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얼음 육수 향긋한 면발 이 계절이 반가운 이유

이른 더위에 냉면이 자꾸 생각난다. 차가운 놋그릇을 두 손으로 감싸고 시원한 국물을 들이켜면 '캬아~' 시원함이 목구멍을 타고 온몸으로 퍼진다. 젓가락으로 면을 휘휘 둘러 입안 가득 넣으면 메밀향이 은근히 번진다. 절로 지어지는 미소, 숨길 수가 없다.

그래서 냉면집에 갔다. 창원시 진해구에 위치한 냉면집으로 레스토랑 같은 분위기가 특징이다. 면은 메밀 100%다. 물냉면은 살얼음이 많았고 톡 쏘는 국물이 인상적이었다. 비빔냉면에는 찬 육수가 곁들여졌고 맛은 괜찮은데 양이 적은 게 아쉬웠다.

메밀로 만든 냉면이 문헌에 처음 등장한 때는 조선 후기인 19세기다. 홍석모가 연중행사와 풍속을 정리한 세시풍속집 <동국세시기>(1849년)에 '메밀국수를 무김치나 배추김치 국물에 말아 돼지고기 얹은 것을 냉면'이라고 정의했다. 냉면을 흔히 여름철 별미로 생각하지만 실은 겨울철 음식이다. 당시 사람들은 가을에 메밀을 수확해 동치미가 익은 겨울에 냉면을 먹었다. <동국세시기>에서도 음력 11월 세시 음식이라 소개됐다.

▲ 비빔냉면 위 달걀은 비빔냉면을 다 먹은 뒤 먹으면 매운 맛을 중화시킨다. /이서후 기자

이미지: 냉면의 계절이 왔다. 입덧할 때 냉면이 먹고 싶은데 냉면만 전문적으로 하는 곳이 없어서 고깃집 가서 냉면을 먹었다.

이서후: 냉면은 날이 더워야 더 맛있다.

김민지: 냉면 맛있게 먹는 법 있나? 자신만의 제조법 같은 거.

이미지·이서후: 그냥 먹는 게 맛있다.

(참고로 식초는 식욕을 돋우고 식중독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으며 겨자는 따뜻한 성질을 지닌다.)

김민지: 그럼 고명으로 나오는 삶은 달걀을 먼저 먹는 편인가 아니면 나중에? 나는 먼저 먹는다. 위를 보호해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서후: 나도 달걀 먼저 먹는다. (이날 이서후 기자는 유일하게 비빔냉면을 먹었다)

이미지: 난 우선 달걀을 다른 그릇에 빼놓는다. 국물이 탁해지니까.(웃음)

<냉면열전>에 따르면 평양냉면을 먹을 때는 달걀을 먼저 먹는 게 좋다고 한다. 메밀과 육수의 찬성분으로부터 위를 보호하기 때문. 함흥냉면은 반대로 냉면을 먹고 난 뒤 달걀을 먹는다고. 매운 고추 양념에 있는 캡사이신 성분이 지방에 잘 녹기 때문에 얼얼한 성분을 제거해준다.

▲ 냉면과 함께 즐겨 먹는 만두. 냉면만 먹었을 때 느꼈던 허전함을 만두가 든든하게 채워준다. /김민지 기자

이미지: 나에게 냉면은 고깃집서 후식으로 먹는 음식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이서후: 냉면이 고기랑 잘 어울리지.

김민지: 굽고 남은 삼겹살을 비빔냉면으로 싸서 먹으면 정말 맛있다.

이미지: 나도 좋아한다. 고깃집 가서 보통 물냉에 고기랑 같이 먹지. 양념갈비랑 냉면이랑 세트로 먹는 가맹점도 본 것 같다.

김민지: 인터넷에서 본 적 있는데 냉면 위에 돈가스를 고명으로 주는 집도 있더라. 신박했다.

조선시대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시에 보면 오늘날과 같이 고깃집서 후식으로 냉면을 먹는 대목이 나온다. '삿갓 모양 냄비에서는 노루 고기 붉게 익고/ 길게 뽑은 냉면 가락에 배추김치 곁들인다네'(<장난삼아 서흥 도호부사 임성운에게 주다> 중) 또한 조선시대 기방에서는 한 상 차려 먹은 뒤 쓰린 속을 시원하게 달래주는 해장 음식으로 냉면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김민지: 평양냉면 먹어본 적 있나?

이미지: 서울에 갔을 때 유명한 평양냉면집을 간 적 있다.

김민지: 맛이 어땠나?

이미지: 심심했어. 근데 맛없다고 하면 미식가가 아니라 할 것 같아서 이 맛이 맛있는가보다 하면서 먹었다.(웃음)

이서후: 커피맛 좀 안다는 사람이 커피 마실 때 아메리카노 먹는 것처럼? 우린 촌스럽게 캐러멜 마키아토 안 먹어~.

김민지: 와인맛 좀 안다는 사람이 와인 먹을 때 스위트 와인 대신 드라이 와인 먹는 것처럼? 난 아직 평양냉면을 안 먹어 봐서 뭐라고 말을 못하겠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먹어보고 싶다.

▲ 여름철 즐겨 먹는 물냉면. 살얼음이 동동 떠있어 보기만 해도 시원함이 물씬 다가온다. /김민지 기자

허영만의 <식객>을 보면 평양냉면은 툭툭 끊기는 면발과 슴슴한 육수가 특징이라고 한다. 혹자는 면발 점성이 약하고 육수가 심심하다고 하지만 냉면 고수들은 이 두 가지를 평양냉면의 생명이라고 표현한다고.

평양냉면이 깔끔한 맛이라면 진주냉면은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맛을 낸다. 북한에서 출간된 <조선의 민속전통>(1994년)에 따르면 '랭면 가운데서 제일로 일러주는 것이 평양랭면과 진주랭면'이라고 할 정도로 북에는 평양냉면, 남에는 진주냉면이 유명하다. 진주냉면은 해물 육수와 육전 고명이 특징이다. 또한 교방 문화의 중심지답게 화려한 고명을 자랑한다. 배, 오이, 무채, 편육, 실고추, 달걀지단, 육전 등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김민지: 10여 년 전 진주에 놀러간 김에 진주냉면을 먹어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때가 여름이었는데 줄이 어찌나 길던지. 1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냥 집으로 돌아온 기억이 있다. 이후 본점이 아닌 분점에서 먹어봤는데 양이 푸짐하더라.

이미지: 간이 약간 세지 않나? 해물 육수라 맛이 너무 강해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다. 근데 이상하게 계속 생각이 나더라. 그 맛을 잊지 못해 자주 먹으러 갔었다.

김민지: 동생 내외도 진주냉면을 즐겨 먹는다. 면이 쫄깃하고 묘하게 당기는 맛이 있다고 하더라.

이서후: 난 어떤 맛이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냉면이 되게 차고 엄청 많이 먹었던 거 같다.(웃음) 맛있었으니까 그랬겠지?

※ 참고문헌

<식객> '팔도냉면 여행기'편 (2010), 허영만, 김영사

<냉면열전>(2014), 백헌석·최혜림, 인물과 사상사

<평양냉면>(2018), 김남천·백석·최재영 외, 가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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