물로 판단된다. 한전이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정한 절차를 준수하지 않고 폐기한 것은 위법하다"고 했다.

이에 한전은 이미 폐기해 존재하지 않는 회의록, 녹취록에 대한 보존·관리를 명한 것은 이행이 불가능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국가기록원 시정조치 요청은 한전이 공공기관으로서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의무를 관계 법령에 적합하게 이행하라고 촉구한 내용이다. 한전에 새로 법률상 의무를 부과하거나 기타 법률상 효과를 발생하게 했다고 볼 수 없다"며 한전의 청구를 각하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공공기관의 책임 회피에 제동을 걸었다며, 반겼다.

밀양 송전탑반대대책위는 "이번 소송에서 국가기록원이 패소했다면 다른 공기업들이 밀양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민원 사업을 할 때 밀양처럼 민관협의체를 만들어서 주민들을 갈라 세우고 돈으로 합의를 이끌어내는 작업을 대행시키고, 나중에는 회의록까지 파기하면서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피해갈 수 있게 된다. 그것에 제동이 걸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이어 "국가기록원은 이번 소송 결과를 바탕으로 한전의 상급기관인 산업통상자원부를 통해 한전에 공공기록물로 등재하고, 복원하도록 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그 회의록에는 한전이 자신들이 선임한 합의 측 주민대표들과 행한 여러 불법, 위법한 정보가 많이 담겨 있으리라고 주민들은 믿고 있다"고 밝혔다.

반대대책위는 지난해 3월 밀양 송전탑 사태와 관련해 24건에 대해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이 중 이번 판결과 관련한 '한전이 주도한 밀양송전탑 특별지원협의회(2013~2016년) 전면감사'도 들어있었다.

하지만, 올해 3월 감사원은 이 중 3건(한전이 적극 협조한 주민들 필리핀 관광 지원, 공사인력 수송 버스임대 수의계약체결 특혜, 농산물 공동판매시설 신축지원금 위법·부당 사용)에 대해서만 한전에 '주의' 조치하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감사를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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