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도시'독서문화 일군 토대, 자립 운영 꿈꾼다
10년 넘게 지역민 사랑방 역할
57곳, 커뮤니티 공간 자리매김
보수 안 받는 지역봉사자 관장
야간당번제·시설 개선 등 건의

어느 지역이든 도시의 품격은 시민의식 수준과 맞먹는다. 시민의식이 높으면 도시 품격도 향상된다. 시민의식은 지역민들의 독서율과 맞물려 있다. 독서율이 높은 도시는 시민의식도 높아 '명품도시'의 반열에 오른다.

김해시는 지난 2007년 '책 읽는 도시'를 선포했다. 이런 배경에는 김해지역 작은도서관 관장들의 숨은 역할이 있었다. 이들의 공로가 없었다면 책 읽는 도시와 시민의식 함양도 기대할 수 없었다.

◇작은도서관이란 =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의 도서관'을 뜻한다. 아파트 주부들이 내 아이가 집 근처에서 안전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없을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시립·공공도서관은 도서관 수도 적지만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공공도서관까지 가는 데 거리가 멀어 이용하기가 불편한 데다 주부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도 없는 처지였다.

작은도서관은 시가 책 읽는 도시 선포 이전부터 운영했다. 당시에는 도서문고 형태로 지역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시가 책 읽는 도시 선포 이후 시립·공공도서관과 작은도서관의 통합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명실 공히 '도서관+지역커뮤니티'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김해작은도서관은 총 57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시 지원을 받는 도서관은 38곳(아파트 28곳·공공시설 10곳)이다. 나머지 19곳은 공공아파트 자체에서 운영한다. 시가 지원하는 작은도서관에는 사서직을 두고 있다. 사서직 임금은 시 지원금으로 충당한다. 작은도서관 사서직 임금을 예산으로 지원하는 곳은 드물다. 이런 특성으로 김해작은도서관은 전국 지자체 작은도서관 중 원조격인 셈이다. 김해가 다른 지자체와 차별화되는 것도 이런 도서관 문화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 왼쪽부터 김근형 김해작은도서관협의회 부회장, 정연화 협의회장, 정성자 사서, 김길환 관장.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주민들이 만든 공간 = 작은도서관 관장들은 보수를 받지 않는 순수한 지역봉사자들로 김해지역 생활 속 독서문화를 정착시켜온 파수꾼들이다.

이들은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그때그때 대두하는 현안에 대해서는 서로 모여 연구하고 진단한다. 지역주민을 위해 필요하다고 의견이 모이면 곧바로 실행에 옮긴다. 엄마와 어린이들이 함께하는 공동육아와 플라스틱 감축운동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마을마다 소규모 형태의 축제를 열어 지역문화를 이끌어가는 첨병 역할도 하고 있다.

이들의 이런 숨은 활약으로 지난해 김해에서 열린 전국독서대회를 성공으로 이끌어 '김해 = 책 읽는 도시'를 정상궤도에 올려놨다. 도서관 관장들의 '생활 속 독서문화 정착'이란 독서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다.

시는 이에 힘입어 오는 10월에는 전국 처음으로 자체적인 독서대회도 연다. 시립이나 공공도서관이 인체의 대동맥 역할을 한다면 작은도서관은 대동맥을 받치는 실핏줄인 셈이다.

◇더 자유롭고, 더 열린 곳으로 = 작은도서관장들이 비록 무보수 명예직이지만 도서관 운영 과정에서 마찰도 많았다. 관장들은 "시가 작은도서관 사서직 예산 지원을 명분으로 작은도서관끼리 경쟁을 유발하는 도서관평가제도를 도입하려 할 때 서운했다"고 입을 모았다. 도서관끼리 경쟁시켜 줄을 세우겠다는 것은 자율성을 부여한 작은도서관 설립 취지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김해작은도서관협의회 정연화(50) 회장은 "임금을 받지 않는 봉사직 관장들에게 도서관별로 서열화하겠다는 것은 맞지 않다. 시가 꼭 평가를 하고자 한다면 서열화가 아닌 평준화를 전제로 해야 한다고 설득해 작은도서관 서열화(예산 차등지원)를 막아냈다"고 말했다.

그는 회장을 맡고 나서 김해작은도서관과 공공·시립도서관을 연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정 회장은 "공공도서관보다 이용 인원은 적지만 작은도서관을 10년 넘도록 지역에서 꿋꿋하게 지켜온 점은 자랑스럽다. 작은도서관이 태동한 지 오래된 만큼 앞으로 작은도서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노인층과 책을 읽을 수 없는 시각장애인을 포함한 최소한의 독서인구를 위해서라도 언제든지 도서관을 개방해야 하고, 책 읽는 자와 책을 읽지 않는 자 모두를 보듬는 형태로 변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직장인들이 퇴근한 이후에도 책을 마음대로 빌리고 반납할 수 있도록 시중 약국처럼 도서관 야간당번제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시민과 가장 가까운 곳을 찾아가는 일명 '스마트 도서관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고 했다. 대안으로 김해경전철 역사를 이용한 '찾아가는 도서관'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작은도서관 운영이 안정되지 않으면 언제 무너질지 모르기 때문에 미래세대를 위해서는 도서관 안정화가 최우선이다. 시가 이 부분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둬야 하고, 책 읽는 도시로 성공하려면 책을 읽을 수 없는 시각장애인 단 한 명을 위해 소리로 읽어주는 도서관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할 때 가능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재정 자립은 과제 = 작은도서관은 조성된 지가 10년이 넘어 도서관 내부시설이 대부분 낡았다. 좌변기가 아닌 수세식 양변기가 설치된 곳은 어린아이들이 도서관 화장실을 이용하는 데 불편을 겪고 있다. 관장들은 도서관이 오래돼 낡은 시설물은 이른 시일 내 새롭게 개선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김해시작은도서관협의회 김근형 부회장은 "작은도서관은 직원이 많은 시립·공공도서관처럼 되기는 어려운 구조다. 작은도서관 자체적으로는 재정 자립이 어렵다는 의미다. 사서직이 한 명뿐인데 시가 시립도서관에 맞추도록 원한다면 재정지원이 훨씬 더 많아야 한다. 따라서 자율성을 부여할 필요가 있고, 작은도서관 내에 교육프로그램이나 특별강의를 위한 별도 공간도 확충해야 한다. 도서관 운영의 안정화를 위해서는 현재 계류 중인 관련 조례(작은도서관 재정 지원 등)를 시급히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김해는 지역 중·고교생들의 독서율이 여느 도시들보다 높은 편이고, 전국에서 독서인구가 꾸준하게 유지되는 것도 결국은 숨은 봉사자들인 작은도서관장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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