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판 엉뚱하게 내리면 아찔…장애인 이동권 여전히 미흡

장애인·고령자 등 교통약자는 시내버스 타기가 더 불편하다.

지체장애인 손미연(68·창원시 진해구) 씨는 장애인 콜택시보다 시내버스를 더 많이 이용한다. 지난 2003년 차 사고로 하반신이 점차 마비된 손 씨는 2006년부터 전동휠체어를 사용했다. 저상버스가 도입되고서부터 시내버스를 이용했는데, 장애인복지관 등을 오가느라 일주일에 나흘은 버스를 탄다.

지난 8일 오후 손 씨와 함께 시내버스를 탔다. 진해구 자은동 덕산해군아파트 정류장에 도착하자 손 씨는 정류장 옆에 설치된 펜스 문제를 지적했다. 보행자 안전을 위한 것이지만 손 씨에게는 장애물이다. 저상버스 경사판을 보도에 펼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손 씨는 2년 전부터 창원시에 요구한 끝에 이 정류장에 설치됐던 안전펜스 2개가 제거됐다고 전했다. 이어 "정류장마다 시내버스 2대 길이의 공간은 열어두고 펜스를 설치하거나 가로수를 심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내버스마다 승차 과정 천차만별 = 307번 저상버스가 다가오는 게 보이자 손 씨가 손을 흔들었다.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가 차도에 그어진 황색 실선에 맞춰 바퀴를 갖다 댔다. 그래야 경사판이 보도에 밀착된다. 뒷문에서 나온 경사판을 따라 휠체어가 탑승했다. 손을 흔들고부터 버스가 출발하기까지 30~40초만 걸렸다.

▲ 손 씨가 저상 시내버스를 탄 뒤 휠체어석에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풍호동 진해구청 정류장이 다가오자 손 씨가 장애인용 하차벨을 눌렀다. 버스가 황색 실선을 따라 정차하고, 경사판이 보도에 고정되자 손 씨가 내렸다. 손 씨는 "버스 운전사가 인지를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건너편 정류장에서 탄 301번 저상버스는 달랐다. 버스가 전진·후진을 반복했다. 그녀가 대기하는 지점에 뒷문이 위치해야 하는데 이를 맞추지 못한 것이다. 차량이 앞뒤로 왔다 갔다 하고, 버스에 오르기까지 승객들은 손 씨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 손 씨가 저상 시내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한 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풍호동 평화마을 정류장에 내릴 때는 상황이 더 심각했다. 버스 운전사가 황색 실선에 맞춰 차량을 세우지 않아 경사판이 보도가 아닌 차도에 내려졌기 때문이다. 경사판은 차도에 밀착되지 않고 닿을 듯 말 듯했다. 차도에서 버스를 타거나 내릴 경우 경사판의 경사각이 급해 전동휠체어가 뒤집어질 위험이 있다.

손 씨가 차량을 보도 가까이 붙여달라고 요구했다. 경사판이 다시 들어가고 차량이 앞뒤로 오간 후에야 손 씨는 내릴 수 있었다. 하차하는 데 1분 넘는 시간이 걸리자 승객들 시선이 손 씨에게 집중된 건 당연했다. 손 씨는 "같은 업체 소속인데도 307번 버스와 달리 차량을 세우는 방법 등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며 "모든 시내버스 업체가 운전사를 대상으로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 휠체어가 오르내릴 수 있는 리프트가 차도가 아닌 보도 바닥에 완전히 닿아야 안전하게 내릴 수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왜 타기 좋은 곳으로 찾아가야 하나" = 풍호동 평화마을 정류장에 내려서도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보도에 설치된 대기소 앞뒤로 걸어서 지나갈 수는 있어도 휠체어로는 지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손 씨는 행선지 반대 방향으로 이동해 차도로 내려간 후 대기소를 지나쳐 행선지 방향 보도로 다시 올라 섰다. 손 씨는 "3년 전에 대기소 바깥에 세워달라고 했는데도 안쪽에 내려준 적이 있다. 119구급대를 불러서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창원시 진해구 손미연 씨가 지난 8일 오후 시내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정류소가 인도를 막고 있어 지나가지 못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5월 기준 9개 업체가 운행하는 시내버스 수는 721대. 이 중 178대가 저상버스(전기버스 17대, CNG버스 161대)이다. 하반기에 전기버스 12대, 수소버스 5대가 출고되는 등 저상버스는 늘어나지만 교통약자 이동권 확보를 위해 가야 할 길은 멀다.

준공영제를 시행하는 서울·부산시는 휠체어 이용자를 대상으로 '저상버스 예약시스템'을 도입했다. 이용자가 버스를 타기 전 정류소에서 업체에 전화를 걸어 탑승 희망 버스를 예약하는 제도다. 운전사와 이용자 간 소통이 어려워 교통약자가 대기 중인 사실을 모르고 지나치거나 정차 위치가 제각각 달라 탑승하지 못하는 경우를 예방한다.

손 씨는 대기소에 교통약자가 있을 경우 버스 운전사가 알 수 있도록 표지판 설치를 제안했다. 이와 함께 주기적으로 경사판을 점검해달라고 했다. 운행 과정에서 경사판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손 씨는 교통약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풍호동 우성아파트 정류장에서 탄 301번 버스에서도 경험할 수 있었다. 버스를 탄 손 씨가 교통약자용 좌석에 자리 잡기 위해 운전사에게 의자를 접어달라고 했지만 돌아온 답은 "레버를 잡아당기세요"였다. 휠체어를 탄 손 씨가 의자를 접을 수 없으니 승객들이 자리를 마련해줬다.

손 씨는 "왜 저상버스를 타기 좋은 곳으로 교통약자들이 찾아 가야 하는지, 우리들이 타야 하는 곳이 정해져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어느 곳에서라도 편하게 저상버스를 탈 수 있어야 한다. 그때까지 계속해서 버스를 탈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관련기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